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20대 노동자 ㄱ씨(23)씨가 에스피씨(SPC) 계열의 빵 반죽 공장에서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숨졌다. 17일 찾아간 ㄱ씨의 빈소 앞은 근조 화환으로 빼곡했다.
아직 앳된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 앞에 음료수 캔 하나와 알록달록한 젤리 몇 개가 놓여 있다. 무겁게 무채색으로 내려앉은 빈소에서 유일하게 빛깔이 느껴지는 물건이다. 지난 15일 에스피씨(SPC) 계열의 빵 반죽 공장에서 사고로 숨진 ㄱ씨(23)의 남자친구 ㄴ씨(25)가 사다 놓은 과자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이에요.”
17일 오전 찾아간 빈소는 한산했다. ㄱ씨의 어머니와 친인척, 남자친구 ㄴ씨 등 몇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52시간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일찍 퇴근해야 하는데, 그날(사고 당일) 제가 먼저 퇴근했어요. 원래라면 아침 8시에 같이 퇴근했을 텐데…” 남자친구 ㄴ씨와 숨진 ㄱ씨는 같은 공장에서 일한 동료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도 전날 오후 8시부터 ‘12시간 맞교대’ 야간근무를 함께 했다.
평소 같으면 함께 퇴근했을 터였다. 하지만 15일 오전 5시 남자친구는 근무시간 관리를 이유로 일찍 공장을 나섰고, ㄱ씨는 10시간째 일하던 오전 6시20분께 샌드위치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는 변을 당했다.
“옆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비상경보 버튼이라도 눌렀으면, 그걸 못 눌러서 (기계가) 안 멈춘 거잖아요.” ㄴ씨의 ‘이른 퇴근’에 앞서 짧게 나눈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됐다.
ㄴ씨는 ㄱ씨가 자신만의 빵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빵 만드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 쪽을 했어요. 나중에 자기 빵 가게를 차리고 싶어했습니다.”
숨진 ㄱ씨는 고등학교에서부터 제빵을 전공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곧장 파리바게뜨 매장에 제빵사로 취직했다. 그러다 2년 9개월 전 파리바게뜨에 재료를 납품하는 반죽 공장 에스피엘(SPL)로 직장을 옮겼다.
공장일을 시작한 뒤 초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야간근무조로 일을 했다고 한다. 수십 킬로그램짜리 포대를 들어야 하는 힘든 업무였지만, 누구보다 성실했다. 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자신만의 빵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은 빵 반죽 공장의 차가운 기계에서 멈춰 섰다.
유족과 지인들은 ㄱ씨가 ‘소녀 가장’으로 비치는 것에 난색을 보였다.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집 산다고 야간근무도 열심히 하는 평범한 20대였어요.” 가계에 보탬을 줬지만 홀로 가정 생계를 끌고 가는 것도, 가족 부양을 위해 야간근무를 자처한 것도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유족은 “고인에 대해 왜곡된 이야기들이 남은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입관을 마쳤지만, 발인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남은 유족들은 열심히 일한 ㄱ씨가 왜 사고를 당해야 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ㄱ씨가 숨지고 이틀. 빈소 앞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의 근조 화환으로 빼곡했지만, 누구도 유족의 물음에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글·사진 장현은 기자
mi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