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장 처음으로 진경준이라는 현직 검사장이 뇌물수수 혐으로 구속 기소됐다. 비상장 주식으로 대박을 터뜨린 사실이 노출됐는데도 그는 무난히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고 있는 인사검증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우병우 민정수석 책임론’이 발화된 사건이기도 하다. 그뒤 진경준 검사장에게 뇌물을 건넨 넥슨과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 의경 아들의 꽃보직 배치 등 우 수석 관련 의혹은 이어졌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대통령을 위해서 우 수석 본인이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우 수석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우병우의 버티기’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 우병우 민정수석은 왜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서있는 걸까.
사정기관 컨트롤 타워, 공직자 인사 검증 등 막강 권한
대통령의 거주지이자 근무처인 청와대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 진용은 실장 1명에 수석비서관이 10명, 비서관이 40명이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정책조정·정무·외교안보·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수석비서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때와 인물에 따라서” 민정수석의 비중은 “청와대의 절반을 차지할 때도 있다”는 게 청와대 근무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민정수석 밑에는 민정·공직기강·민원·법무 비서관이 있다. 민정비서관은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등의 사정기관이 소관 부서이며 공직기강비서관은 인사검증과 청와대 내부 감찰이 주요 업무다. 민원비서관은 국민권익위원회를 맡고 청와대로 들어오는 민원을 담당한다. 법무비서관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관련 업무를 맡는다. 민정수석실 인원은 60여명이다. 검찰, 국정원, 경찰, 감사원, 국세청, 총리실, 행정자치부 등에서 파견 나온 ‘늘공(늘 공무원)’이 다수이고 변호사 등 외부에서 들어온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소수다.
민정수석실은 사정기관을 컨트롤하고 공직 후보자를 사전에 검증하며 공직자를 감찰하는 게 중요한 업무다. 사정기관을 통한 정보 수집은 일상적인 일이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아 대통령에게 올릴 보고서를 쓴다. 검찰의 경우 중요 수사 상황은 대검과 법무부를 거쳐 민정수석실까지 올라온다. 수직적인 보고 라인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의견이 검찰에 내려가는 건 “당연한 얘기”(한 검사)다. 민정수석실이 검찰에 청와대의 뜻을 전달하는 ‘창구’가 되는 셈이다. 검찰을 향한 민정수석의 장악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청와대의 ‘의견’은 일선 수사기관에서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이 된다.
공직자 감찰도 중요 기능이다. 정부 부처의 감찰 부서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상시적으로 공무원 부정 행위를 점검하고 기강을 잡는 민정수석실은 ‘공직사회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공직후보자 인사검증도 민정수석실의 강력한 권한이다. 국무총리와 장·차관을 비롯해 중앙부처 국·실장급인 고위공무원단, 검찰의 검사장, 군 장성, 경찰 경무관 승진 때부터 민정수석실의 검증을 거친다. 국립대 총장과 공기업의 사장과 감사도 검증 대상이다. 공직 후보자들의 재산 증식 과정과 사생활, 논문 표절, 음주운전 등 고위 공직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흠결이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민정수석실 검증실무팀의 의견은 공직후보자 임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검증 업무를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실무 검증 과정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위에 올라가서도 최종적으로 낙점받기가 어렵다”며 “비서실장이 검증 실무자를 불러 특정 후보에게 좋은 점수를 주라고 민원을 한 적도 있지만 민원이 통하지 않아 장관급 공직자로 임명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권력은 직위가 아니라 센치에서 나온다”
각종 정보의 취합, 사정의 컨트롤 타워,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 등 공식적으로 부여된 권한만으로도 막강한 자리가 민정수석이다. 민정수석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국정의 다양한 부분에 있어 제한 없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민정수석의 장점으로 꼽았다. 사정기관과 관련 없는 분야여도 민심을 거론하며 대통령에게 조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또 다른 검사는 “그런 측면에서 민정수석의 업무 영역은 굉장히 넓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가 중요하다. 때와 사람에 따라서 민정수석의 업무 영역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민정수석이 권한 이상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에서 권력은 직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센치(센티미터)에서 나온다.” 민정수석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신임이 청와대 참모들의 권력을 결정짓는다는 또 다른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우병우 수석도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에 버금가는 실세의 자리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발탁 배경 여전히 베일 속 ‘정윤회 문건’ 수사로 대통령 신임 세월호 집회 강경대응도 지시
‘문고리 3인방’ 수준의 손발 노릇 “정권에 시한폭탄” 비판에도 건재
우 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23살에 검사가 된 우 수석은 부패를 척결하는 특별수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그와 함께 일했던 검사들은 공통적으로 “능력은 탁월하나 덕이 없다(재승박덕)”고 평가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검사도 그였다. 그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된 이유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민정비서관으로 적임자를 뽑아갔다”는 말들이 나왔다. 야망이 큰데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손에 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이, 대통령 보위를 위해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민정수석실의 업무와 어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청와대에 들어간 지 10개월 만에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2015년 2월 김기춘 비서실장이 퇴임하며 생기는 권력의 공백을 우병우 수석이 메우는 모양새였다.
