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페르시아만의 산유국들은 석유 가격을 인상했다.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 가격은 1974년 1월 11달러를 넘었다. 이 파동을 겪으며 주요 선진국들은 물가가 상승하고 경제 성장이 퇴보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러한 에너지 안보 문제에 직면한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심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설립된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 문제가 달려있다. 이미 국제유가는 지난 2014년 6월 이후 최고치인 112달러(브렌트유 기준)를 넘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를 중심으로 세계 각 국의 에너지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 1일 IEA 장관급 이사회에서는 석유 가격 급등과 공급 차질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며 약 6천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을 합의했고, 한국도 442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는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의존도를 줄일 방법 10가지를 소개했다. △러시아와 새로운 가스 공급 계약 하지 않기 △대체 연료 사용하기 △가스 저장 의무 강화 △태양광과 풍력 발전 확대 △바이오 에너지와 원자력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에너지 효율성 낮은 가스 보일러 대체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의 과제등이 포함됐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가스 수요의 약 40%를 러시아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를 1년 안에 1/3 이상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카타르나 미국 등을 통해 러시아가 통상 공급하는 양의 약 20%인 연간 약 300억bcm의 가스를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자는 논의로 나아갔지만, 탄소배출을 감소하지 못하는 가스 발전에 의존하는 이상 근본적인 기후 대응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고민은 남았다.
한편 지난 4일 밤(한국시간) 국제기후변화·에너지전문가들은 국제에너지기구 입장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을 넘어 탄력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기 해법을 넘어서서 장기 과제를 다시 점검하자는 취지였다.
이날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싱크탱크 ‘에코(ECC)’가 최근 작성한 보고서도 소개됐다. 이탈리아가 2023년 겨울까지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을 50%까지 대체하고 145억 유로를 절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루가 베르가마시 에코 공동설립자는 “러시아의 가스 의존도를 벗어나는 것은 화석 연료의 광범위한 단계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2005년 이후 일어나고 있는 가스 수요의 구조적 감소 추세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미국, 유럽 기후에너지시장 문제를 고민하는 싱크탱크 랩(RAP)의 잔 로즈나우 유럽 담당 이사는 “장기적 구조적 문제에 대한 단기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유럽 건물 단열율이 매우 낮아 2~3배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태양과 바람을 더 빨리 생산할 필요가 있다. 둘 다 소비자들을 위한 가스 수요와 전기 가격을 낮추는 데 매우 효율적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해결책의 장점은 가스 수요와 수입 의존도를 영구적으로 감소시킨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유럽연합이 연초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에 대해 녹색산업으로 분류한 택소노미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가스나 원자력 발전소를 향한 투자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며, 가스 인프라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줄리안 포포프 전 불가리아 환경부 장관은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가스 인프라가 건설되면 러시아는 가격 경쟁력에서 누구든 이길 수 있다. 석탄 의존도를 줄이고 있는 나라들은 가스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면서 대체하고 있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기간 복원을 노력해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 1~3년을 내다보는 에너지 안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인 ‘핏포55’을 발표하면서, 유럽의 가스 의존도를 23% 줄일 계획을 이미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가속화하는 등의 조치를 제안할 것을 예고했다. 장기 과제인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단기적인 공급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때문에 국제에너지기구는 고유가로 수익을 얻은 에너지 기업들이 거둔 이익을 환수하는 대책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계가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와 관련해 장·단기 숙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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