이해찬 중국특사(왼쪽)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8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교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새 정부의 ‘외교적 난제’로 꼽혀온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문제가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미국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홍석현 미국 특사가 17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하면, 문재인 정부의 사드 문제 해결 기조는 △국회의 논의 절차 추진 △한-미 동맹의 정신에 기초한 해결 등 두 가지로 압축된다. 미국도 이런 한국의 입장에 이해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논의 절차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비준동의 절차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는 부지 제공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 등 우리의 재정적 부담을 수반한다”며 국회 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정신에 기초한 해결’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사드 배치에 합의할 때 국방부는 “한-미 동맹 차원의 결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미 간 사드 배치를 합의할 때 썼던 ‘한-미 동맹’이란 용어를 이번에 향후 사드 해법의 원칙으로 되살린 셈이다.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강경책보다는 기존의 합의 이행 쪽에 무게를 싣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새 정부가 국회 비준동의 등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이를 중국을 설득할 논리로 활용할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의 반응이다. 왕이 외교부장이 이날 이해찬 특사를 만나 “작년부터 중-한 관계는 있어선 안 되는 좌절을 겪었다”고 언급하고, “한국 새 정부가 ‘유효한 조처’를 취해 달라”고 말한 것은 사실상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중국 <환구시보>도 이날 사설에서 “한국 새 정부가 중국에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대) 입장과 맞바꿀 순 없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가 계속된다면 중-한 양국이 이전의 협력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그동안 “국회의 비준동의 사안이 아니다”라며 사드의 조기 배치를 강행해 왔지만, 대선 이후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문상균 대변인은 18일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 없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나’라는 질문에 “주변국에 특사가 파견돼 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국회에 비준동의 절차를 요구할지는 알려진 게 없다. 그러나 외교부의 실무 절차가 필요한 만큼, 새 정부의 내각 구성이 완료된 이후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6월말 문 대통령의 방미 이후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 논의에 부쳐지면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가 얼마나 힘을 얻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현재 사드 배치 반대를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당은 정의당뿐이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은 사드 배치를 찬성하고, 국민의당은 대선 기간 동안 ‘반대 당론’을 철회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사드 반대 여론이 제법 높지만 이를 당론으로 정하진 않았다. 여당의 새 원내 사령탑이 된 우원식 원내대표는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드를 돌려보내는 문제까지 포함해 살펴보겠다”며 사드 철수 방침을 시사했으나, 18일엔 기자들과 만나 “원론적으로 한 얘기”라며 한발 물러섰다.
박병수 선임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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