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채아무개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달 22일 대전 유성구 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됐다. 국가보훈부 제공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채아무개 상병(이하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이 사고 발생에 앞서 ‘병사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수중 수색을 한 것’을 보고받고도 안전조처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병대 수사단은 임 사단장이 수중 수색 보고를 받고도 수사단 조사에서 사전에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것을 “허위 진술”로 판단하고, 그에게 업무상 과실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은 채 상병 사건 수사를 둘러싼 외압 논란에 “가짜뉴스”라고 선을 그었지만, 임 사단장의 혐의와 관련한 물증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대령)의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가 13일 공개한 임 사단장과 해병대 1사단 공보정훈실장의 카카오톡(카톡) 대화를 보면, 지난달 19일 채 상병 사건이 발생하기 3시간 전쯤인 이날 아침 6시05분~6시12분 공보정훈실장은 임 사단장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로 해병대 장병들이 안전장비 없이 물속에서 수색작업을 하는 홍보사진과 보도기사 등을 보고했다. 이에 임 사단장은 1시간 뒤인 7시4분께 “훌륭하게 공보활동이 이루어졌구나”라고 답했다. 이 문답 약 2시간 뒤인 오전 9시께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호우 실종자 수색을 하던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 카톡 문답을 물증으로 확보해 수사서류에 편철했다.
지난달 19일 고 채아무개 상병 실종 2시간전 해병대 1사단장과 참모가 주고받은 카톡 대화. 해병대 장병들이 수중 수색하는 사진들이 보인다. 김경호 변호사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김경호 변호사는 “(안전장비 없이 수중 수색을 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해병대에서) 언론에 제보된 것을 보고 수사관이 임 사단장에게 ‘이 사진을 언제 보았는가’라고 물으니, ‘장례식장에서 처음 보았다’고 허위 진술하면서 ‘자신이 이런 모습(위험한 수중 수색)을 미리 알았으면 조치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공보정훈실장이 최초 해병대 수사단 수사 때는 (임 사단장에게 보고한) 카톡 관련 진술 및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보고 누락 등에 따라) 징계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공보정훈실장이 (관련 증거를) 수사관에게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정훈 대령은 당시 해병대 1사단에 파견돼 있던 해군 군검사와도 논의했고, 군검사는 유사 판례를 들어 안전조처를 취하지 않은 임 사단장의 책임이 있다는 법무조언을 했다고 한다.
해병대 사령부는 오는 16일 박 대령의 징계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그가 지난 11일 사건 축소 및 외압 의혹을 폭로하고, 사전 승인 없이 지상파 생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김 변호사는 “징계 연기 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16일 징계위를 강행할 경우, 행정소송 등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령 쪽은 14일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도 정식 신청할 계획이다.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사건 이후 군검찰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위원회는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등을 심의한다.
한편,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추측”이라며 “가짜뉴스를 만들어가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지난달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아무개 상병의 유족이 언론에 채 상병의 이름을 보도하지 말 것을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요청해왔습니다. 한겨레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채아무개 상병’으로 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