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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공공부문 노동운동사는 시장화에 맞선 저항의 역사”

등록 2023-09-27 08:18수정 2023-09-27 08:36

[짬] 공공부문 노동운동 35년사 펴낸 박용석 전 민주노동연구원장
박용석 전 민주노총 부설 정책연구원장(현 민주노동연구원장)은 “자료를 모으는 습관이 책을 낼 수 있게끔 했다”고 술회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박용석 전 민주노총 부설 정책연구원장(현 민주노동연구원장)은 “자료를 모으는 습관이 책을 낼 수 있게끔 했다”고 술회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철도와 지하철에 이어 공공병원∙에너지∙건강보험과 연금 등 이른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달 14일부터 11월까지 순차적으로 공동파업을 이어가는 가운데, 938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들의 ‘투쟁과 조직 발전 35년’을 기록한 저서 ‘1987년 이후 공공부문 노동운동사’가 노동계 안팎에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무겁고 두꺼운 ‘벽돌책’을 펴낸 이는 민주노총 소속의 대표적인 ‘정책통’인 박용석 전 민주노총 부설 정책연구원장(현 민주노동연구원장)이다. 그는 “공공부문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는 시장화에 맞선 저항의 역사이자 공공성과 노동권의 확장 또는 유지를 위한 끈질긴 투쟁의 역사였다”며 “여러모로 거칠고 부족하지만, 이 역사를 되돌아보고, 더 발전적으로 이어지길 바란 마음에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 억압과 공공부문 시장화 등 윤석열 정부의 시장 근본주의 정책 기조에 ‘조직노동’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등 현 단계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전략과 실천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버리지 않고 쌓아두었던 숱한 수첩∙메모장∙파일∙디스켓 등에서 의미 있는 사실을 길어 올려 직조한 박 전 원장이 기록한 공공부문 노동운동사는 실상 자신의 노동운동 여정이기도 하다.

1988년 한국소비자원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박 전 원장은 단위노조 위원장, 소산별 노조(전국연구전문노조) 위원장, 공공연맹 부위원장, 공공운수연맹 사무처장,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4년 동안에는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을 맡아 이 연구원이 민주노총의 실질적 싱크탱크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원장을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저서 출간 직후인 지난 7월 7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박용석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주동 이음나눔유니온 사무총장 제공
저서 출간 직후인 지난 7월 7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박용석 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박주동 이음나눔유니온 사무총장 제공

박 전 원장은 자신의 저서에 대해 “87년 이후 전개된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거칠게 정리한 통사”라고 요약했다. 이어 “공공부문 노조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노동권 억압 및 공공부문 시장화에 맞서 투쟁했는지, 그리고 민주노조의 전국적 연대와 단결을 실천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책은 그 자신이 몸담은 민주노총 공공연맹이 오늘의 공공운수노조로 발전해온 조직 발전과 투쟁의 역사에, 공무원노조,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및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운동 등을 함께 담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 통사도 몇 권 출간돼 있지 않지만,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역사만을 따로 꿰뚫어 환히 볼 수 있게 한 저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공부문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정책을 수립하는 행정기관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을 포괄한다. 2021년 12월 통계청 기준 이 부문 종사자는 283만9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0.5% 수준에 이른다.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박 전 원장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공공성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것을 근본 과제로 부여받고 있다”며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역사는 역대 정부가 경제발전을 앞세워 노동권을 억압하고 시장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공공서비스 시장화를 추진한 데 대해 맞서온 저항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노동운동 다룬 첫 통사
전국적 연대와 단결 실천 위주로
“공공부문 노동운동 통큰 단결 필요
공세적 투쟁으로 정부정책 변화를”

1988년부터 노동운동 현장 지켜
민주노총 부설 연구원장 4년 재임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의의는 이런 투쟁을 통해 전체 노동기본권과 복지 공공서비스 확대를 선도해 온 것에 있다”는 그는 최근 공공운수노조가 9월 철도파업에 이어 10월과 11월까지 잇따라 3차례 공동파업에 나서는 것도 바로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갖는 이런 성격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시장근본주의를 앞세워 공공부문 시장화 정책들로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흐름”에서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응당 이에 맞서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논지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때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이제 사회 공공성 확대를 위한 운동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통 큰 단결, 기업별 체제를 넘은 산별노조운동의 강화, 사회연대 운동의 강화, 정규-비정규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의 실천, 공공기관의 조직 운영 혁신 등이다. 동시에 “이제는 수동적 저항투쟁에서 정부 정책 변화를 위한 공세적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나아가 “노동운동은 현안 투쟁을 넘어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 대결 및 고용위기 등 불안정한 사회경제체제를 바꿔내는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87년 이전부터 시작해 근년까지의 노동운동을 총 10장에 걸쳐 연대기적으로 훑은 그의 책에는 논쟁적인 부분도 담겼다. “욕먹을 각오로 썼다”는 책의 9장에 기술한 ‘문재인 정부의 탈시장화 실험 실패’와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그는 저서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책 전환은 민영화∙시장화의 적폐 청산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기대만큼 큰 실망도 안겨주었고, 15년 만에 되살아난 사회적 대화 전략 논의도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실패 및 코로나 위기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 부결로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고 적었다.

“책 출간 뒤 아쉬움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제대로 담지 못한 점”이 이 책의 큰 한계라고 짚은 뒤, “후일 기회가 있으면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통합해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 출간 뒤의 주변 반응을 묻자, 박 전 원장은 “주변에서 어떻게 그 많은 사실을 낱낱이 기록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정책사업을 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자료와 메모 등을 많이 확보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한가지 일화를 전했는데, 자신이 몸담은 공공연맹이나 민주노총이 사무실 청소하는 날이 그에게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는 날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들 “상급조직”에서 청소할 때면 숱한 자료를 버리는데, 이때 챙긴 자료들이 운동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는 귀중한 재료가 됐다는 것이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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