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전종휘 ㅣ 사회에디터
40대 후반 김아무개씨는 경북 영천채신공단에 있는 차량용 에어백 제조회사 다이셀세이프티시스템즈코리아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 에어백 자동화 공정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게 그의 업무다. 1주일마다 주간조와 야간조를 번갈아가며 맡는다. 하루 8시간 기본근무에 대개 4시간 연장근무를 한다. 그가 올해 받는 시급은 7706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시급 8720원에 한참 모자란다. 김씨가 기본급 450%를 열두달에 걸쳐 나눠 받는 상여금은 기본급과 함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산입 대상에 들어간다. 이를 합하면 회사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김씨가 2018년 입사할 때 받은 시급은 7530원이었다. 그해 최저임금 시급과 같은 금액이다. 그땐 상여율도 지금보다 많은 600%였다. 최저임금 시급이 1190원 인상되는 3년 동안 회사 시급은 176원 오르고, 상여율은 150%포인트가 깎인 셈이다. 김씨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회사는 2018년 16.4% 오른 최저임금이 이듬해엔 10.9% 오르는 것으로 결정되자 2019년부터 적용되는 임금체계 관련 취업규칙을 바꿨다. 시급은 아주 조금 올리고 상여율은 되레 깎았다. 대신 그 전엔 1년에 여섯차례 나눠 주던 상여금을 열두달로 나눠 월급날마다 함께 지급했다. 노동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전과는 달리 2019년부터 매달 정기적이고 고정적으로 주는 상여금과 각종 복리후생 성격의 임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는 것으로 2018년에 최저임금법이 바뀐 탓이다. 매달 주는 상여금은 기본급과 함께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를 하면 주는 가산수당을 계산할 때 모수가 되는 통상임금에 해당하는데, 회사는 이 통상임금이 올랐기 때문에 바뀐 취업규칙으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입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통상임금 판정의 걸림돌이던 근속 기간 등 까다로운 조건도 없앴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노동자 17명은 회사의 이런 조처가 최저임금 인상을 피하려는 꼼수에서 나왔을 뿐이라고 봤다. 이들은 회사와 맺은 근로계약서에는 여전히 상여율이 600%로 돼 있는 만큼 회사가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150%의 상여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대구지법 김성수 판사는 지난 27일 의미 있는 판결을 내놨다. 상여율 축소는 그 자체로 노동자들한테 불리한 내용으로 봐야 하고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액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임금인상을 억제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던 것이지, 근로자들에게 상여금 지급률 축소에 따른 대가를 보전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들 노동자한테 2019∼20년 2년치 밀린 임금 8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또 이들 노동자가 소속되지 않은 기업노조와 회사가 상여율 450%로 맺은 단체협약의 효력이 600%로 적힌 근로계약서에 우선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노동조합법은) 단협보다 불리한 내용의 근로계약에 한해 이를 무효로 하겠다는 취지”라며 단협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법률상 무효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이는 단협과 근로계약서의 효력을 다툰 보기 드문 판결이다.
김씨 사례는 2024년까지 계속 확대되는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 실제 현장에선 어떤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하고 되레 실질임금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씨는 영천채신공단에 있는 상당수 업체가 상여금 조정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한다. 다른 노동자들도 임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 법원으로 달려가야 하는가.
다시 최저임금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18일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부터 2022년치 최저임금을 두고 노동계의 “1만원 이상으로 인상” 요구안과 사용자 쪽의 “동결” 요구안이 맞부딪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결정하는 마지막 최저임금이다. 적정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중요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터다. 이에 못잖게 노동 현장의 불법을 용인하지 않는 적극적인 행정도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이제라도 최저임금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여 실태를 공개하고 시정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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