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오피스텔에서 정치 현안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선거에서 떨어진 뒤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에 박지원 의원은 수첩을 펴서 보여주었다. 수첩에는 공중파와 종편, 라디오, 지역방송까지 출연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듯이, 박 의원은 정치평론 분야에선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인사임이 분명했다. 박 의원은 “<케이비에스>(KBS), <엠비시>(MBC), <에스비에스>(SBS), <제이티비시>(JTBC), <와이티엔>(YTN), <티브이(TV)조선> 등 방송사에서 고정 출연하자는 프로그램만 10여개가 된다. 5월까지는 현역 국회의원이라 김영란법 때문에 출연료 제한이 있지만, 6월부터는 출연료 많이 주는 순서로 출연해볼까 생각 중이다”라며 웃었다.
과거 정권에서 ‘2인자’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면서도 20년 가까이 지난 시점까지 정치적으로 건재한 사람은 박지원 의원을 비롯해 극소수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낡은 정치’의 색깔이 짙을 거 같은데 낙선 이후에도 신문·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박지원만의 ‘정치를 보는 눈’이 있을 거 같기도 하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영원한 현역’을 자처하는 박 의원을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개인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 지난 총선에서 민생당 간판으로 출마했다가 패배했습니다. 이번에 당선됐으면 5선 의원(비례대표 1선, 전남 목포에서 3선을 했다)이 되는 건데, 아쉬움이 크시겠습니다. 이제 정치는 그만하시는 건가요?
“아쉬움보다는,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고 시대의 흐름이지요. 나보고 정계 은퇴할 거냐고 많이들 묻는데, 내가 박찬수 위원보다 더 젊어 보이지 않습니까?(웃음) 나만큼 국정 경험 가진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치를) 분석해서 국민과 정치권에 내 생각을 전파해주면 좋은 일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영원한 현역으로 뛸 생각입니다.”
- 낙선했어도 신문·방송에선 여전히 섭외 1순위입니다. 예리한 분석과 촌철살인의 입담 덕분일 텐데요, 그런 분석과 입담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디제이(김대중 전 대통령)한테 배웠습니다. 디제이가 얼마나 철저한 준비를 하시는 분입니까. 그분이 제가 정치 입문할 때부터 ‘꼭 신문을 읽어라. 거기에 세계와 대한민국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새벽 5시반부터 1시간 동안 조간신문을 모두 읽습니다. 어떤 건 제목만 보고 넘어가고, 관심 있는 기사는 다 읽습니다. 칼럼과 사설을 열심히 보는데, 그걸 읽으면 지금 정책 현안은 뭐고 문제는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그걸 몇십년 동안 계속해왔습니다. 감옥에서도 신문은 꼭 봤습니다(박 의원은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수사를 받고 약 1년5개월간 복역했다). 또 <와이티엔>과 <연합뉴스티브이(TV)>를 10분씩 봅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아침 라디오 방송에 나갑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습니다. 정통 동교동계 출신이 아니면서도 김 전 대통령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큰 신임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돌아가신 디제이에게 여쭤봐야 하는데…, 성실하고 최선을 다한 걸 평가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디제이는 (참모가) 무슨 보고를 하면 죽 듣기만 합니다. 그러다 대안을 제시하면 그때서야 ‘아니야 이렇게 해라’ ‘거기에 이걸 더 넣어라’고 지시합니다. 저는 보고할 때 옳건 그르건 ‘이렇게 하십시다’ 하고 꼭 의견을 제시했는데, 아마 그걸 높이 평가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언론계에 발이 넓기로 유명합니다.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치인은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제가 하루에 국민을 몇 사람이나 만나서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언론이란 매체를 통해 잘 전달해야지요. 제가 청와대 비서실장 할 때, 직원 조회에서 강조했던 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우리끼리만 알거나 500명 모아놓고 연설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좋은 정책은 언론이란 매체를 통해서 국민에게 알려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너무 언론을 의식하는 거 아니냐. 언론에 잘 보이려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하던데, 그런다고 언론이 뭐 좋은 것만 쓰나요. 언론 비판도 감수하고 가야죠.”
