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당 대표-중진의원 긴급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여야가 합의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안에 대해 당 최고위원회에서 재검토를 하겠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극한 충돌을 가까스로 피했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이를 추인했지만 검찰과 지지자 반발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뒤늦게 합의 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당 대표로서 항상 원내지도부의 논의를 존중해왔다”면서도 “소위 검수완박 논의가 우리 당의 의원총회에서 통과했다고는 하지만 심각한 모순점들이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입법추진은 무리다. 내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협상안에 대해서 재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날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전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통화하며 ‘검사들의 박탈감’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대표는 “최고위에서 재논의를 하고 그 뒤에 민주당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번 협상을 이끌었던 권성동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오히려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며 “이제는 우리 국민들과 당원들께서 원내대표께 더 강한 힘을 실어주셔서 무리한 입법을 막아내라는 새로운 협상의 목적을 주시라”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권 원내대표의 권한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 원내대표에게 합의를 깨라며 결자해지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민주당에 입법 공청회를 요구하는 한편, 한동훈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 사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는 한 후보자 청문회를 정책 토론회로 넘어가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지난 22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 뒤 잠잠했던 국민의힘 쪽 반발은 주말을 거치면서 확대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합의 이튿날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 없이 급하게 추가 입법이 되면 문제점들이 심하게 악화할 것”이라며 “우려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이날 서울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해 상충 아니겠나”라며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제대로 균형과 견제할 수 있는 그런 검경 수사권 조정 그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야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여야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모두 수용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예비 여권’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던 합의안에 대한 불만은 이 대표의 제동으로 본격적으로 분출되는 모양새다. 조해진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동의한 것은 사리에 맞지않고 민심의 기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며 “여야는 졸속적 검수완박 합의를 유보하고, 당내외는 물론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 등 국민여론 수렴을 통한 사법개혁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의총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권 원내대표의 설득에 다들 끌려가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당내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섣불리 합의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뒤늦게 터져나오는 반발에 권성동 원내대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해명에 나섰지만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권 원내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만약 민주당이 검수완박 원안을 통과시킨다면, 우리는 헌법재판소만 바라보며 위헌이 날 것이라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자동으로 소멸되게 하려는 민주당의 ‘부칙’ 시도를 막아내 ‘검수완박’을 저지할 시간을 벌었다”며 “번 시간 동안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지금의 심각한 우려를 해소하도록 저희 국민의힘이 제대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원내 지도부 쪽에서는 성 접대 의혹으로 당 윤리위에 회부된 이 대표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통적 지지자들의 반발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이준석 대표 관련해서 당 안에서 시끄러운 일이 있고 합의가 잘못됐다는 책임당원들의 목소리가 크니까 그런 부분을 치고 나가면 이 대표가 당원들의 지지를 흡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합의안에 대해 당의 분위기는 상당히 괜찮고 우호적인 분위기이지만 국민 여론이 안 좋으니까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면서도 “의총에서 이미 추인됐고 여야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다시 재론하는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투톱이 충돌하면서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합의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에 관심이 쏠린다. 배현진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당선자는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 (당선자가) 취임한 이후에 국민들이 염려하는 헌법 가치 수호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기소권 입법안에 처음으로 ‘우려’를 나타내면서 넌지시 반대 뜻을 강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윤 당선자 쪽은 철저히 선을 긋고 있다. 윤 당선자 쪽 인수위 관계자는 “당내에서 나오는 얘기는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당선자가 논의해야 할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지켜보겠다’ 외에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수위 관계자도 “당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당에서 얘기하는 게 맞다. 당선자는 전에도 말했지만 검수완박의 ‘검’자도 꺼내지 않는 그런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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