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반포서 ‘매미찾기’ 시작
관찰 토대 동화책 4만여권 ‘인기’
“땅속서 얼마나 오래 사나” 궁금
봉천동 단지 돌며 영상 촬영
산란·부화·탈피 일대기 기록 생생
완성 5년만에 유료채널서 공개
관찰 토대 동화책 4만여권 ‘인기’
“땅속서 얼마나 오래 사나” 궁금
봉천동 단지 돌며 영상 촬영
산란·부화·탈피 일대기 기록 생생
완성 5년만에 유료채널서 공개
‘도심 매미’ 다큐로 만든 박성호 피디
박성호(47) <엠비시플러스> 제작센터장과 매미와의 만남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그가 살던 서울 반포 한신아파트 단지에 매미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매미 소리가 이렇게 큰데, 왜 매미를 본 기억은 없을까?” 아파트 단지 매미 촬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관찰 기록은 4만권 이상 팔린 자연생태 동화책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사계절, 2004년) 출판으로 이어졌다. 그가 여름 한철에 내리 9년 동안 찍은 영상을 토대로 한 다큐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가 이달 초 아이피티브이를 통해 선을 보였다. ‘매미에 빠진 피디’ 박 센터장을 지난 2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이 다큐를 2011년에 완성한 뒤 극장 개봉을 시도했다. 하지만 극장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위주인 어린이영화 상영 시스템 탓이 컸다. 5년이 지나서야 유료방송채널 브이오디 서비스를 통해 빛을 본 것이다. 영상을 보니, 산란과 부화를 거쳐 애벌레로 땅속에서 오래 머물다 세상 밖으로 나와 탈피해 짧은 생을 마치는 도심 매미의 일생이 생생하다. 딱딱한 나무 표면에 산란관을 밀어넣어 알을 낳는 모습이나 알을 깨고 나뭇가지 바깥으로 나오는 화면에선 자연의 신비로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9년의 촬영 기간은 그를 매미 전문가로 만든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대규모 재개발이 이뤄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단지를 찾아 매미종을 관찰했다. 아파트 조경이 마무리된 뒤 3년엔 애매미, 4년엔 참매미, 5년엔 말매미를 볼 수 있었다. 이 땅의 매미가 땅속에서 얼마나 오래 지내는지는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직접 가정을 세워 관찰한 것이다. “아파트 단지 조성 때 객토해 들어온 흙에 매미 유충이 있을 수 있어 제 관찰만으로 매미의 땅속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어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는 눈치다.
가장 인상적인 촬영 장면을 꼽아달라고 했다. “산란했던 알이 나뭇가지 속에서 1년을 버틴 뒤 부화합니다. 마침내 알 껍질을 벗고 나무 밖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이른 아침에 찍을 수 있었어요. 이 촬영이 그 뒤에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한 동력이 됐죠.”
그는 교양 프로그램 전문 피디다. 1996년 디지털조선일보에서 피디 생활을 시작했다. <여행레저티브이> <메디티브이>를 거쳐 2006년 <문화방송>(MBC) 자회사인 엠비시플러스로 옮겨 올해부터 예능과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고 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휴먼다큐 제작입니다. 하지만 기회를 잡기 힘들었죠.”
그는 매미 다큐에 이어 ‘도시로 간 산’이란 테마로 야생과 거리가 멀어진 남산의 모습도 기록하고 있다. “터널이 셋이나 뚫린 남산은 물도 부족하고, 야생의 모습을 많이 잃었어요. 기회가 되면 제작 여건을 갖춰 공동작업을 할까 합니다.”
그는 매미 다큐에서 인간 중심의 자연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즘은 줄어들었지만 여름철만 되면 ‘도심 소음의 주범, 매미’류의 보도가 반복되었죠. 시끄럽다는 것도 상대적인 것 같아요. 필요한 소리라고 생각하면 시끄럽다고 생각 안 하겠죠. 환경도 자연과의 공존이라고 보지 않고 인간 중심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중국 외래종인 꽃매미에 우리 사회가 공포심을 가지고 반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연은 스스로 생태계의 균형을 잡을 힘이 있습니다. 외래종 식물인 자리공이 남산 생태계를 망친다고 걱정했지만 기우였지요. 도심에 매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녹지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북송시대 시인 소동파(1037~1101)의 작품 <적벽부>에 ‘우화등선’(羽化登仙)이란 표현이 나온다.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인데 매미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얼마 전 항저우를 갔는데 매미 천지였어요. 우화등선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소동파는 항저우에서 관리를 두 번이나 했죠. 거기서 처음 듣는 매미 소리를 따왔어요.” 그는 여행을 가는 곳마다 매미를 찾아다닌다. “한국에선 산에나 볼 수 있는 민민매미가 도쿄 도심에 굉장히 많아요. 말레이시아 정글에선 참새만한 매미를 보기도 했어요.”
또다른 매미 탐구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아이도 보고 어른도 볼 수 있는 매미 곤충기를 쓰는 게 다음 목표”라고 답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성호 엠비시플러스 제작센터장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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