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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출산율만 관심이라고? 그럼 비혼 출산을 장려하든가요

등록 2017-11-12 10:47수정 2017-11-12 11:12

[토요판] 장하나의 엄마 정치
<17> 번지수 틀린 저출산 대책

정책 당국자나 일부 학자, 보수 언론은 늘 저출산 문제를 ‘여성’에게 돌린다. 최근에는 가임기 여성의 독신 비율이 높아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혼인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여성들을 출산기계로 보는 한심한 발상들이다. 사진은 지난 9월 어느날 새벽 5시에 잠을 깬 두리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정책 당국자나 일부 학자, 보수 언론은 늘 저출산 문제를 ‘여성’에게 돌린다. 최근에는 가임기 여성의 독신 비율이 높아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혼인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여성들을 출산기계로 보는 한심한 발상들이다. 사진은 지난 9월 어느날 새벽 5시에 잠을 깬 두리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지난 9일 저출산 대책에 대한 <조선일보> 기사 한 건 때문에 평온하던 ‘정치하는 엄마들’ 회원들의 텔레그램 채팅방이 반나절간 시끌시끌했습니다. 기사 제목이 이렇습니다. ‘결혼만 하면 2명 이상 낳더라…출산율 낮추는 건 非婚(비혼)’.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왜 잊을 만하면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사 내용인즉슨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2000~201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배우(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합계 출산율이 2.23명으로, 저출산 문제가 불거진 2000년(1.7년)보다 나아졌다는 것입니다. 반면 지난해 20~49살 여성 가운데 절반(49%)이 독신으로 2000년 29.6%이던 여성 독신자 비율이 16년 만에 1.7배 정도 증가했고, 결혼 건수 역시 28만1600건으로 1974년 이후 42년 만에 가장 적었다는데요. 그래서 인구절벽의 원인은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리는 기사였죠. 게다가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내놓은 2006년부터 지난 12년간 투입한 예산이 126조원 규모인데 이 중 65.5%가 무상 보육·교육비와 시설 지원비로 쓰였기 때문에 저출산 현상의 개선 효과가 떨어졌다는 주장인데요.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결혼이 출산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이미 결혼한 부부들 위주로 저출산 대책을 짜는 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답니다.

우리나라 비혼 출산율 1.9%로 세계 꼴찌

이철희 교수는 경제추격연구소 소속으로 2016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저출산 대책의 효과성 평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위의 주장에 덧붙여 여성의 학력과 유배우 비율의 변화를 상세히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 중 ‘제5절 학력별 여성 합계출산율 변화 요인 분석’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저학력 여성보다 고학력 여성의 유배우 비율 감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 둘째, 고학력 여성의 유배우 비율이 비교적 연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저학력 여성들의 유배우 비율 감소 추세는 2005년 이후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는 점. 더 늦은 나이에 결혼하기 때문에 여성의 교육 수준 증가는 유배우 비율 감소의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데요. 여기까지 읽고 함께 분노하신 분들은 일단 정치하는 엄마들에 합류하실 것을 권합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그런 면에서 위 기사나 보고서는 90%가 진실입니다. 그러나 수를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잘못됐습니다. 9월27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인구동향’을 보면 지난 7월 출생아 수는 2만9400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500명(-13.3%) 줄었고,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0년 이래 7월 기준으로 가장 적은 수라고 합니다. 월별 출생아 수가 3만명 미만을 기록한 건 지난해 12월(2만7200명), 6월(2만8900명)에 이어 세 번째이고, 출생아 수 감소폭은 지난 1월부터 7개월 연속 10%를 웃돌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21만7800명으로 지난해보다 12.4%나 감소했고,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연간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40만8300명)를 밑돌 전망이라고 하네요. 1·2분기 출산율을 토대로 추산한 올해 합계출산율은 1.04명입니다. 세계 1위는 따 놓은 당상이죠. 확실히 말해 두지만, 이 현상의 원인은 여성의 비혼이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120조원를 쓴 정책 입안자들의 무능 때문입니다. 제발 (고학력) 여성 탓으로 돌리지 좀 마세요.

