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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포스터’ 사진이 ‘인생짤’입니다”

등록 2017-12-18 19:34수정 2017-12-18 21:02

【짬】 정치인 사진 전문가 송현권 국장

송현권 더불어민주당 홍보국 국장이 2002년 11월 대통령선거 유세에 나선 노무현 후보가 문재인 부산 선거대책본부장과 함께 부산 수정시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사진을 들어 보이며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맨 위 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포스터 사진이 그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송현권 더불어민주당 홍보국 국장이 2002년 11월 대통령선거 유세에 나선 노무현 후보가 문재인 부산 선거대책본부장과 함께 부산 수정시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사진을 들어 보이며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설명하고 있다. 맨 위 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포스터 사진이 그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정가에선 이따금 “이미지 정치 하지 마라”는 공방이 오가곤 한다. 이는 상대가 긍정적 이미지를 선점했음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에는 특정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큰 구실을 한다.

1985년 신한민주당(신민당)이 전두환 신군부가 장악한 독재의 동토에 야당 바람을 일으킨 ‘2·12 총선’ 때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더불어민주당 홍보국 송현권 국장은 ‘정치인 사진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연말로 정년퇴임을 하고 인생 2막을 준비중인 그를 만났다.

1985년 ‘2·12 총선’ 신민당과 인연
32년째 민주당 정치현장 사진 기록
“당보 ‘민주전선’ 대안언론 구실 뿌듯”
디제이 정부 청와대에서 ‘하루’ 근무

연말 더불어민주당 홍보국 정년퇴임
“실내 페인트공으로 전업도 고려중”

그에게 32년간의 정치판 기록 중 ‘인생짤’(인생에 한번 나올 정도로 잘 찍힌 사진)을 물었다. 격렬한 충돌 현장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소 짓고 있는 초상 사진을 꼽았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서 텔레비전 토론을 하는 동안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대선 기간 동안 김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도 쓰였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뒤에도 2년여 동안 이 사진을 명함에 인쇄해 사용했다. “대선 포스터 사진은 언론사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포함해 수많은 사진 중에서 선택됐습니다. 자연스러운 미소가 온화한 리더십을 연상시켰나 봅니다.” 뿌듯함이 담긴 그의 자평이다. 이 사진은 지금도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과 나란히 걸려 있다.

중동건설 바람이 한창이던 1984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삼성건설에서 연수를 받고 국외 파견을 준비하고 있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앞서 스튜디오에서 전문 사진술을 익힌 까닭에 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 비서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정치 참여가 배제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리해 ‘정치 일번지’ 종로에 출마한 이 총재의 선거운동 사진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인연으로 85년 12대 총선을 기록한 뒤 당에 들어간 그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교통비만 받고 일했습니다. 중앙당 전체에서 교통비라도 받는 실무자가 단 3명이었고, 대부분 자원봉사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신한민주당은 총선에서 67석을 얻어, 민주정의당(민정당)의 ‘위성정당’이란 비판을 받은 민주한국당(민한당)을 3당으로 끌어내리며 제1야당이 됐다. 송 국장은 이때부터 당의 공식 사진은 물론 창당의 모태가 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들은 당보 <신민주전선>을 통해 당원과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1960년대 신민당 시절 <민주전선> 제호로 창간됐던 당보는 당의 이합집산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습니다. <평민당보>, <민주당보> 이런 이름들을 거쳐, 온라인 시대인 지금은 종이 당보가 없어지고 누리집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제구실을 못했던 당시에는 당보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야당 지지자들은 ‘민주전선’이란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린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서울역 앞 흑백현상소를 들락거리던 그는 신속한 마감을 위해 아예 당사에 암실을 마련했다. 그런데 86년 여름 종로5가에 있던 당사가 큰비에 잠겨, 85년부터 촬영한 필름 대부분이 망가져 버렸다. 그는 이 일을 가장 아쉬워했다.

민주당의 역사와 함께했던 그가 잠시 당을 떠났던 사정을 물어보았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 전속을 맡으라 해서 짐을 쌌습니다. 청와대로 출근한 첫날, 살림을 맡은 보좌진이 직급 없는 명예직으로 일을 해달라며 차후에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우습게 아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당으로 돌아왔습니다.” 훗날 박지원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이 “(청와대) 들어왔다고 인사를 하더니 하루 만에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힐난했다며 씁쓸해했다.

“신문에 나오는 당 대표나 후보들의 사진은 눈을 감거나 찡그린 모습 등 부정적일 때가 많습니다. 당의 활동을 잘 알려야 하기에 웃는 표정, 특히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려 애써왔습니다.” 그가 추구해온 나름의 ‘사진 철학’이다.

매일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6시40분이면 집을 나선다는 그는,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420회씩 하는 팔굽혀펴기를 ‘청년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로 꼽았다. 퇴임 뒤 계획을 물었다. “두가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는 당직자들을 도와 다시 카메라를 잡을 수도 있고요. 아예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페인트칠을 해보려고요. 외벽은 어려운 작업이지만 실내 작업은 할 만하답니다. 마음도 깨끗해질 것 같습니다.” 인사 청탁과는 거리가 먼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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