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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목숨 잃었는데도 공장가동 소름”…SPC 향한 ‘분노의 불매’

등록 2022-10-19 08:00수정 2022-10-20 17:39

사망사고 계기 불매운동 재확산
불법파견·노동탄압 전력 재부각

“피 묻은 빵을 어떻게 먹겠나.” “노동자의 피 묻은 빵을 사먹지 맙시다.”

지난 15일 새벽 경기 평택의 에스피씨(SPC) 계열 에스피엘(SPL) 제빵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던 노동자 ㄱ(23)씨가 기계에 끼여 숨진 가운데, 국내 대표 식품기업 에스피씨의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친숙한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대기업이면서도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 등 지속적인 노동권 침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중대재해 사건을 매개로 폭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에스피씨가 운영하는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이날 기준 1만6000건 넘게 리트윗된 그림에는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샤니, 삼립식품 등 베이커리·디저트 브랜드부터 쉐이크쉑, 파스쿠찌 등 외식과 커피 브랜드 로고가 나열돼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도 ‘SPC 불매’, ‘불매운동’ 등의 열쇳말이 올라와 있다.

시민들이 분노를 넘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건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거대 기업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노동자가 야간근무 중 숨졌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후 회사의 비인간적인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회사는 고용노동부가 사고 발생 기계와 동일한 기계에만 작업중지 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사고 직후에도 공장을 정상 가동했다. 이튿날 노동부가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등을 이유로 추가 작업중지를 권고한 뒤에야 사쪽은 해당 층에 대한 작업을 중지했다.

직장인 양태현(30)씨는 “노동자가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바로 공장을 가동시키는 행태에 소름이 끼쳐 불매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유진(31)씨는 “노동자를 위해 시작한 불매운동이 역설적으로 소속 노동자와 가맹점주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아서 안타까운 점도 있으나, 에스피씨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제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에스피씨에 대한 불매운동은 지난 5월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의 단식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당시 임 지회장은 ‘노조 탈퇴 회유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와 사회적합의 이행’을 요구했는데, 수년간 에스피씨 계열사에서 발생한 노동 이슈와 관련해 누적된 비판 여론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노동권 문제는 2017년 처음 시작됐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한 채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파리파게뜨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기사들은 가맹본부인 파리크라상이 아닌 협력업체에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파리크라상이 제빵기사를 지휘감독하고 있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제빵기사 5천여명을 파리크라상이 직접고용하라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에스피씨는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고용을 고집했고, 이듬해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가 제빵기사들을 고용하는 대신 3년 안에 그 임금을 본사 수준으로 맞추는 ‘사회적합의’를 했다. 하지만 제빵기사들은 현재까지 사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는 에스피씨(SPC) 브랜드 목록. 트위터 갈무리
온라인에 공유되고 있는 에스피씨(SPC) 브랜드 목록. 트위터 갈무리

민주노총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도 에스피씨 계열사 전반에 확인된다. 민주노총 노조가 설립되면 관리자 중심으로 한국노총 소속 복수노조가 설립되고, 민주노총 노조의 조합원 숫자가 급감해 한국노총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는 식이다. 파리바게뜨와 비알코리아가 민주노총 조합원을 탈퇴시키거나, 승진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차별한 행위는 노동위원회와 노동부 수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파리바게뜨의 경우 노조 간부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연장근로가 인정되지 않고, 보건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한 사실 등을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당했는데,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발언이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당징계라고 판결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눈덩이처럼 커져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에스피씨는 이를 차단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등이 파리바게뜨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있는데, 에스피씨는 법원에 ‘집회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문병호 공동행동 간사는 “불매운동은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만큼 에스피씨 노동조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많았다는 것”이라며 “에스피씨는 기업의 불법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를 금지해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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