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태동시킨, 석탄이 엔진이던 국가. 영국은 1882년 런던 홀번 비아덕트 지역에 세계 첫 중앙제어 석탄발전소가 문을 연 이래 1995년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전체 에너지원의 46.5%를 차지할 만큼 석탄 의존도가 높은 나라였다. 2000년대 재생에너지가 급증하는 중에도 2015년까지 25%대를 유지했으나 2019년 탄소중립 선언을 계기로 지난해 1.8%(에너지원별 최하위)로까지 낮췄다. 올 4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1990년 대비 68%로 설정하며 탈석탄 데드라인은 2024년 10월이 됐다. 영국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석탄발전소 3기도 향후 3년에 걸쳐 폐쇄될 예정이다.
문제는, 노동자는 ‘폐쇄’될 수 없단 사실이다. 급격한 산업전환의 1차 피해자는 노동자와 가족, 지역 커뮤니티가 될 수밖에 없어 그들의 권리와 지속가능 삶을 보장하는 이른바 ‘공정 전환’ 내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없인 속도를 내기 어렵다.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한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이를 이렇게 압축해 말한다. “우리는 석탄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긴급성과 정당한 전환을 통합하는 일이다. …좌초된 노동자와 좌초된 지역사회는 있을 수 없다.”
영국은 그런 점에서 늦어도 2050년까지 탈석탄을 이루겠다는 한국에 수많은 시사점을 준다. 탈석탄과 맞물린 영국의 노동·산업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발전산업 등이 가입해 역사만 100년이 넘은 전국노조 ‘프로스펙트’의 수 페른스(Sue Ferns) 수석 사무총장을 COP26이 열리는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3일 오후(현지시각) 만났다. “40년 이상 노동운동”을 한 페른스는 “석탄화력발전 노동자들도 처음엔 전환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마찬가지, “많은 탄소배출 기업이 산업유지를 위해 정치권에 로비” 중이다. 그러나 잘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듯 그는 노조의 목표를 수정해가는 중이다.
-노동자들은 처음 왜 반발했나, 지금은.
=점진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일정이었는데,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대해 (정부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전환을 하려면 장기적으로 정부와 노조와 함께 소통해야 한다. (그런 갈등 과정을 이어가며) 2~3년 전부터 에너지 산업이 집약적인 도시에서 발전소가 폐쇄될 때 에너지 관련 다른 일자리로 이전할 수 있게 됐다. 같은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업장으로도 이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정부 결단인가, 사업자 결정인가.
=법적으로는 2025년 이전 발전소 문을 닫아야 한다. 회사는 경제성을 판단해 그 전이라도 존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남은 2~3년 동안 발전소를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인지 따졌을 거다. (탄소가격 인상, 가스 가격 인하 등 석탄의 경제성이 나빠지는 것을 고려할 때) 사업자가 문을 닫기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둘(의 의지) 다 해당된다.
-기후변화로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인식 못 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우선 정부와 기업에 책임이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실용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에게만 (새 구직 등의) 책임이 강요되고 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가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
-영국 정부의 재교육, 재취업 등에 있어 재정 지원은 적극적이었나. 시민 세금이 필요해지나.
=충분하지 않았다. 시민들도 이런 변화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문제는 세금으로 낼 것인지, 에너지 가격을 올릴지 등 재원 마련 방법이 문제다. 사용자, 정부, 노동자 모두 책임이 있다. 영국 사회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내연기관차나 발전소에서 일할 미래의 노동자를 위한 대책도 필요한데.
=학생들은 자신이 참여하는 산업의 미래에 대해 물을 수 있다. 특정 기술 등은 경력에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취업하기 전 일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한국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 양대노총 중 한 곳인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노조는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영국 정부에 원하는 것은 영국 사회 전반의 전환, 변화의 일관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나은 제도와 더 나은 기관이 필요하다. 스코틀랜드에는 소외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Scottish Just Transition Commission)’가 있고 이 위원회에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노조의 역할은 역설적으로 강조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노조 조직률이 떨어진다. 노동자를 위한 위원회의 활동을 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일반적으로 여전히 기후변화 문제에 노동조합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기후파업 등 시위를 할 때 노조가 가시화되는 것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노동자들이 기후운동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건가.
=영국에서도 일부 노동자들은 변화를 불필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면 노조가 스스로 그 변화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회의적이고 변화에 저항적일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항상 불공평하게 작용했다. 이 변화로 더 나은 상황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사람들이 움직이게 된다. 뭔가를 포기하며 얻을 게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좋다.
-현재 영국 노조는 어떤 점에 집중하고 있나.
=많은 탄소 배출 산업이 정치권에 로비를 한다. 정치적 지지 없이는 이들 산업도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정치적인 압력도 고려하며 상황에 따라 목표를 세우려고 한다.
-COP26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노동조합의 일원으로 실제로 노동자들을 위한 전환이 잘 이뤄지도록 추진하기 위해서 왔다. 파리협정에도 ‘정의로운 전환’ 관련 문구가 들어있지만 실질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논의를 지켜보려 한다.
영국이 전환과정 중 겪은 갈등은 공론화의 시점과 비례한다. 영국은 COP가 가동되는 1990년대부터 지구의벗,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로 노동자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되어 왔다. 노조도 당시엔 적극적으로 의제화하지 못하는 등 한발 늦었다는 게 페른스의 평가다. 발전산업과 항공 등 15만명 이상의 노조원이 가입되어 있는 노조 간부로서,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영국 정부의 녹색일자리 태스크포스(Green Jobs Taskforce) 일원으로 2030년까지 최대 200만개 일자리에 대한 기술지원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 가장 선두에 섰으나, 여전히 영국도 쉽지 않은 길에 서 있는 셈이다. COP26이 열리는 글래스고만 해도 19세기 영국이 세계의 중심이던 시절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도시로, 여전히 화력발전 터빈의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이 위치하고 도시 동쪽을 중심으로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거주한다.
글래스고/글·사진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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