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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란봉투법 통과되면 노사관계 파탄?…“원청 교섭땐 쟁의 줄 것”

등록 2023-02-14 05:00수정 2023-02-14 13:26

경영계 반대논리 따져보니
“원청과의 대화 창구 없다보니
파업·점거 격렬 쟁의 악순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활동가들이 지난 1월 낮 국회 앞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농성장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활동가들이 지난 1월 낮 국회 앞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농성장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자는 취지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경제6단체(경영계)는 성명을 내어 노란봉투법이 “노사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10월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 90여곳으로 구성된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제시한 개정안을 기준으로, 그 의미를 살펴 경영계의 반대 주장을 따져보았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를 ‘사실상의 영향력과 지배력’을 기준으로 구체화하고(2조),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대한 세부 기준(3조)을 담고 있다.

①원청에 모든 책임을 지운다?

현행법에서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등으로 정의되는 사용자는, 노란봉투법에선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 업무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이다. 원청 결정에 따라 노동조건이 좌우되지만, 원청과 단체교섭은 할 수 없었던 하청·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사실상의 영향력’을 지닌 사용자와의 교섭을 법에 명시적으로 보장하면 ‘불법 파업’을 줄일 수 있다. 하청 노조는 원청과도 단체교섭 및 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교섭 결렬 땐 합법적인 쟁의행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용자 정의 변경에 대해 경영계는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지위를 강제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에 적힌 ‘사실상의 영향력’은 이미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나 법원 판결에서 사용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산업 구조와 노동 관계가 복잡해진 탓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과 교섭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며,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3자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는데, 형식적 관점에서만 단체교섭 당사자를 판단·결정하게 되면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 향상을 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짚었다.

그렇다고 ‘하청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모두 원청이 책임지라’는 의미는 아니다. 원청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묻는다. 지난 1월 택배 노동자들에 대한 CJ대한통운(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1심 판결은 주5일제 시행·수수료 등 다양한 노동 조건에 대해 원청 책임, 원청과 하청(집배점주) 공동 책임 등을 각각 나누어 인정했다. 그럼에도 원청으로선 새로운 의무가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윤지영 변호사(운동본부 정책법률팀장)는 “정부가 법 취지에 맞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②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조항에 대해 경영계는 “지금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그 피해를 모두 감수한다. 하지만 불법은 다르다”고 했다. 기업의 재산권 침해 가능성은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가장 큰 논쟁 지점이다. 노란봉투법 3조는 불법행위를 용인하기보다 ‘무엇이, 어디까지 불법인가’를 정하는 쪽에 가깝다.

노란봉투법은 우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촉발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다. 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배상 청구 등 무리한 배상청구액을 허용하지 않을 것도 요구한다. 법원 또한 사용자가 불법 쟁의에 대한 원인을 제공했는지 살펴 손해배상 청구액을 감면하지만, 애초 청구액이 터무니 없이 높아 감면 효과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에 대우조선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470억원이었다.

재산권을 고려하는 일반적인 민법의 손해배상에 견줘, 노조법은 또다른 기본권인 노동 3권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만큼 손해배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국제기구의 권고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철도노조에 대한 코레일의 손배 소송에 대해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운영에 미칠 수 있는 (손해배상청구의)중대한 영향에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③노사관계가 파탄날까?

경영계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노사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며 “산업현장은 1년 365일 분쟁에 휩쓸리고 결국 기업경영과 국가경제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개정안에서 쟁위 행위의 정의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까지 넓어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개정안의 쟁의 행위 범위가 모호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동안 ‘정당한 쟁위행위’가 ‘단체교섭의 주체인 노동자의, 단체교섭에 대한 것’에만 한정돼 지나치게 좁다는 문제제기도 끊이지 않았다. 상당 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쟁의나, 이미 정해진 단체 협약 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벌인 쟁의 행위는 대부분 불법이었다.

노동계는 ‘노사관계 파탄’을 걱정하는 경영계와 달리,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노조법 1조가 목표로 삼는 ‘산업평화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노란봉투법이 하청·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등이 격렬한 파업·점거를 하기에 앞서 원청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노동자들은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데, 누가 임금 안 받아가며 파업하고 싶겠나. 대화 창구가 없다 보니 격렬한 쟁의에 나서는 악순환”이라며 "원청이 교섭에 나와 해당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협의하면 오히려 파업 등 쟁의행위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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