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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대로 된 정책세력 등장한 적 있었나”

등록 2007-06-18 10:22수정 2007-06-18 17:49

(왼쪽부터) 박세일 김유배 이정우 이병천
(왼쪽부터) 박세일 김유배 이정우 이병천
6월항쟁 20돌 끝나지 않은 6월 : 2부 한국사회 어디로?
② 한국사회 미래논쟁 (하) 문민정부 이후 정책주역들과의 좌담
좌담
박세일 서울대 교수 / 문민정부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
김유배 성균관대 교수 / 국민의정부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이정우 경북대 교수 /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이병천 강원대 교수

<한겨레> 6월항쟁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는 항쟁 이후 역대 정권에 직접 참여한 청와대 정책주역들과의 좌담이다. 김영삼 정권에서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박세일 서울대 교수, 김대중 정권 시절 복지노동수석을 지낸 김유배 성균관대 교수, 현 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그들이다.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참여사회연구소장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여기에 가세했다. <한겨레>는 이들을 통해 지난 20년 우리 경제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교수들은 좌담에서 지난 20년을 제각기 성찰하면서 우리경제의 최대 과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라는 데서는 같은 의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성장과 분배’, ‘경제민주화와 선진화’, ‘고교평준화’, ‘바람직한 경제시스템’ 등 각론에서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나타내며 열띤 공방을 벌였다. 이번 좌담은 지난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사회는 정석구 경제부문 선임기자가 봤다. 다음은 토론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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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항쟁의 경제적 영향


(사회)이번 좌담은 6월항쟁 20년주년 기획 중에서 제2부 ‘한국사회 어디로’란 연속토론 기획물중 하나다. 경제부문에서 6월 항쟁 이후 한국경제가 어떻게 변해왔고 앞으로 어떤 경제 발전 모델 혹은 방향을 모색해야 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는 자리다. 한국경제 어떻게 변해왔고 현재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에 우리가 어떤 경제체제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는 순서로 진행하겠다. 우선 6월 항쟁에 대한 여러 가지 성과가 있는데 대부분 정치민주화 쪽 위주로 평가가 되고 있다. 지금 87년체제라는 게 어떻게 변질됐는지가 주로 정치적인 분야에 얘기되는데 6월이 갖는 경제적 변화가 뭔지, 20년 동안 어떻게 지속돼왔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겠다.

6월 항쟁엔 ‘공정경쟁질서’ 중시와 ‘민중의 삶‘ 중시, 두 개의 노선 잠재

(이병천 교수, 이하 이병천)6월 항쟁은 정치적 사건이다. 경제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이슈인데 6월 이후 7, 8, 9월 노동자 대파업이었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파업 간에 상당한 갭이 있다. 민주화 이행이라는 것이 2개의 사건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6월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두 개의 사건이 거리를 가지면서 진행되고 발전됐다. 제가 보기에는 6월 항쟁이라는 것은 일정한 대연합을 통해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경제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끌고가느냐를 두고 잠재된 2개의 노선이 있었다.

하나는 공정경쟁질서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저항적 자유주의 흐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YS나 DJ가 이런 흐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아래로 부터 민중의 삶의 요구, 그걸 보다 더 전면에 내세우 그런 흐름이 있었다. (87년)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다. 여기서는 사회경제적 요구가 많이 제기가 됐는데 그게 맥이 끊어졌다. 6월 이후 민주화 이행은 많은 굴곡 거쳤다고 생각하고 그 굴곡 중에는 첫째는 양쪽으로 분리돼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그걸로 인해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 요구는 뒤로 밀리게 됐다. 김영삼 정권시기의 개혁 방향이 있었는데 노개위(노사관계개혁발전위원회를 두고 말함) 같은, 민노총도 가입했던, 그런 합의가 모처럼 이뤄졌다가 그게 깨졌다. 후반기엔 세계화를 했죠. 내부개혁이 안 된 상태에서 개방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는 뒤틀린 방식으로 가서 위기로 이어졌죠.

아이엠에프 위기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경제위기로 결론이 났다. DJ정부에 와서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차원에서, 핵심은 결국 한국 경제는 미국식으로 개방한다는 식으로 갔다. 크게 보면 정치적 민주화와 다른 방향으로 경제적 자유주의 중심으로 한국 경제 끌고 가게 됐고. 민주주의라는 게 사회경제적인 삶으로 침투를 못한 상황이 됐다. 한국 민주화의 열망이 실망으로 끝난 것이다. 97년이 큰 전환점이라고 본다. YS 정권이 97년을 만든 하나의 책임이 있고, 그걸 심화시켜서 새로운 미국식으로 한국경제를 개조하는 질서가 잡히게 된 건 97년 이후다.

참여정부도 큰 선상에서 보면 DJ정부에서 만든 미국식 한국 경제의 기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많은 우여곡절 있었지만 정치적 민주화와 자유주의라는 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지체나 좌절이 와서 반성하게 되는 포인트다.

(사회)6월항쟁에서 사회경제적 요구가 있었지만 큰 역할 못하고 좌절했다는 말씀이었다.

(김유배 교수, 이하 김유배)사회경제적 요구가 좌절되고 실현이 안 된 부분도 있지만 6월의 정치적 민주화가 시작된 것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영향 미쳤다. 국민들의 경제적 요구가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우선 노동자집단 이외의 다른 사회적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자기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한 행동을 많이 보여줬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짐에 따라서 경제적 형평성을 요구한다든가 특수 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든가 이러한 노력이 계속돼왔다. 그것이 역대정권에서 노동운동의 합법화 성과 이루게됐다.

