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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이런 해고가 진짜 맞는 거냐’…20년 청춘 바친 회사에 묻고 싶어요”

등록 2022-03-29 04:59수정 2022-04-14 10:26

[신다은의 일터 삶터 ②] 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
노조를 사랑한 ‘20년차 호텔 요리사’ 이야기

코로나19로 ‘해고’ 통보…100일 넘게 농성해오며
동종업계 이직 마다하고 ‘일터’ 지키고 있는 이유
지난 1월 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이 서로 머리를 마사지하는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로 안마를 하는 이가 고진수씨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1월 농성 중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이 서로 머리를 마사지하는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로 안마를 하는 이가 고진수씨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인터뷰 코너 ‘신다은의 일터 삶터’는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듯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는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새 연재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노동이 한층 복잡다단해진 지금, 정책과 사건 기사로만 드러내기 어려운 노동 현장의 면면을 깊이있게 다루겠습니다.

처음엔 생계 때문에 호텔에 발을 딛었다. 호텔 로비 옆 일식당에서 온종일 생선을 손질하고 초밥을 만들고 탕을 끓였다. 하루 12시간씩 꼬박 서서 일하던 나날이었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가족들 생각에 버티던 즈음, 주방 동료들과 말을 트기 시작했다. 고된 노동을 끝내고 호텔 앞 낡은 호프집 문을 열면 좋아하는 형·동생들이 테이블마다 자리잡고 손을 흔들어 줬다. 서울 중구 세종호텔의 20년차 일식 요리사 고진수(49)씨의 삶은 거기서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기니까 일 끝나고 같이 소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게 참 좋았습니다. 주말에는 야유회도 가고 연말엔 직원 장기자랑도 하고요.”

하루의 절반을 넘게 일해야 하는 호텔 생활은 고됐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9시30분에 집에 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대기 시간이 있긴 했지만 식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잡일을 하거나 다른 팀의 허드렛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매주 수요일엔 호텔 관리자 요구로 교회 예배에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고씨는 “직장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긴데 대기 시간에 대한 임금도 없고, 서비스 비용으로 받는 10% 부가세도 부서마다 다 다르게 배분해 직원들이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호프집 한탄, 노조 만나 ‘요구’가 되다

늦은 밤 호프집에서 주고받던 한탄은 노동조합을 만나 구체적인 요구로 분출됐다. “원래 입사하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하니까 처음엔 큰 관심 없었는데요. 정규직 전환 이후 근로기준법이랑 단체협약을 처음 알고서 ‘내가 겪은 게 부당하구나’, ‘근로기준법과 판례를 보면 대기 시간도 일하는 시간이나 다름없구나’ 알게 됐죠. 옛날에는 술 한잔 하면서 곱씹는 게 다였는데 이젠 대의원 대회 가서 ‘이렇게 돼야 맞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고요. 노조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니까 엄청 힘이 되더라고요.” 그는 2005년 노조 간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현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다.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세종호텔지부 제공.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세종호텔지부 제공.

노동조건을 가지고 투쟁해 본 경험은 이후 회사의 노조 탄압에도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복수노조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11년, 세종호텔은 사쪽에 우호적인 노조가 새로 만들어지자 기존 노조와 체결했던 단체협약 핵심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고씨가 속한 민주노조가 이에 맞서 고용 보장을 요구하면서 노사 갈등이 커졌고 조합원에 대한 ‘뺑뺑이’ 전보가 이어졌다. 고씨는 “사무직 조합원이 웨이터 자리로 가거나 임신한 조합원이 손님들 커피잔 서빙하는 쪽으로 배치되곤 했다”고 말했다.

주어진 선택지는 노조 간부 활동을 그만두거나 전보를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노조는 제3의 선택지를 만들었다. 2012년 1월 노조 탄압 중단과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38일에 걸쳐 장기투쟁하는 동안 다른 사업장 노조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고 ‘그간 미뤘던 단체협약을 이행하겠다’는 세종호텔 경영진의 약속을 받아냈다. 특히 단협에 따라 1년 이상 근속한 계약직 4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 큰 성과였다. “내심 우리 힘으로 어떻게 돌파할까 걱정했는데 여러 노조 연대가 모이면서 그 힘이 엄청나게 크게 결집하니까 회사가 움직이더라고요. 그 때 기분은 말로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 기분으로 노조를 하는 거 같아요.”

