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지난 13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다. 줌 화면 갈무리
신문 오피니언면에는 수많은 의견이 오간다. 여러 칼럼이나 기고를 통해 사회 현상이나 정책 등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언론의 주요 역할인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위한 지면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13일 오후 4시 온라인으로 진행된 9기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오피니언면을 집중 검토했다. 이날 회의에는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보림 위원(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임자운 위원(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홍윤희 위원(장애인 이동권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이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과 정은주 콘텐츠총괄,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요즘 언론계에서는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의 영어 첫 글자를 딴 디이아이(DEI)가 화두가 되고 있다. 언론인들이 인구학적으로 다양해야 콘텐츠 다양성도 구현되고 공정성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비비시>(BBC)는 콘텐츠 출연자의 성비를 50 대 50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미국 <뉴욕 타임스> 역시 경영진에 여성을 많이 기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겨레 오피니언 필진의 인구학적 다양성을 살펴봤다. 처음에는 나이와 직업, 지역까지 다 분류해보려 했지만, 일이 많아져서 우선 성비 위주로 분석을 해봤다.
한겨레 누리집 오피니언난을 보면 기명 연재 칼럼 필진 40명이 나오는데, 그중에 11명이 여성이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주요 현안을 명쾌하게 진단하는 시사 칼럼’이라는 설명이 붙은 외부 필진 칼럼
‘세상읽기’는 20명 중 6명이 여성이라 여전히 남성 위주였다.
‘세계의 창’이라는 국외 필진 칼럼은 5명 중 여성이 1명이고 인종별로 보면 백인 3명, 아시아인 2명이다. 문화, 출판 관련 내용을 다루는
‘크리틱’은 4명 중 1명이 여성이다. 지금까지 말한 칼럼은 남성 위주였지만,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다.
‘서울 말고’는 6명 전원이 여성이고,
‘숨&결’과
‘삶의 창’은 5 대 5로 구성돼 있다. 다른 언론사 칼럼이 대부분 남성 필진 위주인 것에 견주면 한겨레의 외부 필진의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반면 내부 필진은 사정이 좀 달랐다. 논설위원이 주로 쓰는
‘유레카’는 12명 중 1명만 여성이었고,
‘아침햇발’ 역시 9명 중에 여성은 1명뿐이었다.
‘한겨레 프리즘’은 6명 중 1명만 여성이고 ‘말 거는 한겨레’도 4명 중 1명만 여성이다. 이처럼 내부 필진이 남성 위주로 구성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부분을 이후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황세원 모든 필진이 공식적인 직함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주로 하는 일과 관련한 칼럼을 쓸 때는 필진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진이 이해관계자인지 아닌지 독자가 알아야 오해나 왜곡 없이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의 일부 칼럼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칼럼 중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는 것은 한겨레 젊은 기자들이 쓰는
‘슬기로운 기자생활’이다. 독자들이 미디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한겨레S는 외부 필진이 많은데 기사와 다름없는 정보성 글도 있고,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칼럼도 있다. 칼럼인지, 기사인지 때로는 읽다가 헷갈릴 때도 있어서 글의 성격에 따라 구분을 해주면 좋겠다.
홍윤희 최근 칼럼
‘너도 늙는다’에서 김은형 에디터가 대구·경북 지역의 <매일신문>이 지난 7월 발표한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을 쓴 60대 이순자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노년에 각종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적은 글이 당선된 것인데 김 에디터가 칼럼 필자로 섭외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알아봤더니 이순자씨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실제로 이순자씨와 같은 분들을 칼럼 필진으로 섭외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녀, 인종적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계층이나 연령의 다양성도 확보해주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홍은전 작가의 칼럼을 좋아하는데, 기사 분량의 제약 탓인지 글이 함축적이다. 그래서 처음 읽는 독자는 다가가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보면 필진 사진과 글만 칼럼에 싣는데, 글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 등이 들어가면 가독성이 더 좋을 것 같다.
김경미 정치나 경제 같은 이슈는 남성 필진이, 문화 쪽은 여성 필진이 많은 느낌이다. 전체적인 다양성뿐 아니라 분야별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경제, 외교, 안보 쪽에는 여성 필진이 많이 없다. 한겨레에서 필진 발굴에 더 노력하면 좋겠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교수 필진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종전 선언 같은 경우 교수의 글도 의미가 있겠지만,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등 시민사회 영역에도 역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 방향으로도 필진을 넓혀보면 어떨까 한다.
