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단체 ‘환경진보’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마이클 셸런버거가 정부가 11월 주최하는 탄소중립 행사에 기조연설을 맡았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산업통상자원부가 다음달 2일 여는 ‘2022 산업계 탄소중립 콘퍼런스’에 찬핵 로비스트를 기조연설자로 초청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이 콘퍼런스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보면, 환경단체 ‘환경진보’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마이클 셸런버거가 기조연설을 맡았다. 보통 기조연설은 개막식에서 저명인사를 초청해 진행하는데, 그 행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셸런버거에 이어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섭외가 추진(TBD)됐으나, 주말 사이 반 전 총장은 후보 명단에서 빠졌다. TBD(to be determined)는 통상 토론회나 포럼 전에 섭외를 추진 중인 단계로 최종 확정은 안 된 상태다.
셸런버거는 기후위기 대응을 비판한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저자로, 국내에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에서 그는 현재의 기후변화가 종말론적 세계관으로 점철된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과장됐고, 원전 확대를 통해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셸런버거는 국내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에서 초청받는 연사였으나, 정부 주도의 기후변화 행사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초안을 공개한 탄소중립 콘퍼런스 연사들.
기후환경 단체에서는 마이클 셸런버거가 탄소중립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을 맡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다고 본다. 스웨덴의 청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도 축사 추진 명단에 포함됐는데, 툰베리는 셀런버거가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로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이어서 연사 섭외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25일 “셸런버거는 전형적인 원전산업계 로비스트”라면서 “그동안 가짜뉴스의 소스였고 에너지정책에 혼란을 일으켰던 사람을 정부가 개최하는 탄소중립 행사에 기조강연을 맡겼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이 지칭한 가짜뉴스는 ‘태양광 유해 폐기물이 원전의 300배에 달한다’는 셸런버거의 주장을 말한다. 그의 주장이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보도된 뒤, 지난 정부 야당 의원들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비난하는 사례로 들곤 했다. 이와 관련해 팩트체크 전문매체 <뉴스톱>은 지난해 7월
셸런버거의 주장을 따져보니, 태양광과 원전에서 나온 독성 물질의 농도나 함량이 아닌 부피가 300배 차이가 났다는 얘기라며 셸린버거가 사실을 호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양광은 태양광 패널 자체를 폐기물로 가정하고, 원전은 원전 폐기물만 폐기물로 가정했다는 것이다.
셸런버거는 ‘찬핵 운동가’나 ‘찬핵 로비스트’의 이미지가 강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원전 건설 공사가 재개된 것과 관련해,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승리’(victory)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단체가 탈핵으로 인한 경제·환경 비용 연구를 제공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한국에 네 번 방문해 강연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이클 셸런버거가 산자부 주최 행사의 유일한 기조연설자로 낙점된 데 대해 24일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 과장, 팀장 임기 때 추진되어, 기조연설을 맡긴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어떻게 봐야 할까?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은 2020년 출판됐다. 비외론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2001), 프레드 싱거의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2008) 등 기후변화 회의론의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책과 달리 기후변화 자체를 의심하는 것보다는 기후변화를 인정하되 ‘종말론적’으로 과장됐다는 데 중점을 둔다. 또한, 저개발국의 낙후된 경제 환경을 들며 선진국 중심의 재생에너지 드라이브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 확대를 든다.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은 과학자들에게 셸런버거의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명예특임 교수(전 국립기상과학원장)는 24일 인터뷰를 요약했고,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은 본인의 동의를 얻어 과거 페이스북 게시글을 발췌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명예특임 교수
“마이클 셸런버거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등의 권위 있는 보고서를 인용했는데, 맥락과는 다르게 가져간 경우가 많다. 제시된 개개의 내용은 사실인데, 합치면 왜곡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00개의 체리 가운데 1개가 썩었는데 모두가 문제라고 하는 체리 따먹기식 저술이다. 그리고 모든 논리의 귀결은 핵발전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의 종말론적 서사를 문제 삼는데, 잘 구분해야 한다. 기독교는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10명을 찾지 못하는 사회여서 멸망했다고 본다. (욕망과 이윤만을 추구하여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세상을 향해 가자는 게 이 서사의 취지다. 기후위기를 마주한 현재의 시스템 또한 정의롭지 않고 지속가능성이 없다. 불이 났을 땐, ‘불났다!’고 소리쳐야 한다. 반복해서 들으면 짜증 나고 불편할 수 있다. 셸런버거가 바로 그 점을 노린 것 아닐까 싶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마이클 셀런버거는 (내가 보기에) 천재다. 천재적인 로비스트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인터뷰와 연구 결과를 따온다. 숫자를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코끼리 코, 기린의 목, 오리의 발, 공룡의 발톱, 뱀의 몸통, 염소의 꼬리를 합쳐놓은 것 같다. 전형적인 체리 따먹기(Cherry Picking)이다…후발국들은 석탄발전소를 세우고 선진국들은 얼른 얼른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총생산을 늘리다 보면 지구 환경은 저절로 지켜질 수 있다, 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꼭 읽어야 하는 독자도 있다. <6도의 멸종>(마크 라이너스 지음, 2014)에 크게 감명받은 분들이다. 이 책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참 재밌게 쓰였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책이지만 과장이 심하다. 그는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보고서에서 인용한 ‘앞으로 100년간 지구 기온이 6℃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로 책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보다 석탄을 4배 많이 쓸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못 본 척했다. 마크 라이너스도 마이클 셸런버거와 비슷하게 체리 따먹기에 능한 것이다.” (2021년 12월30일 페이스북)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