아울러 새로운 주장을 읽을 수 있는 건 질적 생활에 대한 요구이다. 특히 과거에 양적 성장에 대해, 지나치게 치우친 폐해들에 대해 질적 성장에 대한 요구가 나타났다. 환경, 삶의 질, 복지 문제가 부각이 됐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은 부에 대한 소유욕구, 자유에 대한 향유가 발전 잠재력을 형성하고 있다. 6월 이후 경제적 욕구 좌절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이 실현되는 완성되는 과정에 있다. 완성은 안됐지만 그 과정속에서 성공한 부분과 현재 진행되는 부분이 잘 조화를 이뤄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를 낳고 있다.

(이정우 교수, 이하 이정우)6월 항쟁 이후에 7,8,9월 노동자대투쟁을 보면 6월 항쟁 때 나타나는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는 크게 실현이 됐다. 정치적 민주화는 진전되고 거의 완성단계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 면은, 사회적 민주화인데 사학법 등을 염두해두고 얘기하면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충분히 진전이 없었다. 97년 외환위기가 큰 전환점이었다. 세계적 추세로 보면, 세계화, 정보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그것이 경제적 민주화를 더욱 더 어렵게 하는 외부환경 있었다고 본다. 정치적 민주화는 진전되고 경제적으로는 민주화 되지 못하는 부조화의 상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박세일 교수, 이하 박세일)87년을 분명히 큰 전환점으로 보는데 그 이후 경제 분야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그동안 산업화를 이끌던 성장의 전략과 제도가 있다. 80년대 후반, 90년대 들어오면서 내적으로도 구 성장 제도와 성장전략으로는 계속 성장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또 대외관계, 해외부문도 산업화, 근대화가 지나고 정보화와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제도 새로운 전략을 찾아내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두번째 과제는 그동안 산업화 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졌던 부분, 이정우 교수가 말한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가 되겠죠. 상대적으로 근로자들의 문제가 제대로 산업화 과정 속에서 대우받지 못한 부분이라든가, 환경이라든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적절하게 새롭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크게 보면 두 가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후에 그런 방향으로 우리사회가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여왔으면 좋은데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못해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혼란이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사회경제적으로 6월항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김유배 교수는 상대적으로 가치화되고 정치민주화를 통해 사회경제적인 민주화 과정에 많은 영향 미쳤다고 평가했고, 다른 분들은 경제 민주화 쪽에서 충분히 요구가 표출되거나 제대로 진전되지 못했다는 의견을 냈다.

다음은 한국경제 20년 동안 경제를 길게 봐서 어떤 흐름 속에서 발전돼왔는지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말씀해 주고, 또 한국 경제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씀해 달라.

(박세일)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우선 정치적 민주화가 87년 이후에 경제운영에서는 정치 논리가 경제정책을 과도하게 영향을 주는, 정치적 논리가 크게 작용하는 특징이 있었다. 요즘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데, 분명히 정치민주화라는 것이 경제논리를 지켜나가고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됐고, 경제 운영에서는 정치 민주화가 플러스 되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약했던 대중의 목소리 커졌다고 하는 측면, 그래서 국가 정책에 소외됐던 대중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계기가 되는 플러스도 있다. 동시에 정치민주화는 경제 논리가 파괴되고 인기 영합적으로 나가게 되는 게, 길게보면 하나의 큰 트렌드다. 20년간 흘러온 걸 보면.

두번째는 정치 민주화가 경제 부분에서 균형주의, 평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었다. 자유라든가 경쟁을 전제로 보완적 논리로는 충분히 고려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평등과 균형을 강조하다 보니 기본이 되는 자유라든가 경쟁 법치라는 부분이 상당히 흔들려 버렸다. 87년 이래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제도와 전략 찾기인데 그 부분이 흔들렸다. 되다 말다 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평등, 균형주의, 과다한 균형주의, 평등주의 사고가 새로운 발전 동력을 찾고 발전적인 제도를 만들어내고 발전 전략을 짜는 데 크게 유해했고, 정치 민주화가 플러스인 측면은 소외된 집단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문제를 올바로 풀기보다는 인기 영합주의로 푸는 데 기여한 것이 그동안의 특징 중에 하나다.

“우린 아직도 20세기 논리에서 자기정리가 안되는 상황”

그러면서 세계는 엄청나게 빠르게 세계화가 진전되고, 시장 경쟁 논리가 대대적으로 퍼지고 그 논리에 따라 중국이 부상하고, 그 논리에 충실해서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21세기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 논리에서 자기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 6월항쟁으로 인해서 민주화가 진전이 되는 게 거꾸로 경제 쪽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하셨다.

(박세일) 그렇다. 긍정도 있었지만 부정도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사회)경제에 경제 자체의 논리보다 정치 쪽 논리가 많이 들어갔다는 지적을 했다. 민주화라는 게 경제 쪽에서 평등주의나 균형주의로 나타나면서 경제가 제대로 된 성장궤도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됐다는 말씀같다.

