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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불꽃 터지던 그 밤, 낭만과 함께 온실가스도 수직 상승했죠”

등록 2023-11-21 05:00수정 2023-11-21 18:36

[짬] ‘대기 과학자’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세계불꽃축제 현장에서 불꽃이 터지면서 뿌연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민경은 교수 연구팀 제공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세계불꽃축제 현장에서 불꽃이 터지면서 뿌연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민경은 교수 연구팀 제공

서울세계불꽃축제가 한창이던 지난달 7일, 신도림역 부근 한 200m 높이의 건물 옥상에 카메라와 컴퓨터 장비 등을 든 ‘수상한’ 사람들 한 무리가 축제가 한창인 여의도 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펑펑’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반짝이는 불꽃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지만, 이들은 화려한 불꽃이 꺼지고 난 뒤 하늘에 퍼져나가는 희끄무레한 ‘연기’에 주목했다.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와 석·박사 5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이 건물 옥상 위에 이산화탄소 농도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대기 중 온실가스 변화 추이를 관측하고 있다. 인간 활동으로 대기에 유입된 물질이 어떻게 변화해 유해물질을 생성하는지 그 과정을 알아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불꽃축제는 인간 활동이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에 좋은 이벤트 중 하나였다. 불꽃축제가 펼쳐진 날, 민 교수팀의 관측 장비가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580ppm’(5분 평균)이었다. 평상시(평균 440ppm)보다 무려 140ppm나 높은 수준이었다. 순간 최대 농도는 1230ppm까지 치솟았다. 이날 전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419.93ppm이었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 대기오염 측정 장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민경은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가 지난 7일 연구실 대기오염 측정 장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이런 수치가 100% 불꽃축제 때문인지는 과학적으로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불꽃축제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5㎞나 떨어진 신도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많이 희석됐을텐데도 이 정도 값이 관측됐다는 점이 유의미합니다.”

민 교수는 지난 7일 광주과기원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불꽃이 터지던 그날 밤 서울에선 낭만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도 수직 상승했다”는 얘기다. 민 교수는 “저녁 7시부터 이산화탄소 농도가 서서히 올라가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전체적으로 평상시보다 농도가 30ppm가량 높아졌다”며 “(불꽃축제가) 도심 전체를 가득 메우는 기본 농도를 그만큼 올렸다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불꽃축제 때 구로서 CO2 관측
평상시 440ppm→평균 580ppm
최대 농도 1230ppm까지 치솟아
“매일 들여다 보니 다른 방법 없어
탄소 ‘중립’ 아닌 ‘제로’ 만들어야”

R&D 예산 축소에 지원 삭감 위기
“과학의 정확성 떨어질 수밖에 없어”

민 교수 연구팀은 신도림역 건물 옥상에서 이산화탄소를 관측하기에 앞서 2017~2018년에는 광주 도심에서도 관측 장치를 설치해두고 온실가스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수직 이동하는지, 그 농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관측한 바 있다.

매일 실시간으로 대기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민 교수와 연구팀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연구를 하다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 등) 그 결과로 인한 위험이 보이는데, 지금 우리가 탄소중립 담론으로 다루고 있는 많은 것들이 (다급한 현실에 비해) 해결책이 되기엔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8살 아이를 키우는 ‘과학자 엄마’의 눈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기까지 하다. 민 교수는 “지금 상태로 가면, 우리 아이가 제 나이가 되면 ‘끝’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끝’의 의미는 “기후위기로 인한 기상 재난 발생이 일상화되고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는 게 보통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민경은 교수 연구팀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관측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민경은 교수 연구팀 제공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민경은 교수 연구팀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관측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민경은 교수 연구팀 제공

민 교수는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내놓는 걸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배출권 거래 방법의 하나로) 나무를 많이 심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투자했으니 배출권을 그만큼 준다고 하는데, 이런 방법을 쓰기에 앞서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는 방안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식물이 흡수하는 탄소의 양이 적지는 않으나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량에 비하면 그 수치는 현격히 적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다른) 방법이 없다. ‘중립’도 아닌, 할 수 있다면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한 기본 연구조차 ‘현실’의 벽 앞에 막히는 상황이다. 최근 과학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이 일괄 축소되며, 민 교수팀이 2025년까지 신도림에서 진행하기로 한 이산화탄소 측정 과제에 대한 지원도 삭감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민 교수는 “과학계 연구개발 예산이 이렇게 일괄 삭감된 경우는 2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해마다 조금씩 다른 과제를 추가하면서 조금 더 정확한 값을 추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예산이 줄면 과학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연구개발 예산마저 삭감되는 상황이지만, 민 교수는 이럴수록 환경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경문제를 놓고 생각해보면 산업화, 산업화 이전의 식민화, 자본주의 사회 등 역사 시간에 배웠던 것들이 다 연결된다”며 “진실을 호도하지 않으면서도 중립적이고, 팩트를 기반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이 교과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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