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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각박해져 힘들지만 ‘노숙인의 한끼’ 멈출 수 없죠”

등록 2021-12-29 20:24수정 2021-12-30 02:31

[짬] 대전 벧엘의 집 원용철 담당목사

지난 28일 대전 동구 정동 대전역 인근 벧엘의 집에서 원용철 목사가 코로나19 상황 속 대전역 거리급식 활동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지난 28일 대전 동구 정동 대전역 인근 벧엘의 집에서 원용철 목사가 코로나19 상황 속 대전역 거리급식 활동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노숙인에겐 무료급식소 문이 닫히는 것이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일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거리급식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22년째 대전역 앞에서 노숙인과 쪽방주민을 위한 거리급식을 하고 있는 원용철(56) 대전 벧엘의 집 담당목사에게도 지난해와 올해는 참 힘든 시기였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속 정부의 지침에 따라 무료급식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거리급식을 멈추지 않았다.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어떤 이유로도 외면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대전 정동 대전역 인근의 ‘벧엘의 집’에서 만난 원 목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마음 아프게 한 건 코로나19 이후 더 각박해진 ‘노숙인에 대한 시선’이었다”고 말했다.

‘집합배식’ 금지로 고비용 ‘도시락 배식’
대기업 후원 바닥나 다시 컵라면으로
“사진 찍어 고발해 더 마음 아팠죠”

1998년 대전역에서 한달간 노숙 체험
이듬해초 ‘라면 천막’ 시작해 23년째
“주는 자-받는 자 아닌 함께 사는 이웃”

원용철(맨 가운데) 목사는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빈민사목에 나서 23년째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인 거리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벧엘의 집 제공
원용철(맨 가운데) 목사는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빈민사목에 나서 23년째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인 거리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벧엘의 집 제공

올들어 다시 무료급식이 가능해졌지만, 흩어져서 따로 먹을 수 있는 도시락으로 급식해달라는 권고가 따라붙었다. 일반 식판 급식보다 3배 이상 비싼 도시락 급식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난감할 때 한 대기업이 도시락값을 지원했다. 그 덕에 올들어 7월까지는 도시락 급식을 할 수 있었지만, 대기업의 지원금이 떨어지면서 8월부터 10월까지는 컵라면 급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드 코로나’로 바뀌면서 11월 잠시 식판 급식을 할 수 있었지만, 12월 중순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컵라면 급식으로 되돌아간 상태다.

“사진까지 찍어 구청과 청와대로 민원이 여러 차례 들어갔어요. 코로나 상황에서 노숙인 거리급식을 하는 게 말이 되냐는 내용이었죠. 힘들고 어려울 때 사회의 약한 고리를 집단으로 공격하는, 일종의 ‘이지메 현상’이라고 느꼈어요. 백화점, 대형마트도 문을 닫지 않고 식당에 앉아 마스크 벗고 밥 먹게 하면서, 한 끼의 생계를 위한 노숙인들의 자리만을 문제 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평소 노숙인과 쪽방주민에 대한 편견이 팬데믹과 만나면서 증폭된 거죠.”

대전역 노숙인과 그의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12월 서른세살의 원 목사는 대전역에서 한 달간 노숙 생활을 했다. 외환위기로 거리의 노숙인이 늘어나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진 때였다. 노숙인을 위한 사역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노숙인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 사이로 들어갔다. 한겨울 밤 라면 하나 끓여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노숙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함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그들의 고통을 이해했다.

한 달간의 노숙을 끝낸 뒤 그는 1999년 1월부터 매일 밤 10시 대전역 앞에서 노숙인에게 컵라면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대전역장의 허락을 받아 대전역 광장 한 쪽에 천막도 설치했다. 노숙인들은 추운 겨울밤 그가 준 컵라면을 먹고 천막으로 들어와 추위를 피했다. 아픈 노숙인들을 위해선 약국에서 약을 얻어다 줬다. 라면이 다 떨어져 막막한 순간,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루는 라면이 떨어져 빈손으로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 어떤 사람들이 라면 박스를 들고 왔어요. 내가 노숙인들에게 컵라면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근처의 한 약국에서 라면을 후원한 것이었죠. 아무 대책 없이 시작한 컵라면 급식을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그해 8월 그가 속한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노숙인 지원시설인 ‘벧엘의 집’ 문을 열며 담당목사로 부임했다. 벧엘의 집 지하에서는 아픈 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도 시작했다. 원 목사의 뜻에 공감한 의사와 약사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이 이어졌다. ‘쪽방상담소’란 이름의 쪽방주민 지원시설도 운영했다. 정작 그의 아들이 그린 가족 그림 속에 아빠 모습은 없을 정도로, 노숙인과 쪽방주민을 위해 헌신한 세월이었다.

“처음 대전역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미리 계획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내지르고 가는 게 제 방식이었죠. 그 과정에서 함께한 지기들이 없었다면 모든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벧엘의 집은 지난해 ‘새로운 20년 선언’을 했다. 설립의 기초를 다진 기적 같은 지난 세월을 넘어 앞으로 20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꿈이다. 새해에는 ‘우리 거룩한 동행’이란 목표도 세웠다.

“때로는 주는 자의 권력으로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을, 노숙인과 쪽방주민 모두를 나의 또 다른 영혼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이웃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 그런 곳이 ‘사람다움의 세상’ 아닐까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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