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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또하나의 비극…희귀질환 앓는 반도체 노동자 2세들

등록 2014-11-12 22:24수정 2016-03-22 13:48

[심층 리포트] ‘반도체 아이들’의 눈물(상)
올해 5월 한 사내아이가 경기도 이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30대 초중반 부모가 잉태한 첫아이다. 부모는 ‘반도체 산업역군’이라 불릴 만하다. 청춘을 그곳에 두고 그곳에서 사랑하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하이닉스 하청 노동자로, 이천공장 내 설비 전반을 유지보수한다. 그의 회사는 본래 하이닉스의 일부였으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대 초 분사됐다. 아이의 어머니는 이천공장 반도체 생산직(패키징 오퍼레이터)이었다.

탯줄을 끊고, 오뉴월의 하얀빛을 보고,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상민(이하 모두 가명). 그러나 엄마 품 아닌 서울성모병원에 상민은 도로 눕는다. 병원은 상민에게 ‘선천성 면역결핍증’을 확정진단한다. 아이는 3주에 한번씩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쪽은 <한겨레>에 “부모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했으나 워낙 희귀질환이라 현재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민이네처럼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질환과 다투는 반도체 노동자 가족은 모두 일곱이다. 지난 8월부터 <한겨레>가 찾아나서 겨우 만난 이들이 그렇다. 일곱 가족에겐 공통점이 많았다. 세 가족의 부모 모두 반도체 노동자였고, 네 가족은 엄마만 반도체 산업에서 종사했다. 6쌍이 재직 중 또는 퇴사 직후 임신을 했다. 최소 120가지 안팎의 화학물질과 방사선을 사용하는 반도체 가공·조립 라인에서도 유해물질을 가장 많이 다룬다고 분류되는 포토·박막·증착·몰딩 등의 공정에서 주로 일했다. 그들 누구도 근무 당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교육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부모가 위험에 노출된 순간, 아이가 왔다.

2006년 태어난 지선(9)은 4살에 소아당뇨, 5살에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을 진단받았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이사인 국훈 교수(전남대 의대)는 “유아기의 재생불량성 빈혈은 1년에 50명이 걸릴 정도로 희귀한 병이다. 더욱이 소아당뇨와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을 동시에 앓고 있는 아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연극〈반도체 소녀>의 한 장면
연극〈반도체 소녀>의 한 장면
지선 엄마(28)는 2004~2008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포토공정 오퍼레이터, 아빠(32)는 2004~2011년 아내와 같은 라인의 설비엔지니어였다. 아내가 지선을 임신하던 2005년 아빠는 에스(S)1라인 셋업 업무를 맡고 있었다. 가동 전 신규 설비에 다양한 화학물질을 혼합, 배분, 투입하며 설비를 최적화하는 일이다. 부부 모두 생식독성의 대표적 물질인 시너(벤젠 포함)나 아이피에이(IPA), 시클로헥사논 등 솔벤트류 유기화합물질을 주로 다뤘다고 말한다. 반도체 가공·조립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된 물질이다.

재생불량성 빈혈·소아당뇨 지선
소화기계 이상 대장 들어낸 건우
올봄 태어난 상민이 면역결핍증

선천성 기형·희귀 질환 ‘7가족’
엄마 혹은 부모가 반도체공장서
벤젠 등 위험물질 취급 ‘공통점’

지선의 병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1976년부터 2012년까지 보고된 학계 논문들1)은 벤젠을 비롯한 유기화합물이 태반을 통과해 2세에게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따위 림프조절기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짚는다.

국내 최고로 간주되는 병원의 한 교수(소아청소년과)도 “임신 시기 엄마가 벤젠 등과 같은 유기화학물질에 집중 노출됐을 경우 2세의 재생불량성 빈혈 발병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솔벤트류 유기화합물이 2세의 선천기형, 특히 구강·소화기·비뇨기계 기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외 연구2)도 있다. 공교롭게 장형웅(38)씨의 아들(9)이 거구증, 요도관 기형을 동시에 갖고 태어났다. 아이는 왼쪽 관자놀이뼈도 없다. 장씨는 하이닉스(구미사업장)와 삼성에스디아이(SDI)에서 설비 엔지니어나 생산직으로 일했다. 아내도 하이닉스 구미사업장의 박막 공정 오퍼레이터로 6년 일했다. 전자과 출신인 장씨는 사용물질을 정확히 기억한다. “아내나 저나 솔벤트를 많이 다뤘죠. 아이피에이를 세척액으로 많이 썼지만 위험하다는 얘길 들은 적은 없습니다.” 2009년부터 갑상선암과도 투병 중인 장씨는 지난달 본인의 산재 신청을 했다.

