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전 총경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가 왜 일어났습니까. 경찰이 국민을 보는 게 아니라 인사권자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참담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삼영(59·사진) 전 총경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떠나온 조직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큰듯했다.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며 투쟁 전면에 나선 뒤 류 전 총경은 윤석열 정부의 눈 밖에 나 찍혀나간 ‘1호 공직자’가 됐다.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주도했단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와 ‘보복성 인사’를 당한 뒤 지난 8월 경찰을 떠난 그가 1년여 투쟁의 기억과 35년 경찰 생활을 담아 에세이집 ‘나는 대한민국 경찰입니다’(메디치미디어)를 최근 펴내고 한겨레와 인터뷰에 나섰다. 1964년 울산에서 태어난 류 전 총경은 경찰대 4기(1984년 입학)로 졸업한 뒤 부산 영도경찰서장,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국장 등을 지냈으며, 울산 중부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전국 총경 회의를 주도했다.
류 전 총경의 책은 지난해 7월23일의 기억으로 문을 연다.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며 총경급 간부들이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모인 서장 회의를 연 날이다. 현장에 54명의 간부들이 모여들었고, 357명이 반대에 뜻을 모았다. 총경급 간부 600여명의 과반이 넘는 숫자다. 류 전 총경은 정년을 2년여 앞둔 상황이었지만 모여든 이들의 많은 수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 간부들이었다. 경찰 역사 77년 만에 보기 드문 ‘항명’이었다. “그날 ‘우리 경찰에 희망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공직을 떠난 류 전 총경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게 쿠데타지요? 권력자가 합법적인 수단으로 헌법 질서를 무력화하는 게 친위 쿠데타입니다. 경찰국 설치를 비롯해 지금 윤석열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게 친위 쿠데타지요.” 사실 경찰국 설치 반대 투쟁에 나설 때부터 그는 이미 두려운 게 별로 없는 듯 보였다. 서장 회의를 두고 대통령실과 여권이 일제히 “하나회 쿠데타”에 빗대며 옥죄어오자 류 전 총경은 “공무원의 입을 막아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세력이 오히려 쿠데타 일당”이라고 맞받았다. 출범한 지 석 달 밖에 안된 서슬퍼런 정권에 ‘현장 간부’급인 총경이 온몸으로 맞선 것이다. ‘그때부터 직을 걸 생각이었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하루를 살아도 가치있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았어요.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내가 목숨을 한번을 걸어야겠다 했는데 ‘지금이 그때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그는 경찰의 집단 반발이 윤석열 정권에 “브레이크를 세게 걸었다”고 평가했다.
비록 경찰국 설치를 막아내진 못했지만, ‘검찰공화국’을 향한 새 정부의 기획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나서지 않았다면 훨씬 더 자유롭게 경찰을 흔들었겠죠. 서장들이 나서면서 국민들이 감시의 눈을 갖게 됐고 그 시기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하면서 어느 때보다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경찰 인사권을 장악하고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설치된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아들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을 앉히려 했지만 실패했지요. 본인 친구인 이균용 판사를 대법원장에 앉혀 사법부를 장악하려 했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검찰공화국으로의 가는 첫 단추”를 끼우는 데 도전을 받자 뒤이은 시도들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의 역사에 영예만 있는 것은 아님을 류 전 총경도 잘 알고 있다. 엄혹한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어두운 역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건국 이래 독재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역에 앞장선 오욕의 족적이 뚜렷하다. 그런 역사 때문에 류 전 총경은 윤석열 정부에서 경찰이 중립성을 빼앗긴 건 더욱 더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본다. “독재정권이냐 민주정권이냐에 따라 정부는 경찰을 뗐다 붙였다 해왔습니다. (독재정권에서)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처럼 경찰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국민이 용서해주셨는데, 다시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
그가 퇴직 후 책을 쓰는 작업에 매달려온 것도 “이제 경찰 밖에서 경찰의 명예를 위해서, 내부에선 말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알리고 원위치로 되돌려놓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는 14일 부산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향후엔 유튜브 채널을 열어 경찰 내부의 문제들을 짚어갈 계획이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그가 지난해 징계를 받을 때부터 경찰 안팎에선 총선 출마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류 전 총경은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있습니다. 더 큰 힘이 있으면 제 목소리가 더 잘 들릴 수 있을 테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제가 깜냥이 될까 싶은 거지요.”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며 경찰국 설치에 반대한 그가 정치에 나선다면, 주장의 진의마저 의심받게 되진 않을까. ‘처음부터 정치에 나서려 목소리를 낸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류 전 총경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답했다. “제가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릴 정도면 정치 천재 아닐까요? 제 책 제목이 ‘저는 대한민국 경찰이었습니다’가 아니라 ‘경찰입니다’인 이유를 살펴주세요. 퇴직했지만 경찰 밖에 있는 지금도 더 간절히 경찰이 더 잘 되기를, 옳은 길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고, 앞으로도 그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