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펴낸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에 실린 이미지 갈무리. <한겨레> 자료 사진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펴낸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에서는 한국의 감정노동자를 560만~74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 1829만6천명의 31~41%가 감정노동자인 셈이다.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면세점·백화점 판매직원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자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호소해왔고, 결국 지난 18일부터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처’를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추가한 것이다. 이번에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 2를 보면,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하여 고객 응대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조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매직 노동자 등은 고객에게 폭언이나 정신적 피해를 당했을 경우 사업주에게 업무 중단 등을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가 이런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면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벌칙 조항도 생겼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보호 법안이지만, 첫술에 배부르긴 어려워 보인다. 고객의 폭언 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많다. 강제성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게시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도 사업주를 처벌할 벌칙 규정은 없다. 사업주 처벌은 오로지 고객 응대 피해로 ‘업무 중단’ 요청을 한 노동자에게 부당한 인사조처를 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또 감정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원청’은 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계단이나 창고 등에서 ‘숨어서’ 쉰다. 매장에서는 벽에 등을 기대기조차 어렵고, 휴게실은 너무 좁거나 멀어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박경수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법률원장은 “정부는 사업주가 시혜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길 바라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 시정 요구에 사업주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성종 감정노동 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도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매장은 직원의 90%가 협력업체나 납품업체 소속이지만 ‘감정노동자 보호법’에는 원청에 대한 의무사항이 없다. 법 시행 뒤에도 감정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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