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남방큰돌고래 행동생태 연구자인 김미연(왼쪽)·장수진 연구원.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해양생물생태보전연구소(MARC)를 차리고 현장 연구를 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서만 120마리가 서식한다. 장수진(42)씨와 김미연(35)씨는 남방큰돌고래의 행동과 소리를 관찰, 기록하는 국내 최초의 돌고래 행동생태학자다.
장씨는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사 때 돌고래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원으로 참가했다가 “교수님들 만류에도 돌고래로 박사를 하겠다”고 해 제주에 눌러앉았다. 그와 함께 야생 돌고래 행동을 관찰하던 김씨는 일본 교토대 야생동물연구소에서 돌고래 음향 연구로 박사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17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를 차려 각각 대표와 부대표를 맡았고, 최근 연구 경험을 모은 <마린 걸스>(에디토리얼 펴냄)을 냈다. 2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사무실에서 둘을 만났다.
“1년 내내 돌고래 등지느러미 사진을 찍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등지느러미 카탈로그는 행동생태 연구의 기본이 돼요.” (장수진)
돌고래 행동생태 연구는 돌고래가 수면 위로 몸을 내놓는 찰나를 무한정 기다리는 고된 노동이다.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다른 등지느러미를 통해 개체를 식별해야 돌고래의 사회 구조와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있다.
10년의 노동으로 다양한 사연이 알려졌다.
새끼를 잃은 어미 ‘시월이’는 죽은 새끼를 하늘로 보내지 못하고, 물 위로 들어 올리며 며칠을 다녔다. 꼬리지느러미가 잘렸지만
죽지 말고 오래 살라는 뜻의 ‘오래’,
원담(물때에 따라 바닷물에 잠겼다가 드러나는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시설) 안에 들어와 있길 좋아하는 ‘담이’ 등 관찰을 통해 알게 된 사연에 따라 이름도 붙였다.
제돌이와 함께 제주 바다로 돌아간 삼팔이가 2016년 4월 야생에서 새끼를 낳아 데리고 다니는 모습. 돌고래쇼를 하던 돌고래가 야생으로 돌아가 번식한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장수진씨와 김미연씨가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제공
행동생태학자를 포함한 보전생물학자는 다른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세상과 일정하게 선을 긋고 객관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자연 파괴는 없다’는 식의 개발사업자 쪽의 거짓 주장을 자주 맞닥뜨리면서 그들은 연구 결과를 꺼내 들었고, 지금은 과학자들 가운데 가장 사회참여가 높은 집단으로 통한다. 두 여성 과학자도 같은 길을 걸었다.
“한동리, 평대리에서 수중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해 풍력발전단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제출됐어요. 그런데 돌고래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녹음한 것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소리가 나오는데…” (김미연)
알고 있는 걸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논문을 쓰기 전이었지만, 환경단체와 언론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둘은 “자연보전을 위해 연구 주제를 결정하지 않”지만, “연구 결과가 자연스레 보전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모으며 고래에 대한 생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돌고래 관광객을 몰고 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관찰되는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4~5개 업체가 온종일 선박 관광을 진행 중이다.
돌고래는 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선수 타기’를 하곤 한다. 돌고래의 자유의지로 행하는 놀이행동 중 하나지만,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하면 좋을 게 없듯 돌고래도 마찬가지다.
“선박이 접근하면 돌고래들이 하던 행동이 끊겨요. 돌고래들의 먹이활동 시간도 줄었고, 전체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어요. 선박 스크루에 의해 몸이 상처 나는 경우도 잦아지고요.” (장수진)
“돌고래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해요. 그런데 선박이 가까이 오면 돌고래 소리가 커져요. 소리를 질러야 알아들을 수 있는 클럽에 하루 내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김미연)
남방큰돌고래 행동생태 연구는 고되다. 찰나를 향한 기다림의 연속이고, 사진을 분류하는 노동의 연속이다. 제주도 해안가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연구원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제공
관광 선박이 일정 거리 내로 접근을 금지하는 규제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서너 시간만이라도 운항 중단 시간을 만들고, 선박이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을 설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남방큰돌고래 야생방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야생보전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성공 이후 최근 두 차례는 실패를 겪었다.
2013년 제돌이∙춘삼이∙삼팔이 그리고 2015년 태산이∙복순이 등 다섯마리는 야생 무리에 합류했지만, 2017년 수족관에 오래 감금됐었던 금등이와 대포는 방사 직후 종적을 감췄다.
지난해 10월 찬반 논란 속에서 방사됐다가 실종된 비봉이 또한 마찬가지다. 둘은 비봉이에 대해 “방류 과정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있지 않아서 평가하기가 힘들다”면서도 “비봉이가 방류 적합성 평가에서 좋은 신호가 있다면 시도해 볼 수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면 (육지로) 돌아와야 했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