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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엔지오

‘시민 가까이’ 외치지만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등록 2007-03-21 19:09수정 2007-03-22 16:03

1987년, 그 뒤 20년
1987년, 그 뒤 20년
[1987년 그뒤 20년, 시민운동 어디로]① 보이는 한계, 안 보이는 전망
성명서나 이벤트 위주 되풀이…상근자 절반 가까이 위기상황 인식
시민운동은 ‘87년 체제’가 낳은 기린아였다. 군사독재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꽃핀 민주화 시대에,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깨뜨리고 나아가는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어느덧 청년기에 접어든 시민운동은 안팎의 도전에 주춤하고 있다. 쌩쌩 내달리던 1990년대의 ‘호황기’를 지나 조정 국면을 맞은 것이다. 그 원인과 돌파구는 무엇인지, 앞날의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지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지금 시민단체는 중대한 위기 상황에 있습니다. 과거 화려했던 시기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시민단체에 여전히 거품이 많습니다.”(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

#2 “시민단체가 정말 위기인가요? 시민운동의 위기는 찬란한 성과를 이뤘던 90년대에 견줘 상대적 위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의 50년을 두고 고민하고 싸워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한겨레>가 지난 7~8일 전국의 시민단체 30곳 상근 활동가 1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48.6%가 현재 상황을 시민운동의 위기로 보고 있었다. 위기가 아니라고 답한 이는 24.3%에 그쳤다.

위기로 보든 아니든, 시민운동이 중대한 한계와 도전에 부닥쳤다는 분석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의 ‘낙천·낙선 운동’을 정점으로 시민운동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민운동이 갈 곳 모를 어려움에 놓인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사회가 변했다.

1980~90년대 시민운동이 선도해 온 반부패·인권·여성·노동 등의 의제들이 200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제도적 틀 안으로 흡수됐다. 이른바 ‘일감’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대로 “시민운동에서 다루던 영역을 정당정치가 가져가고 관련 국가기관도 생기는 등 상황이 변한 것”이다.

시민운동 초기에 풍부했던 ‘전문가 그룹’도 상당 부분 맥이 빠진 상태다.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교수나 변호사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아니지만 ‘열정’은 많이 식었다는 것이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다른 매체를 통한 표현 기회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의제뿐만 아니라 인력도 제도권으로 많이 흡수된 것이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처장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개혁, 부패방지법, 공직자윤리법 등과 같은 의제들이 제도권으로 흡수됐다”며 “지금은 모색기이고,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역할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태의연한 운동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다.

시민운동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20년째 △성명서 발표 △집회 △농성 △법안 제출 따위다.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성명서 내는 식의 관행은 더 통하지 않는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숨겨진 정보를 찾아 시민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의 경우 지난해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의 관련 자료를 상세히 분석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언론에 한 줄 나오면 된다는 식의 ‘이벤트’ 중심 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진다. 지난해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날마다 촛불집회를 준비했다는 최준영 문화연대 팀장은 “10명이 행사를 준비했는데 시민은 5명만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며 “실망감과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모색하고, 인터넷을 활용해 시민들과 만나는 지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밑에서부터 시민운동이 전개되려면 풀뿌리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운동이 중앙집권화돼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조한혜진 환경운동연합 간사는 “온라인 매체 등 시민과 쌍방향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꾼이 빠져나간다.

새해 첫 출근에 나선 시민들이 지난 1월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새해 첫 출근에 나선 시민들이 지난 1월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상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5%는 ‘시민운동을 그만둘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직을 하겠다’는 응답자도 34.2%나 됐다. 경실련의 경우, 2000년께 90여명이던 상근자가 지금은 3분의 1인 3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실련 쪽은 인원을 충원하기보다 급여를 올리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활동가의 한 달 급여가 100만원에 못미치는 단체가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박영선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한 토론회에서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는 원인의 하나로 ‘허약한 내적 자원’을 꼽았다. “낮은 임금이 활동가들의 중도 하차를 가져와 대부분의 시민운동 조직에서 ‘허리’가 약한 이른바 유(U)자형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윤철한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부장은 “시민운동 지도자와 신참 활동가 사이에 중간 세대가 엷어 조직 운영의 지속성이 위협받는 상황이어서,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철재 서울환경연합 초록정책국장은 “요즘은 시민운동을 한다고 하면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며 “전문성이 떨어지고 의제 설정을 탄력적으로 못하는데다 전망이 안 보이는 고민에 빠져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활동가 이지은씨의 경우

지난 2004년부터 평화와 국제연대 활동을 펴온 <경계를 넘어>의 이지은(28) 간사는 낮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로, 저녁에는 학원 강사로 일한다. 상근자가 3명뿐인데다 단체에서 받는 급여는 교통비 5만원이 전부여서 생계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의 억압받는 부족 등 연대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힘에 부치는 형편이다. 단체에 한달 회원비로 모이는 돈이 50만원 안팎일 정도로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힘들어요.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아요. 조금씩 회원도 늘고 있어 희망적이고, 중앙에 있는 큰 단체와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려고 해요.”

힘겨운 생활과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으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이씨의 얼굴은 마치 시민운동의 오늘치 기상도 같다. 전진식 기자, 노현웅 윤은숙 정옥재 수습기자 seek16@hani.co.kr
시민사회단체가 걸어온 길과 시민운동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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