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변호사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은, 전학 같은 분리 처분에 대해 가해 학생이 행정심판이나 소송, 집행정지 신청 등을 해 버티면 피해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낸다. 특히,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심의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하도록 제도가 강화돼왔는데, 대입에서 불이익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학생부 기재를 막기 위한 소송 남발로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분리가 지연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해보면, 대입 수시 전형엔 고교 3학년 1학기까지의 학생부가 반영된다. 정 변호사 자녀도 이 시기까지 학생부에 학폭위 처분 기재를 막기 위해 시간 끌기를 했을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비슷한 방식의 불복은 늘어나는 추세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가해 학생 쪽의 학폭위 결정에 대한 재심(2020년 폐지), 행정심판 청구 건수가 급증한 가운데 가해 학생의 불복이 받아들여진 인용률마저 피해 학생에 견줘 높았다. 재심 청구는 2016년 500건에서 2019년 781건, 행정심판 청구는 같은 기간 302건에서 828건으로 늘었다. 재심과 행정심판이 합쳐진 2020년 사례까지 합쳐보면, 가해 학생 주장이 받아들여진 비율(인용률)은 32.4%로 피해 학생(29.2%)에 견줘 3.2%포인트 높았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학폭위는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교육을 위해 서면 사과부터 퇴학까지 9가지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학은 학교폭력 가해 초·중학생에게 부과되는 최고 수준의 처분이며, 고등학생에겐 이보다 높은 ‘퇴학’ 처분도 가능하지만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실질적인 분리’를 위해 대체로 퇴학보다 전학을 요구하는 편이다.
교육계에서는 학폭위 처분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제도를 전반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대구에서 같은 반 학생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벌어진 이후, 교육당국은 2012년 1학기부터 학생부에 학폭위 처분을 기재하도록 했다. 이후에도 학교폭력 대응 수단으로 ‘학생부 기록 및 졸업 뒤 보존’이 자주 거론됐는데, 상대적으로 피해 학생에 대한 실질적 보호엔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한겨레>에 “학생부 기재가 소송을 부르고, 오히려 피해자 보호에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학생부 기재와 피해·가해 학생의 분리 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책연구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전 회장은 “고교 3학년 2학기에 처분이 확정돼도 이를 (가해 학생이 지원한) 대학에 고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가해 학생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은 시간을 끌 일이 아니라고 여겨 빨리 사과하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1년부터 ‘즉시 분리 제도’(학교장이 학폭을 인지한 경우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가 없으면 최대 3일간 지체 없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분리)가 시행되고 있다”면서도 “여러 우려를 수렴해 다음 달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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