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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우주까지 날아간 ‘21세기 피터 팬’

등록 2021-07-12 11:06수정 2021-07-13 02:43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첫 준궤도 우주비행
버진갤럭틱 설립 17년만에 어릴적 꿈 실현
모험동화 ‘피터 팬’에서 평생의 영감 얻어
“내 성공 원동력은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기”
유니티 우주선 안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버진갤럭틱 동영상 갈무리
유니티 우주선 안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버진갤럭틱 동영상 갈무리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꿈꿔왔다. 일생일대의 완벽한 경험이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71) 회장은 11일(현지시각) 세계 첫 준궤도 우주관광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날 아침 자신이 설립한 우주관광기업 버진갤럭틱의 우주선 ‘VSS 유니티’를 타고 뉴멕시코주 사막 지역에 세운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를 출발해 고도 86㎞ 우주경계선을 찍은 뒤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2004년 회사 설립 이후 여기까지 오는 데 17년 세월과 10억달러 이상 자금이 투입됐다.

브랜슨의 우주관광은 세계인에겐 일반인도 우주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건이다. 하지만 그 자신에겐 “날아보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의 실현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에게 그런 꿈을 심어준 것은 지금은 고전이 된 100여년 전 모험동화 ‘피터 팬’이었다.

브랜슨은 2017년 한 인터뷰에서 피터 팬을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았다. 그는 “어린 시절 ‘피터 팬’을 읽은 이후 피터 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고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나 역시 (피터 팬처럼)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고 언제나 날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힘의 상당 부분은 “어린이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날고 싶은 꿈을 우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꿈은 1984년 항공사 버진애틀랜틱 설립으로, 이어 2004년 우주관광 개발업체 버진갤럭틱 설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우주개발업체 창업자 중 처음으로 우주를 직접 체험하는 결실을 맺었다.

브랜슨 회장 일행이 준궤도 우주비행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버진갤럭틱 제공
브랜슨 회장 일행이 준궤도 우주비행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버진갤럭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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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기구 대서양 횡단 등 모험가로도 유명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기를 좋아했던 브랜슨은 모험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1986년 쾌속선으로 최단기간 대서양 횡단 기록을 세운 데 이어 이듬해엔 세계 최초 열기구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1991년엔 세계 처음으로 열기구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으며 1998년엔 열기구 세계 일주를 시도했다. 21세기 들어서도 모험 행진은 이어져 2004년엔 수륙양용차를 타고 최단시간 영국해협 횡단에 성공했다.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그의 도전 정신은 회사 이름 ‘버진’(Virgin)에도 담겨 있다.

버진갤럭틱의 준궤도 우주여행 기술은 2004년 고도 100㎞ 준궤도 우주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우주여객기 스페이스십원(SpaceShipOne)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스페이스십원은 미국의 전설적인 항공우주 엔지니어 버트 루탄(Burt Rutan)이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알렌의 자금지원을 받아 개발한 우주여객기다. 루탄은 이 우주여객기로 2004년 10월 엑스프라이즈재단이 준궤도 여행 우주선 개발 촉진을 목적으로 1천만달러 상금을 내걸고 제정한 안사리 엑스프라이즈상을 받았다. 브랜슨 회장은 우주관광 업체 버진갤럭틱를 설립한 뒤 루탄으로부터 이 기술을 사들여 후속 제품을 개발했다. 개발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7년에는 지상 로켓 시험 중 엔진이 폭발해 직원 3명이 숨졌고, 2014년엔 시험비행중 조종 미숙으로 우주선이 추락하는 바람에 조종사 1명이 숨졌다.

모선 항공기에서 떨어져 나온 뒤 로켓 엔진으로 수직 상승하는 우주선 유니티. 웹방송 갈무리
모선 항공기에서 떨어져 나온 뒤 로켓 엔진으로 수직 상승하는 우주선 유니티. 웹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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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뛰쳐나온 브랜슨의 가장 든든한 평생 후원자

버진갤럭틱의 우주관광은 모선 항공기로 이륙한 뒤 고고도 상공에서 로켓을 점화해 우주선을 목표 고도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모선 항공기와 우주선에는 각각 조종사 2명씩이 탑승한다. 반면 경쟁업체인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은 지상에서 곧바로 로켓을 타고 수직상승해 목표 고도까지 올라간다. 모든 과정이 조종사 없이 자동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이날 비행에서 모선 항공기 ‘이브’는 고도 14㎞ 상공에서 우주선 ‘유니티’를 분리해 고도를 86㎞ 상공까지 올렸다. 최고 속도는 음속의 3배를 약간 웃돌았다. 미 연방항공국(FAA)은 고도 80㎞를 우주경계선으로 본다. 모선 항공기 이름 ‘이브’는 올해 초 코로나19로 사망한 브랜슨의 모친 이브 브랜슨에서 따왔다.

