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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감시는 첩첩, 휴식은 투명인간처럼…눈물 닦아주는 이 없다

등록 2018-10-22 05:00수정 2018-10-22 15:48

[쇼윈도 노동의 눈물]
③ 눈칫밥에 숨통 막히는 면세점 판매직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계단이나 창고 등에서 ‘숨어서’ 쉰다. 매장에서는 벽에 등을 기대기조차 어렵고, 휴게실은 너무 좁거나 멀어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계단이나 창고 등에서 ‘숨어서’ 쉰다. 매장에서는 벽에 등을 기대기조차 어렵고, 휴게실은 너무 좁거나 멀어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은 사방에서 주는 ‘눈칫밥’을 먹으며 산다. 대형 백화점을 거느린 면세점 본사와 화장품·가방·의류 등 브랜드 본사는 매출과 꾸밈, 말투 등 수많은 항목을 놓고 전방위적 압박을 한다. 면세점 입점에 페널티를 줄 수 있는 공항공사는 판매 노동자의 휴식권·자세 등을 평가해 이들 본사에 ‘레드카드’를 날린다. 면세점 입찰에 목숨을 건 본사는, 이 경고를 고스란히 판매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지시하고 지적하는 ‘갑’은 첩첩인데,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많지 않다. 판매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매장 동료들에게 의지하며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갑’ 중의 ‘갑’은 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공항공사)는 면세점의 입찰계약과 관련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갑 중의 갑’이다. 판매 노동자의 생살여탈권을 쥔 면세점과 입점 브랜드의 본사도 공항공사 앞에서는 ‘을’이 된다. 이 때문에 판매 노동자들이 공항 면세점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이는 공항공사 직원들이다.

면세점 판매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공항공사 쪽과 부닥치는 순간은 휴식시간이다. 판매 노동자들은 상주직원 전용 휴게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탑승구 쪽에 마련된 의자 등에서 쉬게 마련이지만, 공항공사 직원들은 이를 수시로 적발한다. 공항 안에 설치된 의자와 화장실, 편의시설 등은 기본적으로 ‘이용객’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기자가 지난 2일부터 일주일 동안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판매 노동자로 일했을 때도 같은 매장 ‘선배님’은 “혹시 탑승구에서 쉴 때면 언제나 바른 자세로 있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12년째 일하는 최아무개(41)씨도 “탑승구에서 쉴 때 신발을 벗거나 다리를 뻗고 있으면 안 된다. 심할 땐 그냥 앉아만 있어도 공항공사 직원이 소속 이름을 적어 가 본사 쪽에 경고하곤 한다”고 했다. 최씨는 “공항공사가 직원 휴게실을 충분히 만들어놓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데, 직원들은 면세점 본사와 브랜드 본사 외에 공항공사 눈치까지 보게 된다”고 푸념했다.

■ 고객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쉼터

판매 노동자들은 매장 밖에서는 고객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다. <한겨레>가 입수한 한 대형 백화점의 근무 수칙에는 ‘고객 시설물 사용 금지’라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이 근무 수칙에는 ‘고객 시설물’(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고객용 화장실, 고객용 휴게실, 주차장) 사용 금지(단, 고객 동행 시 가능)’라고 설명돼 있다. 백화점에서 일한 지 10년이 됐다는 한 판매 노동자는 “고객용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거나,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백화점 담당자들이 매장으로 찾아와서 지적한다. 그런 이유로 혼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갑들의 눈
면세점 본사·브랜드 본사는
매출·꾸밈·말투 등 깨알 관리
‘갑 중의 갑’인 공항공사는
쉬는 자세까지 평가해 본사 통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휴식
직원 휴게공간 태부족한데다
고객시설 이용하면 적발당해
창고·계단 등 구석 숨어 한숨 돌려

