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한국형 원자로 에이피아르(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부가 22일 원전 산업 지원 대책을 내놓으며 내건 명분은 ‘산업 생태계 복원’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 협력업체와 원전 중소기업이 ‘일감 절벽’에 놓인 만큼, 2025년까지 모두 1조원 이상 일감을 신규 발주해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미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신성장동력 확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일자리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가 남아 있는 신한울 3·4호기 일감 조기 집행 등의 지원 대책을 두고도 착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정부의 ‘공개적 알박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정부의 원전 산업 지원 대책은 지난 4월4일의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절차 개시, 지난달 31일 이뤄진 3992억원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개발비 투자 확정에 이은 ‘탈 탈원전 정책’의 연장선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일감 조기 공급’으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예비품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설계 등에 925억원 규모의 일감을 올해 안으로 긴급 공급하고,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의 일감을 추가 공급하며 최대한 조기에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17년 중단됐으나, 조기 재개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하지만 착공을 하기 위해서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변경과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환경영향평가에는 지역 주민들과 협의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이런 절차를 제대로 지키면 2025년 이전 착공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착공이 확정되지 않은 원전의 설계와 설비 등을 사전 발주하는 것은 원전업계에서는 오랜 관행으로 간주돼왔다. 하지만 정부가 공식화한 것은 다르게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정부의 이번 발표는 공개적으로 (원전 건설을) ‘알박기’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투자를 하면 이후 사업 추진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이 새 정부에서 되살아난 것에도 원자력계의 관행인 선투자 효과가 작용했다. 한수원이 7790억원의 사전 투자비에 대한 처리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부가 발전사업허가 취소를 미뤄 사업의 불씨를 살려뒀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지원 대책대로 신한울 3·4호기 착공에 앞서 2011억원이 추가 투입되면 신한울 3·4호기 사업을 포기할 경우의 매몰비용은 1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미리 돈을 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감 조기 공급과 함께 원전 수출 확대 방안도 이번 지원 대책에 담았다. 체코·폴란드 등 사업자 선정이 가까운 국가에 대해서는 정부 고위급이 나서 수주 활동을 벌이고, 오는 7월에는 범부처와 관계기관 등 민관이 참여하는 ‘원전수출 전략추진단’을 꾸려 주요 수출전략국을 공략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전 최강국 건설을 내걸고 친원전 행보에 속보를 붙이면서 탈핵을 주장해온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 활동가는 “정부 정책 방향의 핵심은 원전 확대를 통해 석탄 발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확대하는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며 “유럽에서 원전을 늘린다는 국가들조차 재생에너지를 훨씬 더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점차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국가들은 있어도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목표를 하향 조정하겠다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환경단체들도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전은 처치 곤란의 핵폐기물을 대량 발생시키는 명백한 반환경적 오염원이며, 여전히 한 해에도 수십건의 사고가 일어나는 위험한 에너지원이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기후위기를 핵위험으로 피해보겠다는 어리석은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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