난독증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이후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학교를 그만두던 날 교장은 그에게 장차 감옥에서 생을 마치거나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업가였던 그의 어머니는 그런 그의 든든하고도 열렬한 평생 후원자였다. 브랜슨은 이달 초 자신의 우주비행 계획을 알린 직후 트위터를 통해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말고 별까지 가 닿으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브랜스과 그의 모친 이브 브랜슨. 버진갤럭틱 제공
브랜스과 그의 모친 이브 브랜슨. 버진갤럭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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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체험 4분…창밖은 푸른빛에서 칠흑으로

준궤도 우주비행에서 무중력 체험이 지속되는 시간은 불과 4분 정도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풀고 우주선 안을 공중 이동하며 온몸으로 우주 공간을 체감한다.

로켓 엔진이 순식간에 우주선을 성층권에서 중간권을 거쳐 열권 경계면까지 올려놓는 사이 창 밖의 풍경은 푸른빛에서 쪽빛으로, 다시 칠흑빛으로 바뀐다.

우주선 유니티 내부 공간은 지름 2.3m, 길이 3.6m다. 승객용 좌석 6개는 좌·우 양쪽으로 3줄씩 나란히 배치돼 있다. 좌석 등받이에는 속도, 중력, 남은 비행 시간 같은 실시간 데이터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있다. 맨 앞쪽은 조종사 2명이 앉아 있는 조종석이고, 맨 뒤에는 탑승객들이 자신의 무중력 체험 장면을 비춰볼 수 있는 커다란 원형 거울이 있다. 조종사와 승객 사이에 칸막이는 없다.

짧은 시간의 우주 체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니티에는 모두 17개 조망용 창이 있다. 우주선 안에는 또 16대 고화질 카메라가 있어 승객들의 우주비행 체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승무복은 군 전투조종사들이 입은 조종복과 비슷한 원피스 형태로, 의류업체 언더아머가 디자인한 것이다.

우주선 유니티에서 본 푸른 지구와 칠흑 우주. 버진갤럭틱 제공
우주선 유니티에서 본 푸른 지구와 칠흑 우주. 버진갤럭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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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슨이 우주복 안에 쓴 사명 선언문은?

이날 비행은 버진갤럭틱의 22번째 시험비행이자, 네번째 유인 비행이다. 따라서 브랜슨과 동행한 버진갤럭틱 간부 3명은 모두 승객이 아닌 우주비행 평가요원 자격으로 탑승했다. 버진갤럭틱은 보도자료를 통해 “승무원들은 우주선 객실 평가, 우주에서 본 지구 전망, 연구 실험 수행 조건,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서 이뤄지는 5일간의 비행 전 훈련 프로그램 효율성을 비롯한 여러 시험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버진갤럭틱은 앞으로 두 차례 더 시험비행을 한 뒤 내년 초부터 정식 준궤도 우주관광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시험비행 중 한 차례는 이탈리아 공군이 200만달러를 주고 계약한 비행이다. 앞서 버진갤럭틱은 6월 말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우주관광 사업 면허를 받았다. 버진갤럭틱의 우주관광은 뉴멕시코의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에서 이뤄진다. 버진갤럭틱은 공항 소유주인 뉴멕시코 주정부와 20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전 나사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가 리처드 브랜슨에게 우주비행사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웹방송 갈무리
전 나사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가 리처드 브랜슨에게 우주비행사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웹방송 갈무리

버진갤럭틱에 따르면 현재 650여명이 준궤도 관광을 예약했으며, 8천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 예약자 중에는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현재는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탑승 요금은 20만~25만달러로 알려졌다.

브랜슨은 착륙 직후 경품회사와 제휴해 내년 초 정식 우주관광을 시작할 때 좌석 2자리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경품 당첨자는 대신 비영리재단(Space For Humanity)에 기부금을 내야 한다. 브랜슨은 당첨자들에겐 자신이 직접 우주공항을 안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우주관광 때는 현재 제작 중인 ‘이매진’(VSS Imagine)라는 이름의 우주선을 투입할 계획이다. 올 여름 시험비행을 할 이매진의 가장 큰 변화는 모듈식 구조라는 점이다. 한꺼번에 전체를 제작하는 게 아니라 우주선을 몇개 구역으로 나누어 제작한 뒤 조립하는 방식이다.

오는 18일 71번째 생일을 맞는 브랜슨은 이날 비행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우주복 안에 쓴 사명 선언문은 내 손주들을 위해, 그리고 오늘날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을 위해 우주여행의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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