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가 태어난 뒤로 마음이 조급해지고 압박감에 시달리는 지경이 됐습니다. ‘세상을 빨리 바꿔야 돼, 빨리빨리. 두리가 더 자라기 전에 빨리.’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오늘이 마지막 글입니다.
저는 글을 읽고 쓰는 게 참 버거운 사람이었는데, 절박한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연재를 시작(지난 3월25일)한 지 8개월이 꽉 찼네요. 단지 세상에 흔하디흔한 엄마가 된 것뿐인데, 살면서 이토록 절실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었고, 그 일을 하는 게 좋았는데요. 그러나 두리가 태어난 뒤로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일의 즐거움보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지경이 됐죠. ‘세상을 빨리 바꿔야 돼, 빨리빨리. 두리가 더 자라기 전에 빨리.’
가난한 청년으로 입문한 여의도 정치
의원 임기중 추가된 엄마란 당사자성
국회에서 확인한 엘리트정치 현주소
아무도 우리 억울함 알지 못하고
아무도 우리 문제 해결해주지 않아
정권 바꿨지만 새 세상 상상 못한
‘혁명’이란 표현에 느끼는 거리감
당사자로서 생활 속 적폐 끝내야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주국가 온다
정두리 어린이에게 참정권 허하라!
엘리트 정치는 제삼자의 정치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는 참 빠릅니다. 어떤 날은 오전과 오후의 얼굴 생김새가 달라 보일 정도죠.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엄마의 정치는 언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두리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됐을 때, 세상은 과연 더 나은 모습일까?’ 그런데 마지막 글을 쓰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그런 조급증이 다 사라졌습니다. 두리에게 완결성 있는 성과를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거죠. 노동, 복지, 교육, 환경, 평화 등 ‘정치하는엄마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상은 성취하기 쉬운 범위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정치하는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침묵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삶의 전범,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리와 아이들 손에 꼭 한 가지 ‘변화’를 쥐여주고 싶다면 저는 참정권을 선택하겠습니다. 선거권이 없는 어린이·청소년도 정당 및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리, 그리고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을 교육받을 권리 말입니다. 옛말처럼 물고기를 잡아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하니까요.
엘리트주의와 엘리트 정치.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지도층이 되어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상황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선거공보물이 집에 오면 각 후보들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얼마나 잘난 직업을 가졌는지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죠. 정치가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는 것에 특별히 반발심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학생 시절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가 반장을 하는 건 겨울이 추운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팔자에 없는 국회의원이 되고 엘리트 정치라는 것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나자 저는 그것을 확실히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엘리트주의라는 늪에서 발을 빼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고 저는 단언합니다.
저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2012년 5월8일, 당시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통합당 좋은일자리본부 위원장 자격으로 청년들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7명의 청년과 8~9명의 국회의원(당선자)들이 참석했죠. 저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이면서 국회의원 당선자였고요.
청년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 흔하고 익숙한 ‘우리’ 이야기였습니다. 학자금 대출로 신용불량자가 된 청년이 고가의 수제 개사료(개간식)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삶의 서글픔과 우리 사회의 모순. 대학 졸업 후 파견직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로 6년 만에 학자금 대출을 털어내느라 20대를 모두 보내버린 30대 구직자 청년의 막막한 미래. 토익 점수가 900이 넘고, 자격증이 수도 없는데 ‘더 열심히 살지 그랬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좌절감과 비통함.
그건 저 자신의 이야기이고, 제 친구들의 삶이었죠. 재미도 없는 청춘을 악착같이 살아가는 요즘 청년들,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는 청년들에게 ‘게으르다’는 낙인은 정말 가혹한 매질입니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 국회의원들은 기성세대로서 반성한다는 말과 함께 정치적 노력을 약속했죠. 물론 언론에 기사도 많이 실렸고요. 유력 정치인들이 평범한 청년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시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남은 일회성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더 자주 이루어져야 하고 ‘증언대회’에서 깊은 ‘상호토론’으로 발전해 나가야만 하죠.
그러나 ‘청년유니온 간담회’라는 숙연한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국회의원들의 뒷모습에서 엘리트 정치의 한계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반성도 약속도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들이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고, 무지한 것도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없듯이, 그들도 우리를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단 한 번의 간담회로는 죽었다 깨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청년 세대의 문제로 밤새 고뇌하고 가슴 치지 않습니다. 그걸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청년 문제를 대신할 나름의 고뇌와 절실함이 있겠죠.
그때부터 저는 당사자의 정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청년의 고뇌는 청년 당사자의 몫이고,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년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당사자’란 ‘어떤 일이나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반대말은 ‘제삼자’라고 쓰여 있더군요. 그러니까 엘리트 정치는 제삼자의 정치입니다.
