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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면세점엔 안경 쓴 직원이 없다…쇼윈도 노동의 눈물

등록 2018-10-17 04:59수정 2018-10-17 13:50

[쇼윈도 노동의 눈물]
① 공항 면세점 알바의 꾸밈·감정노동

안경 금지, 머리는 묶거나 단발
‘그루밍’ 가이드라인 정해 용모 통제
“예뻐야 하지만 제품보단 덜 예뻐야”

손님 없어도 두손 모은 ‘대기자세’
목 말라도 매장서 물 마시는건 금기
고객 위장 본사 직원이 불시 점검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안경, 면세점에서는 안경 안 돼요. 손님 대하는 일인데 안경은 좀…. 눈이 나쁘면 렌즈 끼세요. 다들 그렇게 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의 한 화장품 매장으로 출근이 결정된 뒤, 공항 1층 입국장의 한 카페에서 매장 정직원인 선배님(면세점에서는 선임을 선배님으로 부른다)과 처음 만났다. 선배님의 첫마디는 “안경 금지”였다. 다음은 화장이었다. “지금처럼 하면 안 돼요. 우리는 화장품 매장이잖아. 더 과감하게 하세요. 눈은 더 진하게 칠하고 볼터치도 꼭 하고. 립스틱도 더 선명한 색으로. 그렇다고 또 너무 진하게 하지는 말고. 우리는 색조 아니고 기초니까.” 다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머리 색깔은 그 정도 갈색은 괜찮아요. 근데 길이가 애매하다. 묶거나 아예 단발로 자르세요. 묶을 거면 머리끈은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만 돼요. 유니폼은 회사에서 줄 텐데, 검정 무광 단화에 커피색 스타킹 신으세요.”

이 모든 것은 ‘본사의 방침’이라고 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시키는 게 아니라 회사가 정한 ‘그루밍 가이드라인’이에요. 이거 말고도 지켜야 할 게 더 있는데 나머지는 일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줄게.” 한시간에 걸친 선배님의 사전 교육이 끝나자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거지?’

공항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공항을 찾는 사람들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꼭 찾는 면세점도 밤새 불을 밝힌다. 면세점의 화려한 조명 밑에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도 24시간 예쁘게 꾸민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이달 초 일주일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의 한 화장품 매장에 파견직 아르바이트로 일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판매직 노동자들은 겉보기에는 예쁘고 빛났지만 몸과 마음은 아팠다.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은 매장 밖에서는 고객에 눈에 잘 띄어서는 안된다. 우는 것도 쉬는 것도, 간단하게 화장을 고치는 일도 창고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은 매장 밖에서는 고객에 눈에 잘 띄어서는 안된다. 우는 것도 쉬는 것도, 간단하게 화장을 고치는 일도 창고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 예쁘게 꾸며야 하지만 상품보다 빛나면 안 돼

외모에 대한 압박은 공항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시작됐다. 면세점 취업은 서류 제출과 전화 면접만으로 결정됐다. 첫 출근 전까지 공항에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일하기로 한 매장의 정규직 선배님은 “면세점 본사와 상견례를 해야 한다”며 공항에 한번 오라고 했다. 면세점 본사 과장, 정규직 선배님, 신입 알바 두 명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라고 했다. 상견례가 있던 날 아침 10시30분, 공항버스를 타러 나가려던 참에 선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식 출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차려입고 와줘요.” 입고 가려던 청바지를 옷장 속에 넣고 짙은 회색 슬랙스로 갈아입었다.

오후 4시30분, 인천공항에 있는 면세점 본사 사무실 미팅룸에서 상견례가 시작됐다. 본사 과장을 보자마자 선배님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은 노란 원피스를 입고 온 옆자리 알바 직원을 가리키며 “죄송합니다. 근무 때는 제대로 갖춰 입도록 단속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과장은 선배님 말에 답하지 않고 ‘노란 원피스’를 찬찬히 훑어봤다. “팔다리에 문신이 있네요?” 과장이 말하자 선배님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유니폼이 긴팔, 긴바지라 충분히 가려집니다.” 노란 원피스 언니는 문신이 그려진 오른쪽 팔뚝을 왼손으로 붙잡으며 몸을 웅크렸다. 본사 과장은 다음으로 기자의 옷차림을 훑었다. 옷을 갈아입은 덕분일까,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았다.

상견례는 무사히 넘겼지만 근무가 시작된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용모 지적’을 받았다. 특히 화장과 관련된 지적이 수시로 이어졌다. 일하다 화장이 지워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수정화장을 하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 지시를 받으면 매장 벽면에 설치된 화장품 브랜드의 광고판을 열었다. 벽면에 설치된 이 광고판은 사실 ‘소창고’로 들어가는 문이다. 소창고는 원래 매장 판매품 재고와 업무용 비품을 쌓아두는 곳이지만, 직원들은 ‘간이 파우더룸’으로도 이용했다. 상품 더미 사이 손거울을 세워두고 화장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일은 일상이었다.