임자운 한겨레가 필진 구성의 다양성을 많이 고민한다는 생각을 한다. 환경이나 지역 등 이슈도 그렇고 필진의 직업도 비교적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다만 필진이 더 젊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기명 칼럼을 쓰는 사람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청년 돌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조기현 작가 정도다. 10대가 자신이 경험한 학교 교육의 문제를 쓰는 칼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또 경험적 칼럼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학자의 현학적인 이야기나 개념적인 글보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인사이트를 던지는 글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같은 느낌의 외부 필진의 글이 무게 있게 지면에 실리면 좋겠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한겨레에서 필진과 칼럼 게재를 두고 갈등이 있었던 적이 몇차례 있었다. 한겨레가 자신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칼럼을 게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필진에게 제대로 안내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칼럼이지만 한겨레와 맞지 않으면 수정이나 보완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게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필진에게 사전에 제대로 안내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칼럼의 분량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필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글들이 종종 있다. 지면은 한계가 있겠지만 온라인에는 맥락이 모두 살아 있는 풍성한 글을 실어주면 어떨까 한다.
김보림 다른 언론사의 경우 교수 정도가 아니면 글을 잘 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는 그래도 특별한 자격을 따지지 않고 글을 많이 실어주는 매체다. 그런 차원에서 한겨레가 칼럼니스트를 뽑는 ‘한칼’ 공모가 반가웠다. 한칼처럼 한겨레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계속해달라. 최근 본 칼럼 중에서는
‘기후위기에 배임죄를 물을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의 글이 좋았다. 언론이 기후위기를 다루면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잘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잘 짚어줬다.
김민정 누리집에 일부 칼럼들은 따로 카테고리가 안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 귀농한 모자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엄마아들 귀농서신’은 신선했고, 50대 성소수자가 쓰는
‘김비의 달려라 50호’ 같은 칼럼은 한겨레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된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라영의 비평’의 경우 여성주의적 시각을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도 잘 보고 있다. 이렇게 꼽아보면 다양성을 보여주는 필진이 꽤 많은데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서 아쉽다. 한겨레의 특징적 칼럼인
‘말 거는 한겨레’와
‘저널리즘책무실 칼럼’도 좋다. 요즘 언론계 화두 중 하나가 독자와 대화하고 연결하는 것인데, 그런 시도를 한겨레에서 선도적으로 하는 것 같다.
김경미 ‘슬기로운 기자생활’을 꼬박 챙겨본다. 뉴스룸의 세대 갈등을 다룬 칼럼이 많은데, 지인들도 많이 읽고 공유해주곤 한다. 왜 잘 읽혔는지 생각해보면, 다른 조직에서도 이런 세대 갈등이 있기 때문 아닐까 한다. 대부분은 세대 갈등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인식하기 마련인데, 그걸 ‘슬기로운 기자생활’이 구체적으로 짚어주기에 공감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전두환 사망 이후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이 쓴
‘전두환에게 학살자라는 제목을 달며’라는 칼럼도 좋았다. 신문에 학살자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해줘 궁금한 점이 많이 풀렸다. 나중에 사료적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는 글이 아닐까 한다.
홍윤희 지난 10월에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가
탈시설이 답이 아니라는 ‘왜냐면’ 기고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탈시설은 장애계 내에서도 첨예한 이슈지만 결과적으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겨레도 탈시설과 관련한 기사를 많이 썼다. 이렇게 첨예한 쟁점에 대한 기고를 실을 때 반대편 쪽 의견도 함께 소개해주면 좋았겠다.
권태호 한칼은 지난 2월에 공모를 받았는데 450여명이 지원했고 그중 24명을 선발했다. 짧게 썼던 분들도 있고 지금도 계속 쓰시는 분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는데, 최종 선발된 필진의 성비는 남성 7명, 여성 17명으로 여성 필진이 더 많았다. 다만 유레카나 아침햇발 같은 경우는 논설위원들이 주로 쓰는데 지금 논설위원 중에 여성이 1명뿐이라서 성비 불균형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만큼 교수들이 신문 지면에 많이 등장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업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하겠다. 탈시설 관련 글은 저도 보고 공감했다. 한겨레가 그동안 탈시설을 주장해왔는데, 다른 측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탈시설이 필요하다는 분의 반론을 다시 싣고는 하는데, 그렇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오피니언과 관련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차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는 고민이 있다. 현재 한겨레에서는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그것이 혐오 발언으로 보일 때는 제어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공감대는 있다. 다만 어디까지가 혐오·차별 발언이냐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은 없다. 이런 고민들을 바탕으로 더 개선해보도록 하겠다.
정은주 프리즘은 팀장, 편집국에서는 부장, 말 거는 한겨레는 부국장이 쓰는데 점검을 해서 균형을 맞추도록 해보겠다. 다양성 부분은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한칼 공모와 같은 방식으로 더 노력하겠다. 오피니언면에서 한겨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반대 의견을 충분히 담자는 기조로 가고 있다. 누리집에서 오피니언 부분이 친절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동감한다. 보완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