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정치부장
독도에서 회의하고 보초 서고…
외견상 그럴싸할 뿐 하수다
극일의 길은 더 넓어지는 것이다
외견상 그럴싸할 뿐 하수다
극일의 길은 더 넓어지는 것이다
일본 야당 의원들의 한국행으로 촉발된 ‘독도 파동’은 대체로 진부한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다. 몇몇 정치인의 돌출행동, 이를 둘러싼 한-일 대립, 언론의 확대재생산, 그리고 또다른 강경대응이라는 종전의 악순환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 의원들이 ‘적진’인 한국으로 뛰어든 점이 색다를 뿐이다.
일본의 영토문제 이슈화는 민주당 정권 들어서도 그 기세가 꺾이질 않고 있다. 틈만 나면 ‘독도 해코지’에 열중하는 모양새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중국에 역전당하고 한국이 쫓아오는 탓일까. 지도자다운 지도자, 큰 리더십을 찾기 어려운 초라한 일본의 현실을 보는 듯해 안타깝다.
이번 소동은 사실 한국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들의 방한은 지난 5월 한국 의원 3명이 일본과 영토분쟁 중인 러시아령 쿠릴열도를 찾아 러시아 손을 들어준 데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러시아 땅까지 찾아가 대한인의 기개를 높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한번 낸 것치고는 ‘후과’가 크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경우는 할 말을 잃게 한다. 일본 의원들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한 일등공신이 바로 그다. 독도에서 초병 근무를 하는 퍼포먼스는 선거용으론 압권이었다. 일본인들이 이를 보고 우리 정치 수준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낯이 다 뜨겁다. 품격과 절제를 보여야 할 일국의 장관으로는 낙제점이다.
언젠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일본과 다른 나라가 맞붙은 운동경기를 본 적이 있다. 어디를 응원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주저없이 일본이 졌으면 좋겠다, 일본은 싫다고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내심 놀랐다. 우리 학교와 사회가 순진한 아이들에게까지 반일감정을 체계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이 독도 문제 등에 비합리적으로 몰두하듯, 우리도 일본에 대해 어딘가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강제병합 이후 100년 세월이 흘렀지만,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민족 말살의 죄과는 씻을 길이 없다. 한-일 악순환의 뿌리는 일본 우익의 고질적인 침략주의 근성이다. 신도 요시타카 의원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날 아침 “울릉도 오징어가 맛있다고 들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독도가 일본 땅이듯, 울릉도 오징어도 자기네들 것이란 말로 들렸다.
가해자가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피해자의 관용이나 합리적 접근을 얘기하는 것이 섣부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일의 길은 우리가 더 넓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끝모를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한국이 이젠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이 나라를 온통 짓밟은 미국과 한국에 아무런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끌어안는 것을 보며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 때는 일전을 불사해 사실상 중국을 무릎 꿇렸다. 관용이든 분노든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어야 한다. 국제외교에선 때로 강수가 필요하지만, 강수가 하수인 경우도 많다. 보초를 서고 독도에서 회의를 하는 것은 외견상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강수도 아니다.
민족주의가 진보적이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의 전통 속에서 반일은 진보요 친일은 보수이던 시대가 있었다. 요즘은 뒤죽박죽이어서 무엇이 진보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숙명적인 라이벌일 수밖에 없다. 대결과 반목, 비난의 길은 쉽지만 일본과 함께 손잡고 서로 역지사지하며 나아가는 길은 훨씬 어렵고 험난하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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