(박세일) 새로운 성장 전략, 제도, 성장 동력을 찾아내 그걸 띄우면서 평등주의적인 보완이나 균형주의적인 보완을 해야하는데 전자 없이 확 이쪽으로 쏠리니까 사회가 갈등구조로 가고 문제가 제대로 안 풀리고 그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김유배)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다만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정치적인 사건의 변화와 기술의 변화를 구분해야 한다. 혼동해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술의 변화는 앨빈 토플러(미래학자)가 말하듯 산업체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산업화의 기술력이 정보화 기술, 세계화 물결 속에서 맞이하게 되는데 제도적으로는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새로운 민주화 체제로 바뀌어가잖냐. 거기에서 6·29(선언)이후 어느 기간 동안은 뭘 준비했어야 하느냐면, 글로벌화한 환경을 준비했어야 한다. 거기 어떻게 적응할지, 또 정보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준비할 기간을 놓친 부분이 있다. 이래서 소위 IMF체제로 인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지만, 그 과정에 일시적으로 노출돼서, 서서히 노출되지 않고 일시적으로 노출돼 과거의 산업화 시대에 있던 제도 ,조직구조 행동양식을 바꿔야 될 필요성을 가진 게 소위 IMF 체제다.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보다 응급처방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구조 개혁이 이뤄졌는데, 과거의 관행을 가진 경영방식을 가지고는 더 이상 글로벌 환경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구조개혁을 하고, 균형관계도 그렇고. 공공, 노동부분 등에 대해 정부의 개혁정책, 드라이브정책에 나온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박 교수가 말한대로 새로운 성장 동력 찾아 매진하기 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어떻게 교정하고, 구조조정을 통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드느냐에 대한 임시적인 정책이 많았다. 그러면서 ‘IMF를 졸업했다’ 하고 위기상황을 벗어난 뒤 찾아야할 게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든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그 미흡한 부분 남겨둔 채로 참여정부가 과제를 맡았는데, 그 과제가 성장동력 찾아서 발전모델을 제시하기 보다는 성장이냐 분배냐에서 분배우위라는 말은 안했지만 그런 쪽으로 집중화하면서 국민들에게 그런 오해를 많이 줬다. 그래서 이 두가지가 같이 양립해 가야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면에서 구조조정을 마친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되고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다주는 국내경제를 어떻게 활력화시켜서 고용을 창출할 것이냐 하는 비전제시가 경제적으로 정책적인 측면에서 미흡한 게 아닌가.

(박세일)그 전으로 좀 올라가면, 내가 보기에는 사실은 YS 때 이걸 했어야한다.

(김유배)그런데 기치는 내걸었는데 세계화에 대한 준비가 안 됐다.

(박세일)1994년 겨울에 세계화 구상을 내가 만들어보면서 돌이켜보니 100년 전에 1894년 갑오경장이 있었다. 그때 우리 사회가 농업사회에서 근대화랄까 산업화로 막 들어오던 때-갑오경장을 한 100년 전에 했는데-한 4년 하다가 아관파천하면서 실패하고, 결국 어려워졌다. 세계화 구상 쓰면서 그때 문제제기가 지금과 비슷한 거다 생각했다. 이제는 과거 성장 메커니즘으로 안 되는데 근본적으로 바꿔야겠다는 문제제기는 그때 시작이 됐는데 미완으로 끝난 거다.

그러면서 교육개혁 시작하면서 사법개혁 노동개혁하면서 재벌을 손댈려고 했다. 이렇게 쭉 나갔다. 내가 보기에는 90년대 초반에 우리사회에 좀 더 본격적인 정보화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구조조정을 하는 게 어느 정도 됐으면 우리가 IMF까지 안갔을 거다.

“지식인들 역량 약해 IMF까지 갔고 선택하기 전에 요구되는 걸 해야하는 측면까지”

역사에 중요한 게 그 사회 지식인들의 지적역량이이다. 사회를 리드하는 지식인들의 그 때의 문제의식의 수준이나 강도가 약했다. 90년대 초반에는 그래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역량이 있어서 사회적 이슈화하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때 많은 부분 개혁을 체계적으로 하면 이후에 역사 진전 쉬웠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IMF까지 갔고, IMF 가니까 벗어나기 급하니까 자기가 취사선택하기 전에 요구되는 걸 따라서 해야되는 측면도 생기고, 성장 쪽이 안 풀리니까 분배 쪽도 제대로 못 푸는 거다. 그런데 욕구는 밑에서 막 올라오니까 분배를 막 풀려고 하다 보니 성장은 더 죽고, 그래서 그 이후에 상황이 더 꼬이게 됐다.

87년 이후에 노태우 대통령은 과도기이고, 문민정부 정도는 체계적으로 하나가 돼서 이걸 몰고 나갔으면 훨씬 좋은 역사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내 스스로 많다.

(김유배)그 부분에 덧붙이면, 세계화에 대한 기치를 내걸어서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 실행이 어느 정도 됐느냐에 대해 검토해보면 실행이 안됐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국민의 정부 들어와서 소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국정철학으로 해놓고 보니까. IMF 위기상황에서 그렇게 갈 수 없었다.

그 다음에 보니까 사회복지나 사회안전망이 걱정됐다. 그냥 부수적인 게 아니고. 그래서 생산적복지를 통해 경제와 복지를 어떻게 연계하느냐를 가지고 국정철학의 틀을 삼각형으로 해서 축을 하나 넣은 것이다. 개념적으로 아이디어를 제기하고, 시동 걸었지만 그것도 미완인 게 집행에 대해서 대통령의 철학을 따라와서 그것을 집행을 못했다. 세계화 내놓고 집행 못하듯이 생산적 복지도 개념적으로는 정립하고 그런 방향을 제시했는데 집행상 미흡했다. 그게 나중에 참여정부로 넘어가버렸다.

