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마인드포스트>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세상이 무능하고 폭력적이라고 여기는 정신장애인들이 세상의 무능함과 폭력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매체이죠.”
오는 6월 11일 창간 4년을 맞는 온라인 매체 <마인드포스트> 대표이자 기자인 이관형(38)씨가 자신이 일하는 언론사를 소개하는 말이다.
정신장애인 인권향상과 권리증진을 목표로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이 매체가 앞세우는 구호는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이다.
“언론은 조현병이 있는 사람들을 주로 범죄 위주로 보도해요. 실제 범죄자는 극소수인데도요. 이런 보도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와 사회의 편향적 인식으로 피해를 보는 정신장애인들을 대변합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체제로 운영하는 <마인드포스트> 기자 넷 중 셋은 정신장애인이고 한 명은 정신장애인 가족이다. 이 대표는 재수 시절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마인드포스트> 대표를 맡은 그는 이 매체 창간 몇 달 뒤 기자로 합류했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자신의 책 <바울의 가시-나는 조현병 환자다>(2018)와 다른 정신장애인들이 쓴 전자책 10여 권을 출간한 1인 출판사(옥탑방프로덕션) 대표이기도 하다. 재작년에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위촉하는 장애인식개선강사에도 선정됐다. <마인드포스트>에서 주로 칼럼을 쓰는 그는 대구대 장애학과 박사 과정을 5학기째 다니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박사 논문은 자신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쓸 계획이란다.
출판사 대표와 기자, 강사에 박사 과정까지 매우 바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하는 일과 공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힘들지 않다”고 받았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토론한 내용으로 칼럼도 쓰고 강의도 해요. 이 때문에 학기 중에는 칼럼을 더 자주 쓰죠. 제 수입의 가장 큰 몫은 매달 5~6차례 하는 강의입니다. 회당 20~30만원 정도 받아요. 출판도 주로 정신장애인 저자들이 쓴 책을 냅니다.”
그가 어릴 때 받은 내적 상처로 생긴 조현병을 극복하는 과정을 서술한 <바울의 가시>는 2천권 가까이 팔려 곧 4쇄를 찍는단다. 그가 <마인드포스트> 기자가 된 것도 이 책 출간이 계기였단다. “책 배너 광고를 내려고 전화를 했다가 기사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죠.”
지난 4년 쓴 칼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을 묻자 그는 <한국방송> 투자를 받아 지난해 개봉한 영화 에 대해 쓴 내용이라고 했다. ‘F20’은 2011년 전까지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던 조현병의 질병 코드 번호다. “영화가 아파트 거주 정신장애인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과 편견을 다룬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혐오를 더 부추겼어요. 정신장애인 어머니가 아들 증세를 감추려고 살인을 한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제가 이런 문제를 여러 차례 칼럼으로 다뤘고 이를 본 가족 모임에서 한국방송 앞에서 시위도 했고 상영 중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도 했어요.” 한국방송은 을 두고 장애인 단체 쪽 항변이 나오자 개봉 뒤 예정했던 티브이 상영을 취소했다.
6월 창간 4년 맞는 온라인 매체
정신장애인 인권과 권익 지키려
당사자들이 취재 등 직접 제작
“언론의 범죄 위주 조현병 보도
정신장애인 차별과 혐오 키워
추정 보도 금지 등 가이드라인을”
조현병 극복 다룬 ‘바울의 가시’ 출간
그는 조현병을 가진 이 중 자기 생활을 잘 못 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범죄를 저지른 이는 극소수인데도 사회는 조현병에 무능력과 폭력의 낙인을 찍고 있다고 했다. “제가 책에서 조현병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자 ‘나도 조현병이 있다’는 메일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비리그 유학생이나 서울대생 그리고 대기업 직원이나 의사도 있었죠. 모두 조현병을 이겨내며 폭넓은 분야에서 잘 살고 계시더군요.”
그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법을 바꾸고 돈을 주는 것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무엇보다 언론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언론이 조현병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신장애인을 범죄자로 지목하려면 반드시 기사에 가해자로 특정한 당사자나 가족의 목소리를 넣고 의사의 명확한 소견도 붙여야죠. 외국의 권위 있는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조현병 환자 범죄로 추정된다’는 식의 막연한 보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요.”
이관형 <마인드포스트> 대표.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부정적 어감 탓에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고친 지 올해로 11년이다. 의도한 대로 차별과 편견은 줄어들었을까?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 조현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현악기 줄을 고른다는 뜻인데 지금은 공포스런 단어가 됐잖아요.” 그는 “3년 전에 국내 여러 언론들이 ‘조현병 가진 의사, 버젓이 진료 중’ 같은 제목을 달아 보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스무살에 조현병 진단을 받고 이십 대를 약에 취해 하루 12시간씩 잤다는 이 대표는 29살에 경기대 대학원 전자출판콘텐츠학과에 진학하면서 새롭게 생의 의지를 다졌단다. “그때 약도 바꾸고 몸 상태가 좋아졌거든요.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전자출판학과가 신생 학과라 국비 장학금이 나온다고 해서 진학을 결심했죠.”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것은 신앙의 힘이 컸단다. “하나님이 저한테 이런 아픔을 허락한 이유를 많이 생각했어요. 사도 바울이 남모르게 고통받았던 육체의 가시가 저한테는 조현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울의 가시 이야기는 제가 조현병을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였죠. 힘들고 아프게 살아온 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그는 책에서 “조현병은 나에게 축복입니다”고 썼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 일치할 때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래요. 그래서 행복하죠.”
계획을 묻자 “정신장애학 교재를 쓰고 정신장애학 학문 체계도 세우고 싶다”고 했다. “정신의학에 더해 역사와 철학, 예술 쪽 내용까지 통합해 한 명의 정신장애인이 장애를 이기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정신장애학과도 만들어 전임 교수도 하고 싶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