당신들이 왜 실패했는지 친절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결혼을 안 하니 아이를 안 낳는다는 전제는 동의해드리죠. 통계청에 따르면 7월 혼인 건수는 1만9000건으로 전년보다 2200건(-10.4%) 줄었고, 올해 1~7월 누적 혼인 건수는 15만6900건으로 전년 대비 8200건(-5.0%) 감소했다고 하니 향후 수년간 출산율이 제고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자 이제 어쩔 셈인가요?

먼저, 결혼을 여성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혼인율 하락의 원인을 여성의 비혼에서만 찾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남성들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인데 여성들이 결혼을 안 해줘서 문제인가요? 혼인율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가임기 여성뿐만 아니라 그 또래의 남성들에게도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직접’ 물어보기 바랍니다.

12년간 126조원 썼는데도
출산율 세계 최저 계속되자
“여성 독신 증가” 탓이라며
일부 학자·언론 궤변 내놔

프랑스 등 출산율 오른 나라
혼외 출산이 50% 이상 차지
인구절벽 문제 해결하려면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해야

그리고 당신들이 걱정하는 것이 혼인율이 아닌 출산율이라면 발상의 전환을 해보기 바랍니다. 위 보고서 41쪽에도 쓰여 있듯 ‘우리나라는 혼외 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 문화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무배우 출산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죠. 그러니 계속 떨어지는 혼인율에 집착하지 말고, 무배우 출산율(비혼 출산율)에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발상의 전환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비혼 출산율도 가장 낮습니다. 2014년 오이시디 국가 평균 혼외출산율은 39.9%인데 한국은 1.9%에 불과합니다. 프랑스(56.7%), 노르웨이(55.2%), 덴마크(52.5%), 스웨덴(54.6%)에서는 비혼 출산이 전체 출산의 절반이 넘습니다. 2014년 현재 프랑스 출산율 1.98명, 스웨덴 출산율 1.88명이라고 하니 출산율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비혼 출산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프랑스도 나름 저출산 문제를 겪었습니다. 1993년 1.65명으로 합계 출산율의 저점을 찍은 프랑스는 1999년부터 동거가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민연대협약’을 도입했는데 동거 커플에게도 법률혼 관계의 부부와 동일한 세제 및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거죠. 비혼 출산율이 자동 증가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아직도 ‘베이비 박스’를 껴안고 사는 ‘해외 입양 대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오직 고학력 여성의 비혼 현상에 꽂혀 있는 당신들이 저출산의 원인입니다.

국공립과 민간·가정어린이집의 격차가 커서 아이들은 엄마 자궁에 착상하자마자 국공립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 번대의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추석 제주 해변가에서 흙놀이를 즐기는 두리.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국공립과 민간·가정어린이집의 격차가 커서 아이들은 엄마 자궁에 착상하자마자 국공립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 번대의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추석 제주 해변가에서 흙놀이를 즐기는 두리.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정부의 ‘가족 지출’ 예산은 35개국 중 32위

지난 2월에는 보사연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이 본인이 쓴 논문의 내용 때문에 연구원 내 인구영향평가센터장 직을 스스로 내려놓는 일이 있었습니다. 보사연이 주최한 제13차 인구포럼에서 원 연구위원의 발제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 정책은 유배우 출산율 제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혼인율을 높이려면 미혼자의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을 줄이는 정책과, 미혼남녀가 매칭 되는 기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연수·자격증 취득 등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고, 사회에 진출한 남녀가 서로 원하는 상대를 빨리 만날 수 있도록 아이티(IT) 기술(가상현실 등)을 이용해 바쁜 일상에서도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하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죠.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함.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음”이라는 부분입니다. 대체 이게 뭔 소립니까? 발상이 끔찍하지 않습니까? 저출산 대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성평등 의식, 젠더 감수성이 저런 수준이라면 출산율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저런 시각으로는 아무리 통계 수치를 들여다보더라고 보고 싶은 것만 볼 것입니다. 혼인율을 중시한다면 가임기 여성을 찾아가서 ‘왜’ 결혼을 안 하는지부터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제발.