- 청와대 공보수석 하실 때엔 ‘한 손엔 위스키, 한 손엔 캐시(현금)를 들고 언론을 순치한다’는 얘기도 돌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언론개혁을 할 때 일부 인사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어느 주간지에 나서 얘기가 돌았는데, 저로선 좀 억울합니다. 야당 시절엔 디제이 당선이 애국의 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했고, 대통령 당선되신 후엔 김대중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입니다. <한겨레>는 저와 조·중·동이 담합해서 언론개혁을 안 한다고 비판하고, 거꾸로 조·중·동은 <한겨레>와 담합해서 언론개혁을 주도한다고 때리고…, 나만큼 언론에 많이 얻어맞은 정치인도 없을 겁니다.”
-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잘하고 있죠. 단군 이래 5천년 민족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초일류 국가로 올라선 건 이번 코로나 방역이 처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운도 좋고, 기도 셉니다. 2년 전 지방선거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압승하고 이번 총선 앞두고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코로나 하나로 세계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미래통합당은 ‘똥볼’만 차니까 운도 좋은 거죠. (1990년대 말) 아이엠에프(IMF·외환위기) 때는 우리만 경제가 안 좋고 세계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빨리 극복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우리나 세계나 모두 좋지 않아서 경제위기 극복이 제일의 과제입니다. 정부가 방향을 잘 잡고 있다고 봅니다.”
- 문 대통령이 이것만은 좀 바꿨으면 좋겠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야당과 대화를 더 하고, 인사도 자기편이 아니라 폭넓게 사람을 썼으면 합니다. 제가 청와대 가서 (문 대통령에게) 야당과 대화하라고 하니까 바로 하시더라구요. 문 대통령이 막힌 건 아니라고 봅니다. 청와대 참모들이 야당과의 소통을 계속 건의해야 합니다. 야당이 거부해도 만납시다, 또 만납시다 하면 국민들이 그걸 평가할 겁니다.”
- 이번에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가까우시죠? 선거 끝난 뒤에 통화는 한번 하셨나요?
“안 했습니다. 그렇게 친분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홍 전 대표의 수를 인정하는 거고, 홍 전 대표도 박지원의 수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죠.”
- 홍 전 대표는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대선 도전 의지를 밝혔습니다. 반면에 황교안 전 대표 등 미래통합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은 대거 낙선했구요. 야권의 대선 구도는 어떻게 될까요?
“홍준표 전 대표의 투쟁력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비춰보면 좀…. 보수는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2022년 대선에서도) 어렵습니다.”
- 4년 전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대표는 이번에 비례 3석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습니다. 안 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안 대표야 어찌 됐든 이번 총선에서 마라톤으로 200만표를 확보해서 의원 세명을 당선시킬 만한 힘은 아직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미래통합당과 총선 공동평가를 하자는 걸 보니까 보수로 가는 건 확실한데, 이미 시험은 끝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떻습니까. 이낙연 전 총리가 독주하는 양상인데, 이 구도가 2년 뒤 대선 때까지 이어질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과거에 이회창, 고건 등 총리 지낸 분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대선이 24개월 남았고, 그러면 민주당 후보 경선은 20개월 남짓 남은 걸로 봐야 하는데, 긴 시간입니다. 지금은 40% 넘는 지지율에서 보듯이 민심이 이낙연 전 총리에게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권력도 민심을 이기진 못하지만, 이 흐름이 계속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이 전 총리가 잘해야 하고,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올해 일흔여덟이신데, 아주 건강하십니다. 건강 관리 비결이 뭔가요?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좀 전에도 여의도공원을 한 시간 걷고 왔습니다. 또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남들은 선거 한번 치르면 살이 빠진다는데, 나는 이번에 선거운동 하면서 5㎏이 늘었습니다. 이제 살을 좀 뺄 생각입니다.”
