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본사에서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국수본부장)에 검사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한 지 하루 만에 취소하면서 ‘인사 참사’ 논란이 번지고 있다. 정 변호사의 ‘자녀 학교폭력’ 사건은 윤 대통령과 정 변호사가 5년 전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할 때 불거진 사안이어서, ‘윤핵검’(윤석열 대통령 핵심 검찰 출신 관계자)이 주도한 “끼리끼리 인사검증이 빚은 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인사검증의 미흡함을 공식 인정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직자 검증은 공개된 정보, 합법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 세평 조사 등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후보자 본인이 아닌 자녀 관련 문제라 미흡한 점이 있었던 걸로 판단된다”며 “검증에서 문제가 걸러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공직자 후보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등은 인사검증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은 법조계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2018년 11월 ‘고위직 검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보도됐고, 이때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소속 검사 관련 보도가 나오면 지검장에게는 당연히 ‘보고’가 올라간다. 최종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책임자인 한동훈 장관, 대통령실 검증 실무자인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모두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 변호사는 국수본부장 후보자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1·2차 검증을 모두 통과했다.
경찰이 공모를 진행하고 경찰청장이 추천한 이번 국수본부장 인선에는 경찰의 세평 수집까지 더해졌지만,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가 아들의 전학 처분에 불복해 대법원 소송까지 끌고 간 ‘2차 가해’도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실 “우리 시스템 그 정도로 무너졌겠냐” 책임 회피
검증을 위한 사전질문지에 “본인·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냐”는 항목이 있지만 정 변호사는 없다고 답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 세평이나 법무부 1차 검증자료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다. 우리 시스템이 그 정도로 무너졌겠냐. 알았다면 임명했겠냐”며 경찰과 법무부에도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또 다른 관계자는 “판결 검색까지 하지 않더라도 기사 검색만 했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대통령실에서 몰랐다고 하니) 의아하다”고 말했다. ‘익명 보도’였지만 보도 당시 인사검증 책임자들이 현직 검사로 근무하고 있어 정 변호사 자녀 사건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는 의문이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 신설된 국수본은 내년부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사조직이다. 국수본부장은 1차 수사 종결권뿐 아니라 경찰청장이 갖지 못한 개별 사건 수사 지휘권한도 갖고 있다. 경찰 수사권 독립을 상징하는 자리에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을 임명하면서 검찰의 ‘경찰 통제’ 포석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인사검증 단계까지 검찰 출신들이 장악하면서, 사회적 공분을 자아낼 검찰 출신 공직 후보자 자녀 학교폭력과 2차 가해까지 용인한 모양새가 됐다.
정치권에선 ‘검찰끼리 부실검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검찰 끼리끼리 인사검증을 하다 빚은 참사”라고 했고,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검증 시스템을 점검할 부분이 있다”고 논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며 “(국수본부장에) 또다시 검찰 출신을 앉히는 건 국민과 국회를 모독하는 것”(조정식 사무총장)이라며 검찰 편중 인사를 경고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공직후보자 인사 검증의 기본 중의 하나가 ‘후보자와 가족의 학적 사항’”, “민사고를 다니던 아들이 졸업 직전 전학을 갔다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그들의 상식에는 학폭보다는 검사 출신이라는 특권 의식이 먼저였던 것”이라고 적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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