에틸렌글리콜에테르(EGE)도 경계되는 화학물질이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 물질의 사용을 금했으나 한국 산업현장에선 사용 중이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3라인 엔드팹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지영(40)씨가 1992~1999년 일한 곳이다. 한 차례 유산 끝에 2.7㎏ 저체중으로 태어난 이씨의 아들은 이후 중추신경계인 후두엽성 간질3)을 오래 앓았다. 지영씨는 이후 세 차례 더 유산했다. 그가 기억하는 사용물질 중 하나가 에틸렌글리콜에테르다. 임신 기간 동안 에틸렌글리콜에테르에 잠재적으로 가장 높게 노출된 여성노동자의 경우 불임과 자연유산의 위험률이 높아진다는 분석4) 외에 이씨가 제 고통의 연원을 따져볼 재간은 없다. 이씨 후임이었던 남미경(39)씨의 아이도 선천성 심장질환을 지니고 태어났다.

2012년 인공수정으로 한 아이가 잉태됐다. 태명이 ‘튼튼이’다. 임신 두 달도 안 돼 튼튼이를 둘러싼 태반이 암덩어리로 변했다. 융모암이었다. 튼튼이는 사라졌다. 튼튼이의 엄마가 아이를 갖기 전 받은 특수건강검진표에도 엄마가 취급한 물질로 에틸렌글리콜에테르가 기록되어 있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이디에스(EDS·칩 검사) 공정에서 오퍼레이터로 5년간 일했던 김은지(36)씨의 이야기다. 사라진 ‘반도체 2세’의 소식이 이제 겨우 들려오는 셈이다.

1) 식품의약품안전청, ‘벤젠 리스크 프로파일’, 2012; E.G 크녹스, ‘소아암과 대기 발암 물질’, 영국, 2005; BJ 도우티 외, ‘태반을 통과하는 휘발성 유기성분의 이동과 축적’, 미국, 1976

2) S.코디에 외, ‘여성 직장인 노출과 선천성 기형’, 프랑스, 1992

3) 김선희·이정수·박중채·김흥동, ‘소아 후두엽 기시 간질의 임상적 고찰’, 2001

4) R.H. 그레이 외, ‘에틸렌글리콜에테르와 반도체 노동자의 생식건강’, 미국, 1996

오승훈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반도체 2세’ 질환

△선천성 구순기형(거구증)

: 물고기 같은 입모양을 보여 대구증으로도 불림. 지난해 건강보험 적용받는 0살 피부양자 41만4417명 가운데 591명(0.0014%)이 치료받을 만큼 대표적인 희귀 유전 질환. 원인 불명.

△선천성 요로계 기형

: 콩팥에서 생식기로 연결된 요로에 생기는 기형. 선천성 기형의 10% 가량을 차지. 임부의 환경 조건, 유전적 요인, 임신중 화학물질 남용 등이 원인일 수 있음.

△선천성 거대결장

: 장 운동을 담당하는 장관신경절세포와 관련된 질환. 4000~5000명 출생에 1명꼴로 발생. 수술 안 할 경우 장염 등이 진행,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음.

△재생불량성 빈혈

: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모두가 감소하는 조혈 기능 장애질환. 방사선, 벤젠 등에 의한 후천성 재생불량성 빈혈 발생 가능. 발병 빈도에 견줘 선천성은 비교적 드뭄. 15살 이하 100만명당 4.5명꼴.

△소아당뇨병

: 소아청소년기에 발생한 당뇨병을 통상 이름. 소아기에는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는 1형 당뇨병이 가장 흔함.

△선천성 면역결핍증후군

: 10만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성 불치병. 많은 경우 지속적이거나 반복되는 호흡기 감염 등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

△선천성 심장질환

: 심장 기형 및 기능장애. 태아기에 진단되거나 출생 후 수년 뒤 진단되는 경우도 있음. 유전자 변이, 임부의 환경 요인이 원인인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원인 불명.

△후두엽 간질

: 발생 빈도는 낮지 않다고 알려져 있으나 국내에선 보고가 많지 않은 병. 시각적 환각현상이 흔한 증상. 출생시 질식에 의한 뇌손상, 산전 손상, 선천성 기형 등을 원인으로 추정.

자료: 국가건강정보 포털, 국립보건연구원, 국가암정보센터, 서울대학교병원, 희귀난치성 질환센터 누리집

[관련기사]

▷ 갓 태어나 대장 잘라낸 아들…엄마는 둘째 낳기를 포기했다
▷ 2세 선천성 질환 증가추세…정부차원 상세한 조사 필요
▷ 반도체업체 “자료신뢰성 의문…인과성 발견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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