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해 말까지 모두 폐쇄된 바이에른주 군트레밍겐 원자력발전소. 위키미디어 커먼스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유럽연합 의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사실상 부결됐다. 상임위 결정과 무관하게 그린택소노미 최종안은 유럽의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만, 이번 결과를 볼 때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의회 경제통화 상임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 상임위원회는 14일 열린 합동회의에서 원전과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를 그린 택소노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76·반대 62표로 통과시켰다. 그린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분야를 분류한 것으로, 투자자들의 친환경 녹색 투자의 지침으로 활용된다.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표결 뒤 낸 보도자료에서 “원전과 가스는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임을 인정하지만, 원전과 가스를 포함시킨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의 기술선별기준은 택소노미의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의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은 다음달 6일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과반수(705석 중 353석)가 반대하거나 유럽연합 이사회에서 압도적 다수(27개국 중 20개국)가 반대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지난 2월 집행위의 최종안 확정은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이 강력히 반대해 진통을 겪었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유럽의회에서 반대론이 소수여서 무난히 확정될 것으로 전망돼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와 우라늄 의존문제가 불거지면서 무난한 통과를 점치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기준 가스 수요의 약 40%, 농축우라늄 수요의 2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유럽의회에서 최대의석(96석)을 보유한 독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개월 후인 지난 3월말 최종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성명을 발표했고,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의 최종안 반대 그룹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2개에서 최대 교섭단체인 유럽인민당을 포함해 5개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유럽인민당(175석)·사회민주진보동맹(145석)·중도좌파 리뉴유럽(97석)·녹색당그룹(73석)·좌파그룹(39석) 등 5개 교섭단체는 지난 8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가스는 물론 농축우라늄 역시 러시아의 전쟁수단으로 사용된다”며 가스와 원전을 포함시킨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석 전문위원은 “유럽연합 의회 관련 상임위인 경제통화위와 환경위에서의 표결 결과는 최종안 부결이 본회의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환경부가 지난해 말 원전을 녹색에너지에서 제외한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수정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지난 달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원전을 포함하도록 녹색분류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친환경 녹색금융 투자의 기준이 되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포함될 경우, 원자력 산업계는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 유치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한편,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15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원전이 친환경 녹색에너지로 분류되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주장하며 “지난 정부에서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원전이 밀린 거 같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믹스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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