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에스피씨(SPC)본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5일 경기 평택의 에스피씨(SPC) 계열의 빵 공장 에스피엘(SPL)의 소스 제조 공정에서 일하던 ㄱ(23)씨가 기계에 끼여 숨진 가운데, 회사가 사고를 확인하고 119에 신고하기까지 10분이나 지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령은 구호 조처를 포함한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 마련 의무를 부과하는데, 에스피엘의 매뉴얼 존재 및 이행 여부 등도 고용노동부 수사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은주 의원(정의당)이 <한겨레>에 제공한 ‘10월15일 안전사고 발생 경위 및 경과 보고서’(사고 직후 에스피엘 작성)를 보면, 이날 새벽 6시15분 동료 작업자인 ㄴ씨가 냉장샌드위치 생산라인 소스 배합기(교반기)에 끼여 있던 ㄱ씨를 발견했다.
해당 문건엔 “교반기에는 내용물이 가득 찬 상황이었고 동료 작업자들이 내용물을 비운 후 재해자를 확인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였음(사망시간은 6시20분경으로 추정)”이라고 적혀 있다.
기록상 발견 시간과 사망 추정 시간 사이에 5분이 있었지만, 동료들은 발견 당시 이미 ㄱ씨가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ㄴ씨는 발견 2분 뒤인 6시17분 야간 현장관리자 ㄷ씨에게 유선으로 연락했지만, ㄷ씨는 8분이 지난 6시25분에서야 119에 신고했다.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6시43분인 것으로 적혀 있다. 다만, 평택소방서는 <한겨레>에 “최초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6시26분, 현장 도착시각은 6시37분”이라고 확인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에스피씨(SPC) 본사 앞에서 열린 ‘제빵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건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청년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가 지연된 것과 관련해, 에스피엘이 현장 직원에게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고, 회사 보고 전 119 신고도 사실상 금기시하고 있어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에스피엘지회 지윤선 회계감사는 “현장 직원들은 작업장에 핸드폰을 갖고 들어갈 수가 없고, 관리자에게 유선전화로 보고를 하더라도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니 지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에 작업장에서 일하던 분이 쓰러진 적이 있는데, 동료 직원이 119에 전화를 했다가 회사에 먼저 보고하지 않았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어서 찍힐까봐 (직접 신고를) 못한다”고 덧붙였다.
에스피엘의 늑장 대처는 노동부의 중대재해법 수사에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는지 평가할 때, 중대재해 발생 시 대응 조처를 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할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작업중지·노동자 대피·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처 △중대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호조처 △추가 피해방지를 위한 조처 등이 담긴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한다.
노동부의 중대재해법 해설서에도 구호조처와 관련해 “119 등 긴급상황 때의 연락체계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따라 기본적인 응급조치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고 적혀 있고, “매뉴얼은 긴급상황에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해당조치에 응할 수 있도록 종사자 전원에게 공유돼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에스피엘에서는 이러한 매뉴얼이 직원들에게 공유되거나 교육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 회계감사는 “일상적인 안전교육도 시행하지 않은 채 서명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도 교육받고 공유받은 적이 없다”며 “사고 발생 때 신고 방법이나 병원 이송 등에 관한 매뉴얼이 없어 사고가 날 때마다 우왕좌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에스피씨 쪽은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답변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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