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3.5m의 대형 인형 ‘리틀 아말’(희망이라는 뜻의 아랍어)이 9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도착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9일(현지시각)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행사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 앞에는 보라색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의장국인 영국 정부가 일일 주제를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는데 행사 10일째인 이날은 ‘젠더 데이’였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 기차에서 만난 미국 인권단체 ‘미국 여성 유권자들을 위한 리그’의 애슐리 로즈 라베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향해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 이날 젠더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듣기를 기대한다는 그에게 젠더문제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여성이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입는다. 이것은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문제”라고 답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실업 등의 피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미국도 개발도상국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좀 더 (이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더 많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들이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보라. (남성 정상들이 많은 현실은) 우리가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9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에서 온 멸종반란 소속 활동가 안젤라(45)씨는 기후변화와 다양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젠더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지지하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COP26을 찾았다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총회 행사장인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 입구 앞에서도 젠더와 기후변화를 연관시켜 이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여성주의가 꼭 성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던 나이지리아인 아데돌라포 아요쿤레 파사웨는 자신이 의사라고 밝힌 뒤 “코로나19나 에볼라 등의 질병은 자연 환경의 동물이 밀려나면서 생겨났다. 우리는 멈춰야 한다. 나무를 더 심고 화석연료 사용을 멈춰라”라고 말했다. 그의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여성주의의 상징인 보라색 종이꽃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보라색 머리를 한 멸종반란의 안젤라(45)는 젠더 문제는 결국 다양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16살 아들에게 자녀를 가질 것을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다양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9일(현지시각) 미국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행사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젊은 여성 정치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도 이날 총회 행사장에서 목격됐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는 입장을 수차례 취해왔고,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기후변화와 젠더 영역의 교차점에 있는 그는 이날 “국제적으로 존경과 권위를 얻으려면 실제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신용을 얻으려면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며 미국이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글래스고에 있는 동안 그가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합성한 비디오가 에스앤에스에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폴 고사르 공화당 하원의원이 이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자 그는 고사르 의원에 대해 “나와 함께 일하는 소름끼치는 동료 의원이 나를 죽이는 판타지 영상을 공유했다”며 “백인 우월주의는 극도로 연약한 사람, 자신이 우월하게 태어났다는 신화에 기대 사는 슬픈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사회 전반적으로 대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모든 개혁주의자들이 시위에 나서고, 산업적 전환이 요구되기 때문에 ‘빅딜’이라고도 한다. 2012년 18차 당사국총회에서부터 논의 주제로 젠더가 떠올랐지만 여전히 주변부로 여겨지는 주제라는 문제의식을 남겨둔 채 여성을 위한 재정 지원 등을 회의 때마다 논의해오고 있다.
9일(현지시각) COP26 행사장 앞에서 멸종반란 활동가들이 북을 치며 젠더데이를 즐기고 있다. 최우리 기자
젠더 영역과의 접점은 주로 저개발국 여성들의 인권 문제와 닿아 있다. 이날 회의장에 시리아 난민 소녀를 상징하는 3.5m 크기의 인형 ‘아말’(희망이라는 뜻의 아랍어)이 사모아의 기후 운동가 브리아나 프루안과 함께 등장했다. 난민 어린이뿐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잃은 이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2017년 유엔개발계획(UNDP)는 ‘젠더와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2004년 발생한 아시아 지역 쓰나미 피해 당시 집안에 있던 여성과 아이들의 피해가 외부에서 일하는 남성들의 피해보다 매우 컸다고 설명하며 “기후변화는 성중립적이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여성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교육 지원의 중요성이 우선 강조됐다. 영국의 알록 샤마 당사국총회 의장은 “여성과 소녀들은 기후변화로부터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기후 활동에 여성들의 완전하고 의미있는 참여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며 “교육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선일 뿐아니라 여성과 소녀들에게 힘을 주고 기후변화 영향에 대처하고 기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 COP26 행사장에서 젠더과 기후변화 문제 관련해 이집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기존의 권력 관계나 지원 정책의 한계도 여성들의 시선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엔 우먼의 아사 레그너는 “해외 기후 개발 원조의 3%만이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대지를 위한 국제기관 전무이사인 안젤리카 폰스는 “원주민 여성으로서, 우리는 기후변화의 잔인한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남성에 의해 디자인된 세계가 많은 것들을 파괴했다. 만약 그것이 여성에 의해 디자인되었다면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킬 것”이라며 “우리는 국제적 수준의 결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국가 정상들 중에는 여성은 앙겔라 메르켈이 대표적이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남성이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러나 당사국총회 행사장에서는 직접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발언권을 넓혀가는 여성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는 평가다. 녹색당 소속인 스웨덴의 국제개발협력장관 페르 올슨 프리드는 “젠더에 대한 관점이 없다면 지속가능한 녹색 전환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게 된다. 페미니스트의 접근법이 현명한 (문제 해결) 방식이다”라고 짚었다. 총회에 참가 중인 류미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제부장은 “석탄 감축 등 행사장마다 발표자 중에 여성이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글래스고/글·사진 최우리 김민제 기자
ecowoori@hani.co.kr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