이미 출산율에 기여한 엄마로서 가장 화나는 것은 지난 10년간 120조원을 썼지만 효과가 없더라는 말입니다. 보육 정책은 애초에 복지 정책이에요. 그걸 저출산 대책이라고 실시한 당신들이 문제였습니다.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안 되면 중단할 수 있는 선택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수차례 강조했듯이 우리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정부의 책임하에 안전한 보육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를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120조원이 적은 돈은 아닙니다만, 우리 아이들의 보육 환경을 한번 보세요. 연재글을 통해 누누이 밝혔듯이 교사 대 아동비율이 너무 높고, 아이들 급식비를 포함한 보육비와 운영비도 적고, 보육교사의 처우는 너무 열악합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보육실과 놀이터는 좁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국공립과 민간·가정어린이집의 격차가 커서 아이들은 엄마 자궁에 착상하자마자 국공립에 들어가기 위해 수백 번대의 대기표를 뽑고 줄을 서야 합니다. 프랑스는 2009년에 가족수당으로 연간 400억유로를 지출했고, 이와 별도로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기 위한 재정은 연간 약 115조원(883억유로)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7%에 이르는 액수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책 예산은 20조원이 넘는데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8년 예산안 주요 특징’에 따르면 복지 분야 예산 가운데 보육·가족·여성 관련한 지출은 올해 5조9225억원에서 내년 7조207억원으로 1조982억원(18.5%) 증가했습니다. 내년 처음 시행되는 아동수당 제도에 1조1009억원이 순증됐다니 사실상 아동수당 외에 지출이 증가한 건 없는 상황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상한 2017년 우리나라의 지디피는 1739조원이고, 7조원은 지디피의 0.4%입니다. 실제 아동수당, 육아휴직 수당, 보육 및 가사 서비스 지원 등 관련 예산을 전부 합친 ‘정부 가족지출’은 오이시디 35개국 중 32위에 그쳤습니다. 올해 9월 오이시디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족지출은 1995년 지디피 대비 0.06%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3년 처음으로 1%를 넘었지만 오이시디 평균 2.14%의 절반에 불과하죠. 이렇게 보면 120조원은 결코 큰 금액이 아니죠. 당신들은 ‘120조원을 썼는데도 출산율이 더 떨어졌으니 이제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아이 낳기 좋은 사회에서 결혼하기 좋은 사회로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 말이 틀린 것을 아시겠죠?

문재인 정부 보육 예산도 공약 절반에 불과

저는 2018년 정부 예산안을 보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아동 수 기준 40%까지 확충하겠다고 약속했고, 내년은 그 약속을 지키는 첫해입니다. 보건복지부 예산사업 설명자료를 보니 어린이집 확충(일반회계) 사업 예산은 714억원으로 국공립 신축 112곳, 국공립 장기 임차 113곳, 장애아 전담 신축 2곳, 공동주택 리모델링 225곳 등 총 452곳에 대한 확충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축 어린이집의 규모는 561제곱미터로 산정되어 있는데요. 놀이터 면적을 고려하면 정원 100명 규모, 놀이터 면적 제외하더라도 최대 130명(1인당 4.29제곱미터)입니다. 그리고 장기 임차나 리모델링은 그것보다 정원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평균 100명으로 후하게 잡더라도 내년에 늘어나는 국공립 정원은 4만5200명에 불과하죠. 2016년 전국 어린이집 아동 수는 145만1215명이고, 이 중 국공립에 다니는 아동 수는 17만5929명(12%)에 불과합니다. 140만명의 40%는 58만명이니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려면 임기 안에 국공립에 수용하는 아동을 40만명 늘려야 합니다. 1년에 8만명씩 늘려야 가능합니다. 내년에 늘어나는 4만5200명은 그 절반에 불과한 숫자죠. 이럴 거면 아동수당 10만원은 왜 주는지 엄마들은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이란 부당해고를 의미합니다. 운 좋게 안 잘리고 살아남더라도 독박 가사와 독박 육아는 엄마노동자의 삶을 갉아먹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전업주부·워킹맘·경단녀로 잘도 분류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똑같은 존재입니다. 대한민국 엄마, 그게 우리입니다. 내 딸이 결혼한다면 말리고 싶은 대한민국 엄마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연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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