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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29일 한겨레신문 14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요즘 서울 지역에서 벌어지는 거리집회와 시위는 연일 150건이 넘는다. 200건에 이르는 날도 있다. 실체가 없다던 북파공작원들도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실체를 드러냈다. 미군이 가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미군 가지 마라"는 시위도 있다.
가장 고통스런 시위는 추방당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다. 노점상, 세입자, 철거민, 계약직, 해고자, 해고를 앞둔 파업 노동자들이 연일 거리에서 부르짖고 있다. 경찰 지휘부는 즉각 '경력대비'를 지시한다. '경력대비'란 경찰병력으로 해산시키라는 용어다. 추방당한 사람들의 아우성은 도로교통법 시행령의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전경들이 그 아우성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한 곳에서 시위가 끝나면 전경 지휘관들은 부상자들을 점검하고 곧 다른 시위현장으로 이동한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전경들은 밥 먹을 틈도 없이 바빠진다.
시장의 논리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거리에, 시장이 저들을 구원하리라는 복음이 울려 퍼지고 있다. 추방은 이 사회의 오래된 문제정리 방식이었다. 언론인을 추방하고, 교사를 추방하고, 노동자를 추방하고, 늙은이를 추방하고, 장애인을 추방해 왔다.
서울 거리에서, 시장의 힘으로 추방당한 사람은 하늘을 나는 새만치도 시장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 '경력대비'가 있을 뿐이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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