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맨 왼쪽)이 2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회의에서 <채널에이(A)>에 대해서는 향후 수사 결과 등을 통해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문제가 확인될 경우, 재승인을 취소할 수 있는 ‘철회권의 유보’를 조건으로 재승인을 결정했다. <티브이(TV)조선>에 대해서는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과천/연합뉴스
“시민의 언론개혁 명령을 거부한 방통위원은 사퇴하라!”(방송독립시민행동) “종편이 끼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데 방통위가 봐주기 심사로 국민을 우롱했다.”(국민주권연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20일 논란을 빚었던 종합편성채널(종편) <채널에이(A)>와 <티브이(TV)조선>의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하자 언론시민단체들 사이에선 또다시 ‘방통위 책임론’이 대두하고 있다. 3년 전 심사 때 이미 기준점수(650점)를 밑돌아 재승인 취소 위기에 빠졌던 티브이조선에 대해 이번에도 ‘면죄부’를 준데다, ‘검-언 유착’과 ‘취재윤리 위반’ 의혹을 받는 채널에이에 대한 단죄 여부를 검찰 등 외부에 떠넘겼다는 비판이다.
방통위는 20일 티브이조선에 대해 재승인 조건 11개와 권고사항 8개를, 채널에이엔 재승인 조건 13개와 권고사항 4개를 단서로 달아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최대주주인 신문과의 경영 분리, 시청자위원회와 편성위원회, 협찬 문제 등의 조항을 구구절절 명시했다. 하지만 부적절한 방송을 지속하는 두 종편에 또다시 재승인을 내준 것에 대해 방송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방통위가 그 소임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티브이조선은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이미 기준점수를 밑돌아 재승인 취소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당시에도 공적 책임, 공정성 부문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도 티브이조선은 계속해서 막말·편파 방송을 일삼는 등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동일 부문에서 과락을 당했는데 재승인을 한 것은 방통위가 책무를 회피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상임대표인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재승인 제도는 부적절한 방송사에 그에 준하는 엄중한 조처를 하라는 것이다. 규제기관이 권한을 확실하게 행사해야 방송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데 그런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번 재승인 심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방통위가 과연 채널에이의 막장 저널리즘에 ‘철퇴’를 내릴 것이냐였다. 방통위는 “사전 진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수사 결과를 통해 방송의 공적 책임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 재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이는 방통위가 사실상 공을 검찰에 넘긴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방통위는 관련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 9일 채널에이 경영진을 불러서 한 차례 조사를 벌인 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방통위가 강제수사권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채널에이에 관한 추가 조사나 녹취록 등 관련 자료 제출 요구 없이 마무리한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며 “검찰 수사로 밝혀질 검-언 유착 여부와 별개로 소속 기자의 윤리 위반은 반드시 재승인 심사에 감점 요인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조건부 재승인’ 결정이 내려진 만큼 앞으로 두 종편에 부여된 이행 실적을 꼼꼼히 점검해 차기 심사 때 질 낮은 종편을 퇴출시킬 수 있는 실질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 처장은 “방통위가 재승인 심사를 3~4년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3~4년 내내 한다는 자세로 정교한 누적 평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재승인 취소 절차와 사유 등도 면밀히 다듬어 정교한 퇴출 논리를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통위가 이번 심사에서 ‘승인 취소’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종편의 행정소송과 언론 탄압이라는 프레임 설정을 우려한 타협책이란 해석도 있다. 앞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치지 않도록 그 수위를 높이고, 법률·경영·시청자단체 등 외부 심사위원에게 맡긴 재승인 심사를 방통위가 직접 관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방통위의 엄정한 심사 의지를 가늠할 기회는 또 있다. 오는 11월 종편 <엠비엔>(MBN)과 <제이티비시>(JTBC) 재심사가 남아 있다. 엠비엔의 경우 2011년 종편 승인 과정에서 법인 자금을 일반 투자자인 것처럼 꾸며 출자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회계부정(분식회계)을 저질렀다는 <한겨레>의 단독보도가 사실로 드러나 경영진과 회사가 검찰에 기소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이 사퇴했으며,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언경 민언련 공동대표는 “엠비엔의 경우, 재승인이 아닌 최초 승인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기에 다른 종편과 사정이 다르다. 방송법 18조에 따르면 허위·부정한 방법으로 승인을 얻은 것으로 판단되면, 승인을 취소하거나 최대 6개월까지 업무를 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 11월 심사는 방통위가 문제적 종편에 대한 퇴출 권한을 행사할 의지가 있는지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엠비엔 노조도 21일 ‘공정성 제고 방안을 즉각 실시하라’는 성명을 내어 사 쪽에 “방송 공적 책임성 확보, 독립성 강화를 위한 소유-경영 분리를 어떻게 할지 최소한의 조처를 할 것”을 요구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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