6.10 항쟁 좌담회에 참여한 이병천(왼쪽부터), 이정우, 박세일, 김유배 교수가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6.10 항쟁 좌담회에 참여한 이병천(왼쪽부터), 이정우, 박세일, 김유배 교수가 13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사회)산업화 시대가 87년으로 마감되고 이후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적응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제대로 못하다보니까 현재 이런 상황에 왔다는 말씀이었다.

(이정우)사족인데, 산업화라고 산업화세력, 민주화세력이라고 하는데 산업화가 아니라 공업화라고 불러야 맞다. 산업화는 어불성설이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공업화가 맞다. 지금은 정보화라는 3차 산업으로 가는 거다. 어쨌든 이전에 있던 박정희 모델이라고 불리는 관치경제가 고성장을 가져오고 어떤 면에서 효율 있었다. 87년 이후 새로운 경제모델 찾아야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못찾고 방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두 분 말씀에 동감이다. 그런데 방황을 해석하는 데 대해 박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 민주화 이후 포퓰리즘, 정치논리가 경제왜곡을 가져온다, 지나친 평등주의가 성장 저해한다고 했는데, 저는 두 가지에 대해 생각을 달리한다. 이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 이전에 박정희식 모델에서 지나치게 성장일변도, 그리고 그걸로 가면서 많은 것이 무시된 것이다. 예를 들면, 분배, 환경 균형 경제안정이 무시됐다. 물가는 계속 엄청나게 올랐다. 그것이 가져오는 내적인 수많은 모순과 왜곡, 그리고 그 자체가 더 이상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그런 왜곡과 불균형이 하나씩 시정되어가는 과정이고, 거기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항의도 있고, 마찰도 있고 데모도 있다.

인간을 억압했을 때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고,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요구나 분배에 대한 요구도 나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다. 크게 보면 이것도 민주화 과정이고, 우리가 배워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진작에 그렇게 됐어야 하는데 과거에 독재정권이 억압을 했을 뿐이다. 과거의 지나친 성장주의, 효율지상주의는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성장일변도, 효율일변도로 간 선진국은 없었다. 어느 나라도 없었다. 박정희 모델은 그런 면에서 아주 극단적이었다. 그 극단을 교정해가는 과정이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것을 대체해 나갈만한 새로운 모델을 못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병천)민주화라는 게 결국은 절차적, 정치적 민주화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 살면서 실현해야하는데 87년 이후 제대로 되지 못한 게 고통이고, 문제의 근본 소재다. 사회적 요구가 지속가능하려면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87년부터 97년사이는 여러가지 중장기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경기부양적인 사고와 정책이 심했던 시기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신경제 100일 정책’이라는 게 나왔다. 새로운 성장모델을 구축한다든가, 사회경제적 삶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부분에서 굉장히 시야가 좁고 얕았던 시기다. 경기 부양적이고 거품이 많았다. 전두환 말기는 3저호황 시기였다. 외적 요인이 굉장히 컸다. 가면서 경제가 침체로 들어가니까 조건이 안 좋았던 면도 있지만 새로운 중장기적인 대안적 모델을 구축한다는 생각이 약했던 것 같다.

그 부분이 이후에도 지속된 것 같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97년까지는 방황이 굉장히 심했다. 방황 속에서 내부개혁도 잘 안 되고 어설픈 개방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하다보니까 경제가 탈주한 시기라고 본다. 궤도를 이탈했다. 자기 속도를 갖지 못하고 탈주한 걸 바로잡으려고 하니까, 바로잡는 방식이 어떤 형태로 우리 것을 계승하고, 외국 걸 수용할지, 코리안 스탠다드를 어떤 식으로 만들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끌려가는 형태로 비쳤다. 중장기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어떤 새로운 모델을 가져갈지 내부적 사회적 합의와 지식기반 사회에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식기반사회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 대응은 기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전처럼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서 경쟁력 높이는 시기 는 지났다. 지식기반 노동자로 성장되려면 노동자의 교육체계부터 공적 지원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 여전히 종래와 같은 비용절감형 발전사고가 오래가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러다 97년 위기 맞았고, 탈주 이후에 중장기적으로 수습을 못했다. 그 결과 이전에 박정희시대도 불균형 얘기 많이 했는데 지금은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양극화가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체제를 구축하는 데 핵심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성장이 지속가능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아이티(IT)한국이라는 게 97년 이후에 만들어졌는데, 너무 돌출적으로 앞 부분만 주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전부 뒤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아이티를 이끄는 게 소수 재벌, 수출 부분이다보니, 이게 사회 전체적으로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선순환을 시키지 못한다. 분배 이전에 경제 시스템 자체가 선순환 시스템을 갖지 못한다. 일부에서 말하는 삼성이 잘 되면 나라가 잘 되나, 삼성이 잘되면 국민의 삶이 개선되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삼성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온다.

(양극화는)분배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경제시스템의 정상적인 성장의 선순환 문제로 봐야한다. 단순히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균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산업구조로 보면 결국은 한국의 가장 약한 부분이 첨단화만 좇아와서 부품소재산업이 워낙 낙후돼있다. 노무현 정부 시기는 부품소재를 아예 놓아버리고 서비스로 가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한국은 제조업 부분도 충분한 선진적인 궤도로 진입을 못한 바탕이 약한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제조업이 선진적으로 진입하기 못한 상태에서 서비스도 저부가가치 산업, 고용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생계수단이 되면서 이런 성질의 불균형 이뤄 한국 경제를 고통에 빠뜨린 거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평등주의나 포퓰리즘이 심했기 때문에 앞선 부분을 전부 밀어주는 식으로 가자고 하면, 이 문제가 아마 더 심화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회)20년을 정리해봤는데 결국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지 못하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해석에 있어서는 갈린다. 박 교수는 정치민주화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했고, 이정우 교수는 그동안 축적된 모순이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김유배 교수나 이병천 교수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정리했는데 사실 해석상에서는 의견일치 보기는 어렵다.