- 과거엔 폭탄주를 엄청나게 드셨는데, 요즘은 술을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평생 마실 술을 젊을 때 다 마셨습니다. 그때(야당 대변인과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는 ‘국민의 4대 의무’(국방·교육·근로·납세)에다가 ‘식전 폭탄주 다섯 잔’을 넣어서 국민의 5대 의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마셨던 건 다 디제이를 위해서였습니다. (2018년 10월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죽기 전에 절대 술 먹지 말라고 해서 그 뒤로는 안 먹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었으면 이번 총선엔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병상에 있을 때 ‘이제 정치하지 말고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했는데, 너무 미안합니다. 아내와 신혼여행 빼고는 3년 전에 화엄사를 간 게 유일한 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물론 대통령(김대중) 부부 모시고 휴가를 여러 번 같이 갔지만, 그건 두분에게는 휴가지만 우리한테는 휴가가 아니죠. 그런 모든 게 후회로 남습니다.”
- 정치 하면서 검찰 수사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중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송금 문제로 유죄를 받은 것 말고는 저축은행 수뢰 의혹, 씨앤그룹 연루 의혹 등은 모두 무죄 또는 무혐의로 끝났습니다.
“징그럽게 (검찰 수사) 받았죠. 15년을 받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박근혜 정부 때까지 기업인들이 (검찰에) 불려가면 ‘박지원에게 얼마 줬냐’고 엄청나게 시달릴 정도였습니다.”
- 검찰 수사에 대해 할 말이 많으시겠습니다.
“제가 국회 법사위원을 12년 했는데, 검찰을 가장 많이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주장했던 게 접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내가 가장 앞장섰습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정말 중요합니다. 민심이 제일이라는 걸 검찰도 알아야 합니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저는 구정치인의 냄새가 짙습니다. 동교동계에 나중에 들어갔지만, 디제이와 동교동 가신들의 암울한 흑역사의 유산을 상속받아서 그 이미지가 저에겐 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이 서울대 교수 시절에 글을 하나 썼는데, 박지원이 형편없는 동교동 가신일 줄 알았는데 보니까 괜찮은 정치인이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 의정보고서에 그 글을 올렸지요. 2011년 민주당 원내대표 할 때, 경기 성남 분당에서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손학규 대표가 당선됐는데, 처음엔 조국 교수를 출마시키려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 할 때도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관해 많이 소통했습니다. 검찰이 그렇게 탈탈 털면 성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윤석열 검찰총장과는 악연이 있습니다. 윤 총장이 (대검 중수부 과장 시절) 씨앤그룹 비자금 수사를 했습니다. 저는 씨앤그룹 회장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호남 기업이라고 해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윤 총장이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를 성공적으로 잘했고, 서울중앙지검장도 잘했습니다. 그러니까 검찰총장 설이 나오더라구요. 내 경험이 있길래 여권 고위 인사에게 ‘윤석열 (검찰총장) 시키지 마라’고 얘기했는데, 일주일 뒤에 그 인사가 저한테 만나자고 하더니 ‘문 대통령은 검찰 독립성 보장하고 지인이든 측근이든 가족이든 문제 있으면 수사해야 한다는 게 확고한 철학이다’라고 하더라구요.”
- 그 여권 인사가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입니까?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지요. 나도 자서전에 쓸거리는 남겨 놔야지요.” (웃음)
- 야당 대변인, 청와대 수석·비서실장, 장관, 국회의원, 야당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두루 지냈습니다. 어떤 자리가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 있었습니까?
“대통령(大統領)은 못해봤지만, ‘대신할 대(代)’자를 써서 대통령(代統領)이란 소리까진 들어봤습니다.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영광이지요. 가장 보람이 있었던 건 청와대 비서실장 할 때이고요, 그러나 매력 있는 자리를 고르라면 역시 국회의원입니다.”
박찬수 선임 논설위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