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면서 전국 500곳이 넘는 학교와 유치원이 휴업(휴교)에 들어간 3일 오후 경기도 한 지역 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과 책을 읽고 있다. 이날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았지만 맞벌이 부부의 자녀 등 학교에 나온 학생들은 학교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탓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큽니다. 휴업한 학교도 9일 현재 2208곳에 달하고요. 그런데 한국에는 학생(전체 인구의 12%)보다 더 많은 임금 노동자(전체 인구의 37%)들이 있습니다. 실제 메르스 확진환자 중에는 일하다가 감염된 의사·간호사·간병인·병원 보안요원 등도 있었지요. 이들 역시 노동자입니다.
평소 손을 잘 씻는 등 예방에 주의하고 고열·기침 같은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에 가지 말고 먼저 메르스 핫라인(043-719-7777)·지자체 콜센터(지역번호+120)로 신고하는 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이 궁금합니다. 메르스에 의심되는 증상이라도 있으면 △유급휴가로 쉴 수는 있는지 △휴가를 냈다고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지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메르스 앞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권리와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질의응답 방식으로 써봤습니다.
1. 메르스 자가격리 대상자입니다.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질병으로 인한 유급휴가는 법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관련 규정이 없으면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한겨레신문사의 단체협약을 찾아보니,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부상·질병으로 출근이 불가능하면 6개월, 업무 외 부상·질병으로 7일 이상 출근이 불가능할 경우 1년에 30일 이내의 유급휴가를 준다’고 되어있네요.) 고용노동부는 법적 규정이 없더라도 유급휴가를 주도록 지도하겠다고 지난 8일 밝혔지만, ‘지도’라는 말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급휴가를 적용받지 못해도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연차휴가의 원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감염병으로 인해 몸이 아픈 상황에서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휴가를 내는 상황인데, 연차휴가를 쓰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연차는 연차대로 써야할 사유가 있겠지요. 게다가 메르스로 인한 격리 기간은 최소 2주입니다. 연차를 쓰게 되면, 대부분 소진되는 기간이지요.
7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은 낙타가 격리 생활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노동계는 “질병유급휴가 제도를 법으로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4월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휴가를 신청하면 30일의 병가를 주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유럽 모든 나라와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 145개국에서 질병 휴가 제도가 도입돼 있습니다.”
그러나 10일 정부는 메르스로 자가격리됐던 사람이 신청할 경우 유급·무급 휴가 여부와 관계없이 4인 가구 기준 110만5600원(1인가구 40만9000원, 2인가구 69만6500원, 3인가구 90만1100원, 5인가구 131만200원)을 긴급생계비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적어도 메르스와 관련해서는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이지요. 일단 한 시름 놓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병가 법제화’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2. 메르스 때문에 일을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 있나요?
“법원은 부당 징계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로 ‘사회 통념’을 꼽습니다. 격리대상이나 확진환자의 경우, 회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쉬었다가 징계 등의 불이익을 받으면 ‘부당 징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관련 법 규정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습니다. 이 법률의 제45조 ‘질병자의 근로 금지·제한’ 1항을 보면, ‘사업주는 감염병, 정신병 또는 근로로 인하여 병세가 크게 악화할 우려가 있는 질병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질병에 걸린 자에게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메르스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법의 시행령 때문인데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116조 ‘질병자의 근로금지’ 1항을 보면, ‘사업주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법 제45조제1항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1호에 ‘전염될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사람. 다만,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즉, 메르스의 경우 국가가 전염 예방 조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규칙의 예외조항에 따라 격리대상이나 확진환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격리대상이나 확진환자가 아닐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단순한 증상이나 의심만으로 출근하지 않게 되면 ‘결근’에 해당돼 징계 등의 불이익을 받아도 구제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3. 중동 출장이 예정됐는데 불안해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거절할 수 있을까요?
“중동이나 확진환자가 있는 병원에 출장을 가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병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영업사원들의 경우 일상 업무에서 이런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본인이 메르스 관련 증상이 없고 해당 출장지가 여행이 금지되거나 폐업된 상황이 아니라면 정당한 업무 지시 거절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이 역시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네요.”
4. 메르스 확진환자입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말하는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노동자의 부상·질병·장해·사망입니다.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업무상 연관성이 증명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산재보상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자)’여야 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많은 간병인의 경우, 일하다 메르스에 감염되어 업무상 연관성이 있어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안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감염된 의사·간호사는 업무상 연관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업무로 중동에 출장을 갔다 메르스에 감염돼도 역시 산재 인정이 가능합니다. 다만 중동에 출장을 갔더라도, 회사 사장 등 관리자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던 낙타고기를 먹어 메르스에 감염됐다면 산재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정부의 예방지침 등이 아니라 분명히 회사 사장이나 관리자의 지시가 있어야 합니다. 산재는 업무상 연관성을 따지는 것이니까요.
한편, 병문안이나 가족 간병을 하다 메르스에 감염된 경우도 업무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5. 메르스 탓에 회사가 잠시 문을 닫았습니다. 월급을 받을 수 있나요?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노동자에게 평균임금(직전 3개월간 임금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 수로 나눈 금액)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휴업수당’인데요. 메르스에 대한 학부모 불안 때문에 문을 닫은 유치원, 매출이 떨어져 휴업한 관광·여행·음식숙박업 등의 경우 휴업수당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일 공개한 ‘메르스 관련 지방관서 업무처리 지침’에서 메르스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아 이번 달의 노동시간이 전달보다 20% 이상 줄어들었을 때, 사용자가 지급하는 휴업수당의 일부를 지원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6. 우리 회사에 메르스 확진환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을까요?
“현재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진환자가 다녀간 병원 이름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보건복지부와 메르스 확진환자가 다녔던 회사 정보 공유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확인해 보도한 곳이 아니라면 지금으로서는 회사 이름을 공식적으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회사에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관리인, 경영자, 대표자가 보건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는 아직 이 법률상 감염병으로 지정되지 않았네요.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제4군 감염병에 명시돼 있는 ‘신종감염병증후군’에 메르스를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처벌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도움말: 고용노동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최진수 법규부장(노무사), 법률사무소 새날 권동희 노무사 , 한국노총 조기홍 산업보건실장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