(박세일)하나만 더 얘기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세계화를 들고 나갈 때 우리나라가 개혁 개방하자는 게 세계화 아니고,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화라든가, 정보화라는 건 특징짓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발전하고 어떻게 세계화에 대처할거냐? 그럼 교육 노동 금융은 어떻게 해나가야하나 것이고, 새로운 여건 변화에 맞는 시스템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가 세계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왜 부분적으로 하고 제대로 못했냐고 한다면, 그건 사회를 이끄는 지식인 집단의 수준에 문제가 있었다. 그때 90년대 초의 세계화나 정보화라고 하면, 그건 단순한 산업화나 공업화 연장선장의 변화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룰 오브 게임(Rule of Game)이 시작된 거다. 게임의 룰이 달라지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교육 시스템이나 저임금 노동자만으로는 안 되니까 그것에 맞게 각 부문을 바꿔나갔어야 했다. 그 부분에 있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단순히 이론적인 게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나갈 세력이 우리나라에 없었다. 그걸 다 따져야 한다. 돌이켜서 비판하기는 쉬우나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는 똑같은 문제가 지금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관료들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수성세력이다. 정치인들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일단의 지식인 집단이 그런 여건을 감안해서 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걸 만들어 주면 사회가 그쪽으로 간다. 우리 스스로 내부적으로 대단한 의견차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제대로 된 정책세력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다. 내가 현장에서 느낀거다.

개발 성장주의, 저임금 노동력의 형태로 끌고 왔기 때문에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을 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지에

“개발성장주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왔기에 이젠 다른 궤도로 진입해야…새로운 선택에 직면”

(이병천)세계화라는 게 적응해야 할 부분 있다. 현대적 전환이라는 게 세계화가 정보 지식기반 사회 물결이니까 적응해 하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관리해야하는 측면도있다.

(박세일)당연하다. 누가 그걸 반대하겠나. 예를 들어, 개혁 개방하자는 사람이 개혁, 개방만 하고 우리 스타일은 다 죽이자, 그런 사람은 없다. 같은 얘기다.

(이병천)세계화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의 물결의 도래이기도 하지만, 내부의 무책임이 심한,자본 중심의 세계화라는 물결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양육강식의 전쟁에 우리가 그대로 적응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그 부분은 자체만으로 엄청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병천)이 부분은 꼭 지적하고 싶다. 세계화에 적응한다는 사고가 워낙 지배적이기 때문에.

(박세일)적응 능력은 자기 수준에 달려있다.

(이병천)지식기반 사회로의 전환이나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이 오로지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박세일)물론이다.

(이병천)미국적 길과 유럽적 길이 갈린다. 우리는 이 길도 아니고 저 길도 아닌 개발 성장주의, 저임금 노동력의 형태로 끌고 왔기 때문에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을 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지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지식기반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할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할지 방향자체가 문제가 되고 갈등요인이 존재한다.

[좌담회] 6월항쟁과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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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책 주역들의 ‘고해성사’

(사회)지금까지 20년 동안 어떤 흐름으로 왔느냐에 대해 정리를 했다.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과거 20년을 기간으로 말씀했는데 정권 별로 성과를 나눠서 정리를 하면 좋겠다. 성과와 아쉬운 부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간략하게 말씀해 달라. YS 정부부터 말씀해달라.

(박)처음에 ·신경제 100일 계획‘을 하고, 금융 실명제를 했다. 그 다음에 세계화와 교육개혁을 했다. 나중에 금융개혁을 했는데, 지금 보면 큰 문명사회의 변화, 경기의 규칙이 달라지는 문제의식은 느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추진할 것인지가 미흡한 상황이었다. 문제의식에 비해서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구체적인 성과는 금융실명제, 세계화전략과 시장개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추진방향 옳았는데 제도로 뒷받침이 안 돼서 의도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시죠?

(천)박 교수는 세계화 정책 수립할 때 (YS정부에)계셨나? OECD 가입하고 1년 뒤에 위기가 오게 됐는데….

(박)내가 94년 말에 들어갔다. 금융실명제하고 2년 지나서 들어갔다.

(우) 후반기에 일을 하셨네. 저는 5년 내내 일을 하신 줄 알았는데.

(박)사실 내가 90년 대 초에 서울대에 세계화연구회를 하나 만들었다. 몇 사람이 모여서 분명히 새로운 물결이니까 국가 발전전략이나 개인의 행복의 원리가 달라지니까 뭔가 우리가 연구회를 만들어서 하자고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94년에 세계화 얘기가 됐다고 보면 된다.