청춘 바친 회사의 끝이 ‘위로금’일 순 없다

그 뒤로도 퇴직자는 해를 거듭하며 늘어났다. 잊을 만하면 희망퇴직 공고가 붙었고 수십명이 무더기로 일을 그만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론 구조조정 속도가 더 빨라져 2020년 12월엔 40여명이, 지난해 9월엔 20여명이 호텔을 떠났다. 고씨를 포함한 노조 간부와 조합원 15명도 휴업명령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지난해 11월 끝내 해고를 통보 받았다. 세종호텔은 지난해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에 ‘영어 시험’을 제시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올 게 왔구나’ 생각했고 막막하지는 않았어요. 이 해고는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합원들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요. 코로나는 끝이 있을 것이고 장사가 다시 되면 우리는 호텔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요.” 지난해 12월10일부터 시작된 그와 동료들의 복직 투쟁은 이제 100일을 넘겼다. 지난 크리스마스 땐 동료들과 함께 호텔 로비에 ‘파업 트리’를 만들고 그 아래서 잠들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세종호텔의 휴업명령에 대해 ‘합당한 기준 없이 휴업명령 대상자를 선정한 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했으나, 이를 부당노동행위(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보지는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종호텔 사측이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호텔 로비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직장폐쇄를 실시한 9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호텔 로비에서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종호텔 사측이 정리해고 통보에 맞서 호텔 로비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직장폐쇄를 실시한 9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호텔 로비에서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노조 활동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고씨는 “지난 10년 간 호텔의 노동환경이 굉장히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일터를 지키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며 “저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도 ‘누가 와서 일하더라도 내가 처음 와서 좋았던 정도론 되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겉으로만 평화로웠던 과거의 노사관계보다는 탄압을 받을지언정 몇 명이라도 노조의 필요성을 알게 된 지금이 백번 맞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고씨 역시 노동조합을 향한 세간의 불편한 시선을 알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노동자에게 꼭 필요하다는 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는 현장에서 노동법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됐던 게 노동조합이라며 “노동법을 빠져나가기 너무 쉬운 환경에서 개별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혼자 지키는 건 바늘 귀에 낙타 들어가는 일만큼 어렵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해고 노동자에게 ‘다른 일을 찾으면 되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세종호텔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다. “열심히 일한 자부심이 있어서 더 못 떠나는 겁니다. 저희도 동종업계 어디든 가려면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청춘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한 회사의 끝이 이럴 순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회사가 희망퇴직 위로금을 준다지만 지난 20년 노고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고요. ‘이런 해고가 진짜 맞는 거냐’고 묻고 끝까지 결과를 보고 싶은 거예요.”

법원 판결에 따라 호텔 안에서 밀려난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월18일 저녁 호텔 밖에서 퇴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복직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비닐천막에서 교대로 밤샘농성을 이어간다. 박승화 &lt;한겨레21&gt; 기자 eyeshoot@hani.co.kr
법원 판결에 따라 호텔 안에서 밀려난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월18일 저녁 호텔 밖에서 퇴근길 시민들을 상대로 복직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 비닐천막에서 교대로 밤샘농성을 이어간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복직하면 ‘다같이 즐거운 현장’ 만들고파

고씨는 2012년에 이어 이번 투쟁도 승리의 기억으로 만들고 싶다. 그는 “복직해 현장으로 돌아가면 지금 싸우는 동지들 데리고 노동조합 한 번 정말 잘 해 보고 싶다. 노동 현장이 같이 즐거워질 방안을 현장에서 찾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간 비정규직이 꾸준히 양산되면서 정규직 일자리는 ‘한줌’이 됐다. 새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약속한 지금, 양질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모든 해고는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금도 비정규직 사업장에선 계약해지라는 형태로 해고가 만연하지요. 그렇기에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사라지게 하는 싸움도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었던 세상으로 함께 돌아가자는 거지요.” 고씨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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