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뒤늦게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자료를 비공개한다. 존재 여부도 말해줄 수 없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적 자료를 갖고 있는지를 묻는 정보공개청구에 법무부가 낸 최종 답변이다. 아들 정씨의 학적 자료에는 고교 3학년이던 2019년 2월 그가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갔다는 정보가 담겨 있다. 왜 전학갔는지, 전학 사유는 무엇인지 검증할 단서가 될 수 있다. 법무부가 학적 자료를 갖고 있었다면 ‘봐주기 검증’, 학적 자료가 없었다면 ‘부실 검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에 낙마 직후부터 법무부가 이 자료를 갖고 있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지만, 있어도 비공개
법무부는 지난달 17일 ‘<한겨레>의 ‘정순신 아들 학적 자료 비공개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과 관련해 특정 자료의 내용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해당 자료의 보유 여부에 관한 정보 등 구체적인 사항이 공개되면 향후 정부 인사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법무부 답변
정씨 학적 자료를 갖고 있는지 여부도 알려줄 수 없고, 있다해도 비공개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무부의 이런 처분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행정안전부가 낸 정보공개운영 안내서를 보면 정보공개 여부 결정유형은 △전부공개 △부분공개 △비공개 결정으로 구분된다.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부존재’ 처분을 해야 한다. ‘부존재’ 처분과 ‘비공개’ 처분을 동시에 할 방법은 없다.
이 자료의 존부에 대해선 이미 힌트가 나와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2월 ‘학적부 자료가 있는데도 학폭 검증을 안했으니 부실 검증이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가족 학적부를 동의한다고 다 가져올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도 동의하지 않을 것 같고, 법적 근거도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료를 가져올 근거가 없고,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부존재’ 처분을 하지 않았다. 이 처분을 통해 학적부 자료가 없다는 점이 공식 확인될 경우 ‘지난 정부에서는 학적부 자료가 필수 제출 자료였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 검증을 담당했던 이들은 ‘검증을 위해서는 공직후보자가 개인정보 관련 자료 제공에 동의해야 했다. 학적 정보 또한 필수 제출 대상’이라며 학적 자료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한 장관 해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전문가들은 법무부 처분이 정보공개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비공개 처분을 했다면 통상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며 “대통령실도 ‘정보 보유 여부조차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은 잘 하지 않는다. 이례적인 처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의 투명성이나 책임성을 담보해야 하는 정보공개제도 취지를 해치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도 “정보공개법상 비공개와 부존재 처분은 명확히 구분된다. 법적으로 이를 구분하지 않고 애매하게 답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행태”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사검증과 관련해 구체적 자료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 외 특정 자료 수집 보유 여부에 관한 정보까지 모두 비공개 대상 정보”라며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법무부는 이런 취지에서 비공개 결정을 하고 이의신청도 기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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