(김)알다시피 국민의 정부야, 처음 맞닥뜨린 문제가 IMF 경제위기 어떻게 극복하느냐였다.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 어떻게 이뤄졌느냐가 중요하다. IMF가 내놓은 구조개혁이 상당히 꽉짜여지고 힘들었고, 그걸 잘 조화롭게 해야만 외국 투자라든가, 당장 빠져나가는 자금을 머물게 해야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당시 지도자의 경제외교가 이렇게 중요하구나하는 걸 느꼈다. 금방 우리 조건이 바꿔지는 것도 아닌데 오늘 잘못돼서 다 가겠다는 사람이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외국 자본 외국 기업이 상당히 몰려들어. 디제이 기본 성향으로 봐서 급진적인 정책을 쓸까봐 외국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걱정됐었다. 이걸 안심시켜주는 과정이 있었다. 아이엠에프와 정장외교 통해 설득하고, 특사를 보내서 안심을 시켰다. 알려지지 않은 여러가지 부분들이 있었다. 다행히 유럽 쪽에서 제일 먼저 힘을 실어줬다. 결국은 아이엠에프 때 아주 긴박한 위기를 벗어났다. 그때 약속하고 실행했던 게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이다. 어려운 과정 거쳐서 재벌기업 중심으로 구조개혁에 임하게 됐는데 얼마 후 공적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갔지만 결국 국민의 돈이다. 그런 면에서보면 대기업이 군살을 빼는 데 돈을 받았다. 아이엠에프 이후에 살아남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확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기업이 세계시장에 가서 경쟁할 만큼 여건 조성이 됐다고 본다. 국내에 있는 노동자 문제, 중소기업 문제가 심각한데 그 부분에 정부 역할이 집중됐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서 아이티산업 위주로 집중투자해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먼저 간다는 캐치프레이즈로 해서 정부가 투자를 한 거다.거기서 결과적인 공과는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전부 자수성가한 기업이 많아 오너들에게 물어보면 전부 문제가 있다. 기술의 문제가 있고, 자금, 경영, 전부 문제가 있다. 그걸 정부에서 다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자금을 넣어주면 오너십을 얼마나 줄 수 있냐고 하면, 아무도 줄 수 없다고 한다. 합작을 못하는 거다. 하다가 안 되면 기업을 포기하더라도 같이는 못한다. 오너십 공유가 안 된다. 그런데 아이티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혼자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너십을 공유해서 들어간다. 중소기업을 끌고 갈 수 있는 제2세들, 젊은 아이들이 넘겨 받아서 세계시장에 가면 경쟁력 있고 세계에서 틈새시장이 가능하겠다고 본 거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에서 공과가 있지만 아이티산업에 초첨을 뒀다.

또 하나는 6·15 정상회담이 남북 경제교류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를 해야한다. 시시비비 많지만. 경제적인 청사진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대륙횡단철도를 통해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발전전략을 제안을 했던 거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그런 가능성 보고 청사진 제시한 것이다. 남북관계나 아이티산업에서 비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생산적 복지를 통해서 4대 보험을 정립을 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지난 일이지만, 제가 경제 학자들의 도움을 얻으려고 노력해서 경제학자들이 보험에 관심가지고 꽤 얘기를 했다. 그런데 추진하는 주체는 경제학자들이 없었다. 연금이나 의료보험 입안하는 데 있어 추진세력이 없는, 반쪽이 없었다. 연금개혁을 한다는 걸 그때 당시 교정 못한 게 지금까지 남아있다. 나는 1년 뒤 (DJ 정권에)들어갔는데 모든 게 다 뜨고 있어 중간에 교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개혁을 하려다가 참여정부 내내 끝까지 안 되고 있다. 여전히 미완의 문제들이 남아있다.

(우)(웃음)돌아가면서 고해성사하는 순서 같다. 참여정부 처음에 들어가서 전반까지 일을 했다. 주로 참여정부가 좌파라는 오해도 많이 받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수십년 간의 성장지상주의를 좀 교정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본다. 복지에 대해서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 부터라고 본다. 그 뒤를 이어서 복지확충을 위해서 꽤 노력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증거로서는 예산구조를 보면, 경제예산이 복지예산을 주로 능가했는데 최초로 참여정부 들어서 역전을 했다. 지금은 복지예산이 경제예산을 능가한다. 그때문에 비판받지만, 그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다른 오이시디 국가가 압도적으로 복지예산이 높다. 복지예산이 평균 55%되고, 경제예산이 10%가 안 된다. 이른바 5:1의 격차를 보이는데 우리는 그게 거꾸로 돼있었다. 기형적인 예산구조를 수십년가 갖고 왔는데 그게 바뀌기 시작하는 첫걸음 정도를 내디딘 첫걸음 정도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아이엠에프사태 이후에 급속히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돼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것으로는 아이엠에프와 미국으로부터의 외압이 컸다고 본다. 내부적으로도 미국에서 훈련받은 관료들, 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 그래서 외부 압력과 내부의 인적 구성의 변화가 급속히 시장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나라 만들어왔는데 그걸 교정하려고 해왔다. 시장일변도로 가지 않고 그래도정부의 역할 강조하고, 그 때문에 큰 정부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의 역할,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그 쪽으로 균형을 맞추어 가려고 노력했다. 두 가지 점에서 큰 유턴을 시도한 정부라는 의미 있지않을까 생각한다. 시장만능주의, 성장만능주의 사조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와서는 상당히 다른 얘기가 벌어지는데, 특히 중요한 게 한미 에프티에이다. 한미 에프티에이가가 갑자기 이야기가 나오고 아주 빠르게 타결까지 가 이렇게 되니 3년 간 노력했던 흐름을 크게 거꾸로 돌리는 움직임이 앞으로 나타날 게 앞으로 뻔하다.

