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2차 대전 이래 최악의 인권 위협.”
2019년 12월10일 세계 인권의 날,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최고대표의 말이다. 생명·건강·식량·식수·주거에 대한 기본적 권리, 이에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앞서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뒤 유엔기후변화특사를 맡았던 메리 로빈슨은 2015년 “기후변화가 21세기 인권에 가장 큰 위협임을 깨달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북극곰이나 녹고 있는 빙하 사진에 큰 인상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식량, 물, 건강, 교육, 주거 등 사람들 인권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과거 세계인권선언을 이끌어냈던 이들은 기후변화로 한 나라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기후위기란 지구상에 실존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이대로 간다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논리가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과 시스템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
“부자들은 더위, 기아, 갈등을 피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나머지 세계는 고통을 받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시나리오 위험에 처했다.” 2019년 5월 필립 올스턴 유엔 빈곤·인권 특별보고관이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보고서는 더 끔찍한 미래를 예견했다. 폭염, 집중호우, 한파 등 이상기후가 지속될 경우 극심한 분열과 사회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적절한 음식과 물에 접근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부터 희생되고 배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욕을 강타했을 때 맨해튼 골드만삭스 본사 건물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수만개의 모래주머니를 놓고 사설 발전기를 돌려 위기를 견뎠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추위와 공포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방패가 없었다.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 지역을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 제방이 붕괴됐다. 대피 경고를 받고도 자가용 등 교통수단이 없어 대피하지 못한 빈곤층 등 1500여명이 숨졌다.
유엔은 기후위기 문제 이면에 불평등한 권력 문제가 숨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는 개발, 세계 보건, 빈곤 감소에 있어서 지난 50년 동안의 진보를 되돌리려고 위협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인구의 절반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만 차지하고 있는데도, 개발도상국들은 기후위기 비용의 75%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최우리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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