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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피의자 대통령’ 체포하면 안 되나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6-11-21 15:28수정 2022-08-19 16:11

불소추 특권으로 수사대상도 아니라고 했지만
‘수사는 할 수 있다’ 해석…결국 ‘피의자’ 입건
체포영장 집행할 수 있는지 또다른 논란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2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등 3명의 피고인과 상당 부분 공모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최순실씨 등은 직권남용과 강요,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지요.

‘(공소장에) 대통령이 피의자라는 의미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은 “그렇다. 피의자로 입건을 했다.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박 대통령 쪽은 “검찰 조사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몸통’은 박 대통령입니다. 검찰은 정말 박 대통령을 조사할 방법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의지의 문제일까요?

지난 4일 2차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4일 2차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 형사부에 배당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지난 9월20일 <한겨레>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처음 보도한 뒤([단독]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인 29일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뇌물 등의 혐의로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청잭조정수석비서관 등을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된지 일주일 만인 10월5일에야 서울중앙지검 1차장 산하인 형사부에 사건을 배당했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굵직한 사건을 맡는 특수부에 배당되는 것이 맞지만, 이 사건은 단순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에 배당된 것입니다.

검찰이 수사의지가 없다는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배당 이후 20여일간 검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최순실과 차은택 등 핵심 관련자들은 줄줄이 출국했지요.

‘최순실 의혹’ 혐의 분명치 않다며 미적대는 검찰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내외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 등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이 짙어지고 있지만, 검찰은 범죄혐의가 분명하지 않다며 소극적인 수사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략)

지난달 말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최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재단에 돈을 낸 기업의 임원 등 80여명을 뇌물 수수 및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들의 지위나 행위 등을 볼 때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돌입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은 수사기관으로 범죄혐의가 있어야 적극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현재 범죄혐의를 검토하는 단계다. 언론에 제기된 의혹들 모두에 대해 곧바로 수사를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사건 배당 단계부터 예견돼 왔다. 검찰은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씨와 안 수석 등이 포함된 고발 사건을 고발장 접수 엿새 뒤인 지난 5일 부동산 관련 고발·고소 사건 등을 다루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한웅재)에 배당했다. 특히 수사에 투입된 검사는 부장검사를 비롯해 고작 3명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참고인까지 포함해 100명이 넘는데 검사 3명이 수사를 맡았다. 검찰이 수사할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 받을 것”

미르재단 등의 의혹에 대해 그동안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라고 일축했던 박 대통령은 20일 처음으로 입장을 내놨습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검찰은 그제서야 같은날 20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한 국장급 관계자 2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21일에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특혜입학 의혹과 관련해 최씨 모녀와 최경희 전 이대 총장이 검찰에 고발됐습니다. 검찰은 21일 수사팀을 2명에서 5명으로 확대했습니다.

이어 24일 충격적인 언론 보도가 나옵니다. JTBC에서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를 입수·공개한 것입니다. 200여개의 파일에는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 극비 외교 서류, 북한과의 비밀접촉 사실을 담은 안보 서류 등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검찰은 이제서야 기존 수사팀에 특수수사 부서 검사 3명을 증원했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사건 수사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25일 대통령은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서 최순실씨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사실을 일부 인정했지만, “의견을 들은 것 뿐”이라고 일축했지요.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 김현웅 법무부 장관 “박 대통령은 수사 대상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청와대 자료를 보냈다고 인정했음에도, 법무부는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0월2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의에 “헌법에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게 돼 있다. ‘소추에는 수사도 포함된다’는 게 다수설이다"고 밝혔습니다. 불소추 특권에 따라 박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소추특권을 가진 현직 대통령은 특정 형사사건에 대해 기소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 불소추 특권이 ‘기소’ 뿐 아니라 ‘수사대상’ 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기소’만 못하는 것일 뿐 ‘수사나 조사는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특검 추진되자…강력한 수사 의지 표명한 검찰

새누리당은 26일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특검을 당론으로 추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역시 의원총회에서 특검 실시를 당론으로 확정했습니다. 여야 정치권에서 특검 도입이 거론되자 검찰 역시 강한 수사의지를 밝히기 시작합니다.

10월27일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습니다. 기존의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사건 수사팀에 특수 1부 검사들이 전원 합류해 15명 안팎의 팀이 구성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합니다. 30일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수색했고, 31일에는 최순실씨를 건급체포했습니다. 11월 2일에는 안종범 전 수석이 검찰에 출석했으며, 바로 긴급체포됐지요. 11월 4일에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체포됐습니다. 같은날 검찰은 10명의 검사를 추가 파견했고, 특별수사본부는 검사만 32명에 달하는 역대 최고급 규모로 확대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 앞에서 기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 앞에서 기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고리 3인방 등에 대한 조사가 끝나고, 박 대통령이 의혹의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를 요구했고, 박 대통령은 15일 검찰의 ‘대면조사’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 관련 의혹 사항이 모두 정리되는 시점에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대해서는 서면조사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20일 최순실씨 등을 기소하기 전 박 대통령의 대면조사 마지노선으로 18일을 제안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 마저 거절했습니다.

박 대통령 또 조사 버티기...검찰 ‘최종 제안’도 거부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오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대통령의 일정과 저의 준비상황을 감안할 때 최대한 서둘러서 변론 준비를 마친 뒤 내주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검찰은 애초 박 대통령 대면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최초 시한을 16일로 잡았으나, 박 대통령 쪽의 조사 연기 요청에 18일 대면조사를 최종 제시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검찰의 최종 제안을 거부한 것은 최씨 등에 대한 검찰의 공소 내용을 확인한 뒤 법률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는 입장 자료를 내어 “최순실 등 구속된 3명이 기소되기 전에 (대통령) 대면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그 마지막 시점이 내일(18일)까지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거듭 밝힌다”며, 물리적으로 대통령 조사를 다음주로 연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주 대면조사를 거부함에 따라 검찰은 최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이번 주말 동시에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 박 대통령 조사 실패…‘체포영장’ 청구?

20일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이라고 명확하게 선언했습니다. 이번주중에 검찰 조사를 받겠다던 박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검찰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의 조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춘추관에서 검찰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춘추관에서 검찰의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이 응하지 않는 이상 박 대통령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마지막 남은 카드는 ‘체포영장’ 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박 대통령의 검찰 조사 거부 선언에 대해 “검찰은 소추는 할 수 없어도 증거인멸과 더 이상의 사법방해를 막기 위해 당장 체포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에 필요할 때 피의자가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체포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대통령의 신분을 피의자로 전환한 만큼 강제소환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입니다.

문제는 불소추특권이 있는 박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아직 법조계에서는 ‘인신구속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 최순실씨에게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을 때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불소추 특권에 따라 박 대통령은 수사 대상 조차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수사 대상을 넘어 이제 피의자가 됐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로 뽑힌 헌법 기관입니다. 여느 피의자처럼 영장을 받아 조사하기엔 ‘모양새’가 민망하긴 합니다.

검찰은 ‘기소중지’ 카드를 꺼내들 수 있습니다. 불소추특권은 재임기간 동안 기소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영원한 면죄부를 뜻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기소중지를 하게 되면, 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순간 검찰은 기소가 가능하고 재판에 넘겨지게 됩니다. 박 대통령이 지금 당장 검찰 조사를 받든 안받든, 최순실씨의 공소장에 ‘대통령과의 공모’가 명시된 이상 박 대통령은 법의 심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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