화장 때문에 잠자는 시간도 빼앗겼다. 면세점 판매직원들은 ‘시에이(CA) 근무’를 일상적으로 소화해야 한다. 밤 9시30분 매장을 마감하는 ‘시’(C)조 근무를 한 뒤에 다음날 바로 이어진 아침 6시30분에 매장을 오픈(A조)하는 근무 스케줄이다. 이렇게 근무해야 하는 날엔 서너시간밖에 잘 수 없다. 그나마 그 시간을 쪼개 30분 가까이 거울 앞에 앉아야만 했다. 면세점 근무 첫날과 이튿날 ‘시에이 근무’였다. 둘째 날 새벽, 3시간 반쯤 자고 새벽 4시께 일어나 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반짝이는 아이섀도까지 ‘풀 메이크업’을 하고 4시15분 집을 나섰다. 면세점에서 꾸밈이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노동의 일부였다.

면세점이나 명품 브랜드 본사가 직원들의 용모를 통제하기 위해 정해둔 ‘그루밍 가이드라인’에는 직원들이 일하면서 갖춰야 할 머리 모양과 화장법, 유니폼 착용법 등이 담겨 있다. ‘그루밍’(grooming)이란 ‘몸단장’이라는 뜻의 영어단어다. <한겨레>가 입수한 ○○면세점의 ‘용모복장 규정’을 보면, 머리가 긴 직원들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없이 ‘포니테일 스타일’로만 묶어야 하고 부분 염색이나 지나치게 밝은 염색은 할 수 없다. 액세서리는 간소한 디자인으로 1개만 착용할 수 있고 ‘피어싱은 절대 금지’다. 본사 직원들이 3일에 한번씩 매장을 돌면서 용모를 체크하고 규정에서 어긋난 부분을 지적한다.

본사가 직원들의 용모를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는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색조화장품 브랜드 직원이 화려한 화장을, 기초화장품 브랜드 직원이 생기 있는 화장을 해야 한다면, 가방이나 구두류를 판매하는 직원은 수수한 화장을 해야 한다. 한 명품 브랜드에서 15년째 근무하는 ㅈ(42)씨는 “우리 브랜드는 직원들에게 손톱도 짧게 유지하라고 하고 네일아트도 못 받게 한다. 염색도 할 수 없고 장신구 착용도 금지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직원이 상품보다 빛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면세점 직원들은 무조건 예뻐야 하지만 상품보다 예쁘면 안 된다.

내년 설치 예정인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예정 부지.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내년 설치 예정인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면세점 예정 부지.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안경? 치아교정기? “본사 컨펌이 필요합니다”

선배님은 면세점에서 안경을 쓸 수 없는 것도 “그루밍 가이드라인 때문”이라고 했다. “안경을 쓰는 건 규정에 어긋나요. 안경을 쓰려면 렌즈를 낄 수 없는 눈 상태를 본사에 소명하고 차장님 컨펌을 받아야 해요. 안경은 그냥 못 쓴다고 생각하면 돼요.” 0.1~0.2 정도의 시력이라 안경 없이는 화장품 통에 적힌 제품명, 품번, 용량 등을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일회용 콘택트렌즈를 착용해 봤다.

렌즈를 낀 눈은 첫날부터 아팠다. 면세점에 들어온 지 두 시간쯤 지나자 눈이 뻑뻑해졌다. 눈에 속눈썹이 붙은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졌다. 자꾸 눈을 감게 됐고, 두 손은 자꾸 눈으로 향했다. 선배님은 묻지도 않고 말했다. “눈 많이 아프지? 생수, 인공눈물, 미스트, 여기서 렌즈 끼고 일하려면 세가지는 필수야. 물은 빵집에서 사면 되고 빵집 옆에 약국 있으니까 물 사면서 인공눈물도 사와요.”

9시30분 매장 마감 뒤 정산과 보안검색을 마치고 보호구역을 빠져나오니 밤 9시50분이었다. 다음날 새벽 출근이라 한시라도 빨리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했지만, 화장실에 가서 렌즈를 빼는 것이 더 급했다. 손을 씻고 렌즈를 빼자 렌즈의 가장자리가 닿았던 부분을 따라 눈동자 주변에 빨간 실핏줄이 돋아 있었다. 이튿날 새벽 3시50분, 출근 준비를 하며 다시 렌즈를 밀어 넣었다. 시리고 아프더니 뿌옇게 시야가 흐려지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안구건조증 증상이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한 색조화장품 매장에서 7년째 근무 중인 조아인(가명·27)씨도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안구건조증이 생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결막염도 앓는다고 했다. “중학생 때부터 콘택트렌즈를 쓰긴 했는데 면세점에서 일하면서 눈 질환이 생겼어요. 렌즈를 착용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까요.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공항의 환경이 원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조씨는 “라식수술을 생각하는 언니들이 많다”고 했다.

