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020년 11월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산재로 사망한 99명의 영정을 의자에 놓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할 말)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원청 대표이사한테 첫 실형 판결이 나온 26일 창원지법 마산지원 220호 법정에서 한국제강 대표이사 성아무개씨는 선고 직후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날 ‘안전제일’이라는 마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선 성씨는 바로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가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1년 실형을 선고했을 때도 성씨는 크게 당황한 기색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이날 선고는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에 있는 한국제강 공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 ㄱ씨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2t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진 지 1년1개월 만에 나왔다. ㄱ씨는 성씨가 대표이사인 한국제강과 도급계약을 맺은 강백산업 소속 하청 노동자였다. 그는 이런 ‘중량물 취급 작업’에 필요한 작업계획서도 없는 상태에서 작업하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성 대표한테 실형 판결이 나온 배경엔 해당 사업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실이 고려됐다. 이번 판결로 구속된 성씨는 2011년·2021년엔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고, 2021년 5월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아왔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들어 판결문에서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차례 적발되고 산재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근로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피고인 쪽의 ‘준비 기간이 부족했다’는 반론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공포된 날부터 시행일까지 1년의 시행유예 기간이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1호 선고였던 온유파트너스의 경우엔 원청 대표이사가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아 실형을 피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은 “(이번 판결이) 사업주들에게 노동자의 생명이나 건강권 등 산업안전을 제대로 책임지라는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첫 실형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낮은 양형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영국 변호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이날 “법정 하한형이 징역 1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선고 형량이 법정 하한형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도 산업안전보건 범죄가 반복된 경우에 실형이 선고됐으므로, 1년이라는 형량이 특별히 무거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1년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권고 형량 범위를 기존 징역 10개월~3년6개월에서 징역 2~5년으로 대폭 상향한 바 있다.
법인에 대한 벌금형 1억원도 원청업체의 매출액이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제강의 지난해 매출액이 8340억원이었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법인의 경영에 부담을 주지 못하는 처벌이 어떤 법적 억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나”라고 짚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여부를 직접 관리·감독할 수 없는 대표이사에게 단지 경영책임자라는 신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엄격한 형벌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김해정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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