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서 진행해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이외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성주/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해법이 지난 29일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 지시를 계기로 사실상 조기 배치 완료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해 사드 배치 문제가 본격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대선 경쟁자들로부터 ‘오락가락’으로 비판받던 문 대통령의 사드 행보가 결국 남북 대결논리의 현실에 안주하고 마는 모양새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3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사드 배치와 관련해 “(북한의 28일 탄도미사일 발사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면 배치를 건의드렸고, 그 조치를 하기 위해 임시 배치를 하는 것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번 결정 배경에 국방부 등 실무 부서의 건의가 있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의 사드 배치 전격 결정에는 미국 쪽의 직·간접적인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자 미국 정부의 압력이 거세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이 “화성-14형 발사 직후인 29일 새벽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통화에서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한 합의가 있었느냐”고 묻자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 말할 순 없다”면서도 “포괄적인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양국간 사드 배치 협의가 있었음을 부인하진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문 대통령 자신이 ‘사드 배치 인정’ 쪽으로 입장을 조금씩 옮겨온 행보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몇 차례 입장 변화를 보여 말바꾸기 논란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정부가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드 배치에 대해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정”이라며 사드 배치의 재검토와 국회 비준 동의 등 공론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지난 연말·연초 갑작스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을 거치며 변화를 겪는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가 사라지고 대신 “사드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1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더는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지 않았다. 국회 비준 동의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지난 5월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이 공약을 이행할 뜻을 밝힌 적은 없다. 아무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거둬들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성주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실시 방침은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드 발사대 2기를 배치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하며, 10~15개월 걸리는 환경영향평가를 한 뒤 사드 배치 결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방침은 발표 하루 만인 29일 문 대통령이 화성-14형 발사를 빌미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지시하면서 뒤집혔다. 그동안 비판해왔던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환경영향평가에 앞서 먼저 사드 추가 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박병수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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