갓 태어났을 때 두리의 양말. 지난 30년 동안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않은 것이 민주화 세대의 패착입니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엘리트 정치가 늘 문제인 건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정치의 효용은 이미 다한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이미 30년 전부터 공동의 적이나 공동의 목표를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사독재나 빈곤 같은 것 말이죠. 그동안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는 세분화되었고, 그래서 소수·균질의 엘리트 집단이 절대로 충족시킬 수 없을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모로 엘리트 정치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데, 당사자 정치가 아직도 요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국회에 있는 동안 가난한 청년 노동자의 당사자성,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평화활동가의 당사자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여의도 정치 기득권에 정신적으로 편입되지도 않았죠. 임기 중에는 ‘대한민국 엄마’라는 또 하나의 당사자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달랑 한 명의 엄마 국회의원은 한없이 무력했습니다.
2012년 7월 대정부질문 때 일이 떠오릅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1950원짜리 노량진 컵밥을 흔들면서 요새 청년층에서 결핵·A형간염·우울증 같은 ‘빈곤병’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더니,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 왈 ‘결핵 증가의 원인에는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 상황을 지켜본 같은 당 의원들은 총리의 황당한 답변에 야유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저에게 질의를 잘했다는 격려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도 청년 문제에 대한 깊은 우려와 공감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자신은 청년기를 지난 지 오래고, 그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경제적 곤란을 겪지 않기 때문이겠죠. 청년·여성·엄마·장애인 등 정치적 약자, 정치권력에서 배제된 계층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조직된 당사자 운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사자의 정치운동 없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억울함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전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온전히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눈치만 보던 정치 엘리트들을 결단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촛불의 숫자였죠. 수백 수천만의 촛불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저는 심정적으로 동의가 안 되더군요. 정권을 교체했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건 인정하지만, 우리는 ‘박근혜 퇴진, 적폐 청산’ 이후에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상상하지 않았고 토론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런 비전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정권교체만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새로운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죠. 촛불을 든 시민들이 지지자가 아닌 당사자가 될 때만이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국정농단만이 적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부당해고(경력단절)라는 적폐, 보육·교육의 민영화라는 적폐, 환경권·건강권·생존권이 자본 앞에 무력화되는 적폐, 명절증후군이라는 해묵은 적폐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촛불이 진짜 혁명이 되려면 내 삶의 적폐를 청산해야 합니다. 삶의 터, 일터에서 마음에 촛불을 켜야 합니다.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시민정치의 과제이자 촛불혁명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집안에서 일터에서 교실에서 마을에서 민주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민주사회·민주국가라는 거창한 성취도 없습니다. 소위 민주화 세대가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못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386세대였다가 486을 거쳐 이제 586이 된 그들은 가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사장이 되고, 이장이 되고, 동장이 되고, 시장이 되고, 교장이 되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지 못했죠. 삶 속에서 나이와 성별과 빈부에 의한 위계와 차별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강사와 대학원생에 대한 착취와 차별이 만연했지만,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마저 이를 묵인합니다. 민주화 세대 역시 권위의 상징이 되고 꼰대가 되었고, 다음 세대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정치 금기시 교육은 민주주의 적
지난 촛불혁명에 대해 해외로부터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청소년, 교사, 공무원의 정치참여를 여전히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시민운동단체에 가입한 19살 이상 국민은 4.6%이고, 그 가운데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2.2%에 불과하죠. 반면 독일은 1990년 당시 시민단체 참여율이 57%, 시민단체 수는 무려 28만6천여개(<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아르케, 2002)라고 합니다. 같은 시기 덴마크 국민의 시민단체 참여율을 86%, 네덜란드는 75%라고 하니 한국의 엘리트 정치가 이례적으로 공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17살에 사민당에 입당했고,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도 18살부터 기민당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역시 18살에 사민당에 입당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17살에 자유독일청년단 회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권리당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당내에는 평당원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가 없고, 정당 민주화 요구도 높지 않습니다. 정당마저 정치교육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당원이 되고 지지자가 되는 것으로 정치에 참여한다고 보기 힘든 이유입니다. ‘지지자 정치’는 엘리트 정치의 다른 이름일 뿐이죠.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분단 당시 서독은 좌파와 우파 간에 교육지침을 둘러싼 이념 갈등이 매우 심각했다고 합니다. 1976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우에서 극좌까지 약 3000개에 달하는 정치교육 이론가, 실천가 그룹이 소도시인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일주일간의 토론 끝에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정치교육의 3원칙을 말합니다.
첫째, ‘정치교육에서 주입식 교육의 금지원칙’으로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논쟁의 투명성 원칙’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교실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모두 다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죠. 마지막으로 ‘수요자 지향성의 원칙’입니다. 즉 정치교육에서 다루는 내용부터 결론까지 학생 자신이 처한 삶과 상황에 입각해 자율적으로 도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쟁적인 주제와 정치적 쟁점을 교실에서 추방하자는 논리만큼 무서운 게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을 포기하고 정치를 터부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법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않은 것이 민주화 세대의 패착입니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두리 어린이에게 참정권을 허하라!’ 이것이 저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번회로 ‘장하나의 엄마정치’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