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24일 임시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회계공시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온라인 회의로 비공개 진행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이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노동조합 회계를 공시하기로 했다. ‘노조 자주성 침해’라며 반발해온 양대 노총이 조합비 세액공제 배제로 당장 조합원에게 끼칠 불이익을 고려해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노총은 24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뒤 자료를 내어 “(회계 공시는) 노조 혐오를 부추기고 노조 탄압을 자행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노조 탄압, 혐오 조장을 저지하기 위해 회계 공시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국민의 신뢰 확대”와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공시 참여 결정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앞서 한국노총은 2022년도 결산 결과를 정부의 공시 시스템에 공시하기로 했다고 전날 밝혔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정부가 만든 회계 시스템에 노조와 그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소속 조합원들이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개정된 시행령 시행에 들어갔다.
양대 노총의 이런 결정은 민주노총 설명처럼 조합원에게 당장 끼칠 불이익과 총연맹 이탈을 고려한 것이다. 11월30일까지 2022년도 결산 결과를 공시하지 않은 노조 조합원은 물론 소속 총연맹이 공시하지 않은 곳들의 조합원은 내년 초 이뤄질 연말정산에서 올해 10~12월 3개월치 조합비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동안 노조원은 노조 회계 공시 여부와 무관하게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1천만원 초과분은 30%) 받았다. 저임금 사업장과 비정규직 조합원에겐 세액공제 배제에 따른 체감상 소득 감소가 더 클 수 있다.
이는 곧 노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양대 노총을 움직인 가장 큰 고려 요소로 분석된다. 특히 복수노조 사업장일 경우 조합원들이 세액공제 혜택이 있는 노조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노조 선택권과 단결권의 실질적 보장”이라고 설명해왔다. 노조 선택권이란 미명으로 사실상 ‘노-노 갈등’을 겨냥했단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노조 회계 공시 제도와 조합비 세액공제를 연계한 정부 방침이 노조의 활동 폭을 축소할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간 노동운동은 특수고용직,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연대 활동으로 범위를 넓혀왔는데, 이는 소속 조합원들에겐 직접 와닿지 않는 성격이 짙어 노조 내부 반발이 생길 수 있단 것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공시 항목인 조직사업비엔 노조 미가입자들에 대한 조직 비용, 연대기금 등이 포함돼 있다. 조합원들은 이 사업의 이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반발이 생길 수 있다”며 “결국 노조 활동이 사회 기여보다 소속 조합원의 복지 증진 등에 집중될 수 있다”고 짚었다.
양대 노총의 수용 방침에도 노조 회계 공시는 당분간 법정과 거리에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공시제도 도입 때 국회 심의가 필요한 법률 개정 대신 시행령을 고쳤는데, 상위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소득세법)에 노조 회계 공시 관련 대목이 없는데도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정부가 시행령으로 사실상 강제하는 건 위헌이란 주장이다.
총연맹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은 책임을 산하 노조원에게 씌우는 건 사실상 연좌제로, 자기 고의 과실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성덕 한국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사용자단체엔 회계 공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데도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다. 이는 평등권 침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관련 법 개정을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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