억울해도 내편은 없다
진상고객 행패와 폭언에도
본사는 판매직원 보호하긴커녕
책임·사후수습 되레 떠넘겨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매 노동자들은 면세점과 백화점 구석으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 시내 면세점에서 일하는 홍아무개(42)씨는 “판매 노동자들이 쉴 때는 고객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 직원들 동선에서 쉬어야 한다. 창고나 비상계단, 로커룸 바닥처럼 고객의 눈이 닿지 않는 허름한 곳에 박스나 자리를 깔아놓고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엘리베이터 역시 직원용과 고객용이 구분돼 있다. 매장 중앙에 놓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매장에서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오가는 짧은 거리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손에 무언가를 들어서는 안 된다. 시내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 심아무개씨는 “면세점 안을 이동할 때 손에 개인 소지품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 안 된다. 가령 점심을 먹은 뒤에 커피를 손에 들고 매장에 오거나 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된다”고 말했다.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계단이나 창고 등에서 ‘숨어서’ 쉰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계단이나 창고 등에서 ‘숨어서’ 쉰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 협력업체 직원 면접까지 보는 면세점

판매 노동자에게 업무상 지시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원칙적으로 고용주인 파견업체에 있다. 하지만 면세점 본사는 주어지지 않은 권한을 행사했다. 예를 들면, 근무가 시작되기 전 면세점 본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던 ‘상견례’는 면접 아닌 면접이었다. 판매 노동자들은 대개 브랜드 본사 또는 이들한테 인력을 파견하는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다.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파견업체와 면접을 보고 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면세점 본사는 ‘상견례’나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어색한 이름으로 판매 노동자를 사전에 면접하고 관리했다. 기자가 면세점에서 일하기 전 면세점 본사와 매장 정규직, 신입 아르바이트생이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도 면세점 본사 직원은 새로 일할 직원들의 용모를 점검했다. 에스티로더 노동조합의 이병권 위원장은 “이런 식으로 백화점, 면세점 본사가 협력업체 직원이 출근하기도 전부터 면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외모나 치장 상태, 말투 등이 자신들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근무지를 옮기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판매 노동자는 자신이 소속된 협력업체와 브랜드, 백화점 쪽의 눈치를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 이 때문에 판매 노동자들은 권리가 주어져도 그게 자신의 것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 유명 백화점의 각 매장에는 직원용 의자가 배치됐고 직원이 의자에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벽보도 붙었다. 하지만 정작 의자에 앉아야 할 판매 노동자들은 반신반의하며 서서 근무하고 있다. 정경윤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은 “그동안 손님이 없을 때도 두 손을 모은 대기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교육을 본사, 브랜드 등에서 수시로 받은 터라 의자에 앉아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노동자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쉬는 판매 노동자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서’ 쉬는 판매 노동자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 시키는 것은 많지만, 보호해주는 이는 없다

감시의 눈은 많은데, 이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른바 ‘진상 고객’이 매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본사는 직원 편이 아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판매 노동자들의 ‘고객 응대 피해 사례’를 보면, 판매 현장에서 갈등이 벌어졌을 때 백화점 등이 판매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긴 사례가 여럿 나온다. 한 유명 백화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제품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 때문에 생돈을 떼인 적이 있다고 했다. 한 손님이 향수 환불을 요구해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버렸다”고 답했다. 결제 내역을 어렵게 확인해 신용카드 결제를 취소해줬다. 그러자 그 손님은 “현금으로 달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선물받은 향수를 현금으로 바꾸려는 속셈이었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백화점 담당 직원이 내려왔지만 항의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백화점 쪽은 판매 노동자 김씨에게 향수 가격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구매해 손님에게 주라고 했다. 고객의 요구를 잘 알아보지 않고 결제를 취소했으니 그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이미 결제가 취소된 향수는 환불 처리돼 재고로 입고됐다.

김명신 ‘엘브이엠에이치’(LVMH·루이비통 모에 에네시)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백화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거부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고객이 폭언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폭언하는 고객의 요구를 거부한 다음 백화점 관계자가 ‘왜 그랬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최민영 정환봉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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