2일 오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 신임 얻은 우병우의 견마지로
청와대 안팎에서는 우병우 수석이 ‘정윤회 국정 농단 문건 유출’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는 청와대 내부 문건을 근거로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 등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 분위기를 시중에 흘리는 ‘공작’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을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허위’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문건 작성자와 유출자를 처벌하라는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해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대로 조응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유출된 문건을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던 최아무개 경위는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러나 문건유출을 지휘했다는 조응천 전 비서관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증명된 셈이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진태 검찰총장은 문건 유출 수사에 부정적이었는데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검찰의 또다른 고위 관계자와 직거래를 하면서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며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그때부터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그는 구조 책임이 정부로 향하지 않도록 검찰 수사에 압력을 가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과정의 문제점을 수사하던 광주지검 해경 전담수사팀은 2014년 7월, 구조 현장에 출동했던 김경일 123정장을 체포했다. 근무일지를 조작한 범죄 외에 구조 활동을 소홀히 한 점을 들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려는 검찰을 막아섰다. 구조 실패의 책임이 정부로 돌아오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해경 전담수사팀을 이끌고 있던 변찬우 전 광주지검장은 지난 3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경 정장에 대한 처벌을 할 경우 책임이 국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판단이었다. 해경 경비정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청와대와 법무부는 기소조차 꺼렸다. 사표를 낼 각오로 상부를 설득했고 결국 구속은 하지 못했지만 기소는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변 지검장은 2015년 2월 대검 강력부장으로 사실상 좌천된 뒤 연말 인사에서 고검장 승진을 하지 못하고 옷을 벗었다.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밉보인 탓”이라는 게 검찰 내부의 정설이었다.
세월호 집회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도 우 수석의 작품이다. 검찰 관계자는 “우병우 수석이 세월호 집회에 강경 대응하라고 엄청 닥달을 했다”고 전했다. 우 수석은 세월호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 ‘견마지로’를 다한 것이다. 우 수석 본인이 보람을 느낄 정도로 박 대통령의 신임도 각별하다고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우병우 수석의 위상을 ‘문고리 3인방’에 견줘 이렇게 표현했다. “측근 3인방은 박근혜 대통령의 손발이다. 다른 청와대 수석들은 옷이다. 손발은 바꿀 수 없지만 옷은 갈아입을 수 있다. 우병우 수석은 옷이었는데 대통령이 계속 입고 있다 보니 손발로 바뀐 것 아니냐, 옷이 몸으로 스며들어서 피부처럼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우 수석을 임기 말까지 바꾸지 않을 거다.”
“우병우 대체재가 없다”지만…
그러나 우 수석은 공식적인 직무 과정에서 이미 많은 흠결을 노출했다. 진경준 검사의 검사장 승진 검증 때 비상장 주식을 보유해 대박을 터뜨린 점을 민정수석실 실무진들이 포착했지만 우 수석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인사검증의 실패다. 2015년 3월 이완구 국무총리의 뜬금없는 ‘부패와의 전쟁’ 선포의 기획자로 우병우 수석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성완종 리스트’ 폭로로 이완구 총리는 결과적으로 자해를 한 셈이 됐고 새누리당 안에서는 ‘우병우 책임론’이 나왔다. 대대적인 사정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려보겠다는 우 수석의 무리수가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을 안긴 것이다. 의경 아들이 경찰청 내규를 어겨가며 ‘꽃보직’으로 옮겨간 사실은 특별감찰관실의 감찰 1호 사건이 됐다.
박 대통령은 2일, 여름휴가 뒤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열었지만 우 수석 거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우 수석의 거리가 이전보다 멀어진 것 같진 않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우병우는 대체재가 없다. 박 대통령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임기 말 레임덕이 예정된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우병우’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 수석의 넘치는 의욕은 무리수로 이어지고 박 대통령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우 수석 책임론이 불거진 뒤 매일 아침 공개회의에서 우병우 사퇴를 주장하고 있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국민과 야당이 매일 청와대를 향해 우병우 사퇴 확성기 방송을 보내는데도 아무 응답없는 박근혜 정권은 외부 정권, 별나라 정권이다.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달 21일에는 “‘우병우 시한폭탄'이 째깍째깍거리고 있다”고 했지만 타이머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시한폭탄’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관련기사] ‘국민의 삶’을 살피는 게 민정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