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오는 26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으로 분수령을 맞는다. 2021년 9월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에서 출발해, 정권 교체 뒤 이 대표를 중심에 둔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진 지 2년 만이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이 갈리는 것은 물론,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에도 일대 파장이 예상된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대표가 구속되면 당내에서 (계파 간) 일전이 벌어질 거고, 구속되지 않는다면 날개를 단 이 대표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민주당에서 최소 29명이 이탈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뒤 격화된 당내 계파 간 갈등의 형세가 이 대표 영장심사 결과에 달렸다는 것이다. 당내 ‘가결파’를 비롯한 비이재명계가 체포동의안 가결 뒤 친이재명계와 강성 지지층의 ‘색출·숙청 예고’에도 침묵하는 배경은 ‘일단 영장심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해 영장을 발부할 경우, 그간 “검찰독재정권의 무도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해온 이 대표는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 대표 수사에 당력을 총동원해온 민주당 역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방탄 정당’에 더해 ‘비리 정당’의 혐의까지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다만, 친명계에선 “결국 중요한 건 국민 여론”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친명계 한 의원은 “이 대표의 구속으로 정권 심판론이 거세질 경우,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직 야당 대표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정치적 사태를 두고 여론이 여권에 불리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방문해 입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당권을 두고 격화될 당내 갈등은 상수다. 이 대표가 구속될 경우 2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선출할 새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대표 대행을 맡게 되는데, 총선을 앞두고 ‘대행 체제’를 장기화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헌·당규상 대표 궐위 시 잔여 임기가 8개월 이상인 경우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뽑아야 하지만, 정기국회 중인 만큼 원내대표 대행 체제로 10~11월을 지낸 뒤 ‘새 비대위원장 체제’로 가거나 총선 앞 ‘조기 선거대책위 체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총선 공천권을 쥔 비대위 구성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사이 내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 내분을 피하기 위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에 무게를 실었던 ‘중간지대’도 이 대표 구속 땐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부한 이 대표의 메시지로 리더십에 대한 당내 신뢰가 크게 깎인데다, ‘옥중 공천’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까닭이다. 한 다선 의원은 “총선이 가까워지면 매일 변수가 터지는데, 수감 중에 그 상황을 어떻게 다 제어하겠나. 옥중 공천설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과의 1차 전쟁에서 승리한 이 대표는 대여 투쟁과 총선 공천의 고삐를 틀어쥘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공천 학살’ 가능성뿐 아니라, 중도층 표심 없이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들의 탈당이 시작될 수 있다. 비명계 한 의원은 “영장이 기각돼 이 대표가 돌아오면 그땐 무한투쟁으로 들어갈 것이고, 비명계에선 마녀사냥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때 (분당해) 기호 3번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이 대표 영장심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이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윤석열 정부가 무리한 수사를 밀어붙여 야당을 탄압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여권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대표가 구속될 경우 당장은 민주당 내분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민주당이 새 지도부를 꾸려 대대적인 ‘쇄신’에 나설 경우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영남지역 한 의원은 “이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공격을 비롯해 집권 여당으로서 여러 책임론이 나올 테고,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마냥 호재만은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총선까지 안고 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호재”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도 “영장이 발부된 뒤에도 이 대표가 당권을 놓지 않고 민주당 내부 갈등이 이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식이든 당내 갈등이 봉합되면 우리한테 득 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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