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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조국, 비례정당, 공천’ 세가지 굴레… 정치 집단지성은 얼마나 지혜로울까

등록 2022-03-27 09:11수정 2022-04-03 09:10

[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20대 대선 되돌아보기

열성 당원·지지자가 주도한 민주당
전 당원 투표는 바른 결정이었을까
원내대표 경선 앞 문자폭탄 쏟아져
팬덤에 휘둘리는 정치 위험 수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의 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가 당 안팎의 응어리 해소일 수 있다. 지난 23일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왼쪽 넷째)이 여영국 정의당 대표(왼쪽 다섯째)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의 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가 당 안팎의 응어리 해소일 수 있다. 지난 23일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왼쪽 넷째)이 여영국 정의당 대표(왼쪽 다섯째)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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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지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개미가 협업을 통해 거대한 개미집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1910년 미국의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집단지성은 개체의 지적 능력보다 우수합니다.

집단지성 개념을 정치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민주주의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권자인 다수 구성원이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명제를 토대로 구축된 체제입니다. 정치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다수의 선택이 옳지 않은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를테면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선거로 집권했습니다. 학자들은 유권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충분히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단지성의 오류, 왜 거듭될까?

아니었습니다. 유권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질수록, 충분히 똑똑해질수록 점점 더 이상한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2016년 영국 국민 다수는 브렉시트에 찬성했습니다. 미국 국민 다수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그해의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유권자들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무장하면서 오히려 확증편향이 심해지고 가짜뉴스와 선동에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보화 혁명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나타나는 역설적 현상입니다.

유권자들의 확증편향 심화는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해 먼 훗날 역사가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좀 두렵습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검찰 총장 출신이 보수 야당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 당선까지 된 것을 정상이라고 해석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것입니다.

이번 정치 막전막후에서는 시각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좁혀서 이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민주당 열성 당원과 지지층의 지나친 열정이 결과적으로 대통령 선거 승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기억하십니까? 이해찬 전 대표가 2018년 8월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전면에 내세웠던 의제입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은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냉전 수구세력이 집권하면 다 허물어진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역주행했다. 촛불 혁명이 요구하는 복지국가, 공정사회,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당이 4번, 5번 연속해서 집권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졌습니다. 20년은 고사하고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정권이 넘어갔으니 이해찬 전 대표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찬 전 대표는 사실 민주당에서 누구보다도 판세와 흐름을 읽는 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 이해찬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다음 해에 냉전 수구세력 재집권에 의한 역주행 가능성을 경계하며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외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시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해찬 전 대표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입니다. 쉽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여러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사태가 그만큼 위중하다고 본 것입니다.

“국민들께서 조 후보자 논란에 관해 굉장히 속상해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조국 후보자만큼 유복한 사람은 극히 일부 아니냐. 그런 면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2019년 8월23일 대표 취임 1년 기자회견)

조국 장관이 물러난 뒤에도 또 사과했습니다.

“검찰개혁이라는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 여당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2019년 10월30일 기자간담회)

팬덤에 파묻힌 여당 대표의 사과

그런데 잘 기억이 안 나시지요? 왜 그럴까요? 이해찬 대표의 사과는 당시 윤석열 검찰의 정치 개입에 분노한 민주당 열성 당원과 지지자들이 서초동에서 대대적으로 벌인 촛불집회의 함성에 파묻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과 손잡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명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자, 민주당도 전 당원 투표를 거쳐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했습니다. 투표 당원의 74%가 찬성했습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과 비례연합정당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이 보기에는 마찬가지 꼼수였습니다. <한겨레>는 ‘꼼수에 꼼수 대응, 민주당 비례정당 참여 유감이다’라는 제목의 사설로 비판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부끄러운 정치의 모습을 보이게 돼 매우 참담하고 송구하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났습니다.

이낙연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는 후보를 공천할 수 없었습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당헌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 우리가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놓지 않았느냐.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당내에서 소수 의견이었습니다. 당원과 지지자들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같은 중요한 선거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낙연 대표는 전 당원 투표를 거쳐 당헌을 개정했습니다. 투표에서는 무려 86.6%가 찬성했습니다.

<한겨레>는 민주당의 결정을 ‘당원 투표 뒤로 숨은 민주당식 책임정치’라는 제목의 1면 기사로 비판했습니다. ‘떳떳지 못한 민주당의 서울·부산시장 공천 결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경향신문> 1면 기사의 제목은 ‘‘숲’ 대신 ‘나무’만 보는 민주당’이었습니다.

바둑에 복기가 있습니다. 승부가 끝난 바둑을 그대로 다시 둬보며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민주당 관점에서 복기하면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2020년 총선 비례 연합정당 참여, 2021년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은 패착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년에 한번씩 나온 큰 패착으로 결국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 아닐까요?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에 대해 “그래도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과 싸우며 오랫동안 쌓아온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런 아우라가 조국 사태, 비례정당 꼼수, 서울·부산시장 공천으로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민주당은 왜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했을까요? 패착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대표, 이낙연 대표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지요.

그게 전부일까요? 저는 열성 당원과 지지자들의 과도한 열정도 작용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강한 압박이 당 지도부의 판단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경향신문> 제목처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4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4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다시 문자폭탄, 민주당 앞길은

민주당 열성 당원과 지지자들의 지나친 열정은 대선 이후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지난 24일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며칠 동안 민주당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이 쏟아졌습니다. 하루에 수백개, 수천개씩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된 민주당의 앞길입니다. 윤석열 정부, 윤석열 행정부 출범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 합니다. 추가경정예산안, 국무총리 임명 동의, 정부조직법 개정 등 첩첩산중입니다. 자칫 잘못해서 대선 불복 프레임에 걸리면 당장 6월1일 선거에서 참패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성 당원과 지지자들은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선 표차가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하고 억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주당 의원들이 당원과 지지자들의 분노와 응어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어쩌면 바로 이 문제가 ‘윤호중 비대위원회’와 박홍근 원내대표의 가장 큰 당면 과제일 수 있습니다.

당원과 지지자들은 정당의 주인입니다. 당 지도부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팬덤에 휘둘리는 정치는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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