박수빈(가명·31)씨가 그런 경우였다. 박씨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한 기초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다 지난봄 퇴사를 하고 라식수술을 받았다. “면세점 출근 하루 전날, 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안경을 쓰면 안 된다고. 그래서 렌즈를 사서 끼고 일을 했는데 양쪽 눈 전체가 시뻘게졌어요. 참다 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퇴사하고 눈을 치료받으면서 박씨는 라식수술까지 받았다. 면세점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중국동포인 박씨는 공장 노동과 식당 서빙을 거쳐 면세점에 왔다. ‘더는 다치는 일을 하기 싫어서’ 수술까지 받은 셈이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운현하늘빌딩에 문을 연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율곡로 운현하늘빌딩에 문을 연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내 몸, 내 마음이 아픈 건 중요하지 않아”

면세점 판매직원이 지켜야 할 것은 외모만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의 자세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유지해야 했다.

면세점 근무 닷새째가 되자 허리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첫날엔 발만 아팠는데 이날은 허리까지 아팠다. 두 손이 저절로 등 뒤로 갔다. 뒷짐을 지고 허리를 받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아픈 허리를 달래던 중에, 한 부부가 매장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면세점 본사가 시킨 2단계 인사를 손님에게 건넸다. 부부는 제품을 둘러보다 나갔다. 부부가 화장품 매장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자 선배님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민영씨, 잠깐 이리 와봐요.”

선배님은 “미처 알려주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대기자세’라는 것도 있어요. 손님이 없어도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대기자세’라고 해. 뒷짐 지면 절대 안 되고 손은 무조건 앞으로 모으고 있어야 해요. 허리 아프다고 기둥이나 벽에 기대고 있어도 안 되고 아무리 목이 말라도 매장에서 물 마시는 건 금기사항이야.”

선배님이 꾸밈과 자세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꼭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나와 둘이 근무할 때는 어떤 모습으로 있건 정말 괜찮아요. 근데 내가 자꾸 이런저런 지적을 하는 이유는 브랜드 본사에서 한번씩 나와서 점검을 하기 때문이야. 그때 실수하지 말라고 자꾸 말해주는 거야.”

이런 설명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국내 한 면세점 제주점이 입점 매장에 배포한 ‘2018 모니터링 세부항목’을 보면 맨 위에 적힌 내용이 ‘대기자세’와 ‘용모 및 복장’이었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10년 전후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판매직원들은 “모니터링에서 제대로 점수를 못 받으면 본사의 고객만족(CS) 교육을 다시 받으며 그루밍과 태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본사는 이러한 사항을 체크하려고 매장에 ‘미스터리 쇼퍼’(MS)를 보낸다. 미스터리 쇼퍼란 고객처럼 위장한 본사 직원이다. 이들은 손님처럼 매장에서 직접 물건을 사는데, 대기자세를 취하고 있던 매장 직원이 처음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물건을 파는 말솜씨, 항의에 대처하는 방식과 배웅 인사까지 모든 과정을 녹취한다. 직원들은 이 손님이 진짜 손님인지 본사 직원인지 알 길이 없다. 유난히 까다로운 손님이 한명 왔다 가면 직원들은 불안해진다. 시내 면세점에서 일하는 ㅎ(32)씨는 “상·하반기에 한번씩 미스터리 쇼퍼가 왔다 가는데, 기준에서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당장 본사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고 했다.

대기자세를 지적한 선배님은 곧바로 ‘목소리도 한톤 높이라’고 주문했다. “좀 전에 손님한테 인사할 때도 목소리가 너무 낮더라. 특히 목소리는 전화 받을 때 더 신경 써야 해. 아무 생각 없이 ‘여보세요’ 했는데 본사 차장님이면 어떡해. 내가 기분이 좀 안 좋고 컨디션이 별로여도, 일할 때는 웬만하면 목소리는 높은 톤으로.” 한참 설명을 하던 선배님은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니까 이 일을 하면서 내 몸 아픈 거랑 내 기분 안 좋은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아무리 힘들어도 늘 예뻐야 하고 늘 밝게 웃고 있어야 해. 그러니까 우리보고 ‘감정노동자’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따르릉’ 매장 전화기가 울렸다. “네 안녕하십니까, ○○면세점 □□화장품 코너입니다.” 조금 전 한숨 소리는 찾아볼 수 없게 밝은 목소리였다. 그렇게 선배님은 다시 일상을 이어갔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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