한 임기 5년 동안 이렇게 크게 요동친 정부가 과연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후세에 참여정부를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 교육개혁, 노동개혁, 사법개혁 .등 개혁노력들은 그 뒤로도 계속 돼오는 과정에 있지만 지식인들의 역량부족으로 반성했는데 그 점은 저도 비슷하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들어와서까지도 아직 교육개혁 노동개혁 복지개혁, 사법개혁 등 말하자면 소프트웨어 개혁이….과거식의 구 경제모델이 하드웨어 중심적 개혁이었다면 새 경제모델은 소프트웨어 개혁을 통해 찾아가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역시 실패하고 있다. 참여정부도 조금도 내세울 게 없는게 아닌가. 크게 반성해야 하고 앞으로 오는 정부들에 큰 숙제를 안겨주고, 그것이 미래의 과제다.

(사)정부의 성과를 본격적 정리하는 자리 아니지만, 현재의 참여정부까지 왔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에 따라 해결방법도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해석 부분은 이 교수님 말씀 듣고 좀 줄이자.

(천)YS시기는 금융실명제는 워낙 잘 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는 단기주의에 사로잡혀 경제가 많이 표류했다. 그래서 위기를 자초한 책임이 매우 크다. 김대중 정부시기는 어떻게 보면 한국 산업화 이후 시기의 새로운 질서를 만든 최초의 시기 이다. 그 이전에는 질서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많이 헤맸던 것 같고, 재벌에 포획이 돼서 그 위에서 떠다니는 모양이었다. 97년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한국에 질서에 대한 패러다임 제출된 것 같다. 그게 굉장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보면 질서를 수립한다는 측면에서 적극적인 면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의 독자적인 위치를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 다시말해 한국경제의 갈 길은 미국식이라고 하는, 여기서 판가름이 난 거다. 위기의 탓도 있고. 스스로 자초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전에 만들어놓은 게 다 엎질러졌으니까. 그런 면에서 새로운 틀이 잡혀버렸다. 문제 중에 하나는 지식기반경제로 가야하는데 그것도 그 패러다임 때문에 한국경제의 틀이 잡혀버렸다. DJ정부 시기에 가장 규제 완화가 많이 이뤄졌다.

다른 하나는, 이 시기에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게 질서를 수립함과 동시에 엄청난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경기부양을 했다. 아이엠에프 졸업했지만 거품으로 졸업해 노무현 정부에 부담을 한꺼번에 넘겨줬다. 노무현 정부 시기는 가장 좋았던 건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나온 거다.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잘한 일인데 내용이 구체적으로 지켜지지 못했다. 상당 부분은 김대중 정부가 물려 준 거품이나 규제완화의 부담을 정리하느라 고생한 게 사실이다. 부동산은 그중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 위에서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미에프티에이라는 게 나왔다. 나는 아주 돌출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바탕에 깔려있는 건 역시 선진통상국가라를 발전전략이 있기 때문에. 선진통상국가라는 게 완전히 문을 열고, 완전히 미국식으로 바꾸는 게 선진화라는 것이니까. 한미 에프티에이 바탕에 이미 이런 통상국가 전략이 있고, 에프티에이는 상당히 많이 앞당겨져서 급작스럽게 왔다. 그러나 종래는 그렇게 가게끔 틀이 잡혀 있었다.

“제대로 된 정책세력 등장한 적 있었나”
“정책환경 복잡…개혁세력 무능탓 아니다”

(사회)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 정도로 하겠다.

(박)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전체를 정리하는 얘기하겠다. 민주화 투쟁이 87년에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 노력은 60,70년대 있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한 사람만 민주화 투쟁한 게 아니다. 오랫동안의 변화 속에서 축척이 돼왔다. 산업화도 민주화가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토대다. 똑같이 보면, 노태우 대통령 때는 국방정책이나 대외적으로는 상당히 실적이 많았는데 대내적으로는 상당히 흔들렸다. 적어도 와이에스 때부터 시작해서 디제이, 현재 노 대통령까지 보면 그 흐름 속에 면면한 단절과 연계성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새로운 물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이고, 내부적으로는 민주화 되면서 생기는 새로운 내부적 욕구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이 두가지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나름대로 와이에스 디제이 지나면서 조금씩 풀어오는 거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60년대, 70년대에 죽 커왔던 것처럼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대외적 도전과 내부적 요구를 어떻게 하면서 국가발전을 할것이냐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왔다. 고민하고 모색하고, 시도하고, 좌절했다는 걸 많이 느낀다. 지금 교육 많이 하지만, 자립형사립고 얘기하는데 그거 와이에스 교육개혁 때 가장 큰 이슈였다. 예를들어 수준별 수업, 특목고 그때 이미 다 고민되고 한다고 해서 한거다. 부분적으로는 되고, 부분적으로는 안 된 거다.

김 교수 있지만 생산적 복지도 내가 제일 먼저 쓴 용어다. 세계화 구상을 발표하고 보니까, 지금 이 교수가 걱정하듯이 너무 효율이나 경쟁으로 가면 분명히 사회에 갈등구조가 생길테니까, 그래서 제기한 게 삶의 질의 세계화다. 경제만 세계화하는 게 아니라 삶의 질도 세계화하자는 거였다. 그때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대통령 구상에 그대로 발표를 했다. 생산적 복지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하고. 그래서 그때 나름대로는 노인수당도 처음 도입해고, 보육시설도 노력했다.

그 후 금융개혁도 본격적으로는 아이엠에프 때 했지만, 금융개혁안은 와이에스 말기에 이미 추진을 하다가 야당 반대로 안됐다. 재벌에 대해서도 지배구조 얘기나 투명성 얘기를 시작했다.

정치부분에서 공직자재산등록이라든가….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그때그때 제기 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면서 문제를 풀고 그렇게 넘어왔다. 대외적 세계화와 대내적 민주화 욕구를 어떻게 조화해서 풀어나갈지가 지난 15년 간의 고민이었고 나름대로 그때마다 했다. 문제가 뒤로 밀리기도 하고, 정치논리에 밀리기도 경제논리가 앞서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걸 너무 단절적으로 보는 건 옳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덜 제기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않냐. 그런 큰 흐름을 우리가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천)박 교수가 민주화 60년대부터 해서 연속적으로 봐야한다고 하는데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박)그때 우리가 대학생이었는데 다들 고생들하고 그랬는데….

(천)전두환 군부독재시기와 87년 민주화항쟁 이후는 엄청난 단절이다. 한국에서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운동을 통한 민주화다. 다른 하나는 와이에스 시기는 97년 이후 분배지표를 보면 87~97년 이후는 상대적으로 좋다.

(박)그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거다.

(천) 97년 이후는 지니계수 더 나빠졌다. 97년까지는 노동과 자본간의 일정한 타협이 있었다.

(박)전교조고 민노총이고 합법화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천)이게 지속가능한 틀이 되지 못하고 이후 손을 놓아버렸다.

(김)정책의 연구나 제안이 엄청 쌓여있다. 역대정권별로. 한번 뜯어보고 선택할 수 있는 게 뭐냐 봤더니, 다 있다. 역대 정권이나 정부가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다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뭘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어디에 뒀느냐가 문제가 제기가 된 거다. 역대 정부마다 어느 상황에 처해서 어떤 정책을 채택해서 집행하려고 했느냐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사)각 정권별로 추구한 게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 있고, 일정부분 해소하고 숙제로 넘겨주는 과정이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다.

(우)동의한다. 밖에서 세계화 물결이 있고, 대내적으로 민주화 요구가 분출됐다. 옛날처럼 고성장 할 수 있는 환경 안 된다. 환경 변화 놓고 얘기해야한다. 일부에서 나오는 민주개혁세력 무능론이 나오는데 옳지 않다. 환경이 다르다. 예전에는 다 무시하고 1차방정식 푸는 경제정책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고차원적인 연립방정식을 풀어야한다. 굉장히 어렵다. 온갖 것을 다 고려해야하는 상황에서 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잡아서 경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고성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결코 무능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민주개혁세력이 문제를 푸는 능력이 과거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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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경제 어디로?

(사회)앞으로 우리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될 것인지를 논의의 시작 차원에서 박세일 교수가 먼저 선진화론을 좀 설명해 달라. 선진화론은 포괄적이니까 다 논의하기는 어렵고 선진화론에 들어있는 경제적인 부문 위주로 말씀을 해주시고, 다른 분들이 의견 주시면서 앞으로 우리경제 방향 모색해 가보자.

(박세일)얘기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몰아야 자기 논리를 세우기가 쉬워서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제가 보기에는 성장과 분배 문제가 있는데, 나는 성장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성장을 잘 하면 분배문제의 반은 풀린다. 그래도 안 풀리는 부분이 있다. 안 풀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적인 복지나 분배문제가 같이 나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개방은 나라마다 속도 방법이 다르다. 역사 문화 전통 맞게 개방해야 한다. 지킬 부분이 있고, 계속 개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런 방향으로 대충 생각을 하고 있다.

경제부문에 있어서 딱 하나를 말하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 만들려면 1차적인 조건이 투자부분에서 열린 시장이 돼야한다. 선진화론에서 저는 대한민국을 투자 허브로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생산적인 투자활동이 많이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교육개혁이 없이는 안 된다고 본다. 교육경쟁력이 중요하다. 그 다음이 도시경쟁력이다. 도시경쟁력이 우리나라를 투자허브로 만들어서 새로운 신성장을 하는 데 이 두가지가 중요한 축이 되고 이걸 축으로 혁신적인 투자가 일어나는 게 모든 문제를 푸는 데 1차적인 조건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경쟁력은 대학교육부터 국제경쟁력이 대단히 낮다. 중고교의 교실붕괴, 교육퇴출 문제, 대학의 국제경쟁력의 하락문제. 교육경쟁력을 살리지 못하면 선진화는 안된다고 본다. 상당 부분은 평준화적 사고와 깊은 관계가 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수월성과 자유경쟁 위주로, 획일성 보다 다양성 위주로 몰고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능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양질의 교육기회를 못찾는 분들은 바우처 같은 제도를 통해서 문제를 풀면 된다.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국민에게 세계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는 백성을 버린 정부라고 본다. 세계 최고의 교육을 시켜서 세계 최고와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정부는 자기 국민을 버린 정부다. 더구나 세계화, 정보화 시대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걸 기본으로 하고, 형평적인 문제를 풀어 나가면 된다.

두 번째는 도시경쟁력인데, 예를 들어 서울을 보자. 저는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에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본다.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은 내가 보기에도 내용이 없는 개념이거나 상당히 혼란을 주는 개념이다. 이 세상에 균형발전이란 없다. 발전을 통해서 그 다음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거다. 그러니까 각 부분이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결과로 조화와 균형이 되는 것이지, 균형을 목표로 하면 균형도 이루지 못하고 발전도 안 된다. 교육에서도 평준화적 사고에 따른 정책의 폐해를 말했지만, 도시에서는 균형발전적의 폐해가 생각보다 많다. 얼마 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를 보면, 세계 도시를 셋으로 나눴다. 하나는 세계 성장을 주도하는 도시, 일류도시다. 둘째는 자기 나라의 성장을 주도하는 도시, 이류도시다. 이류도시는 평균소득이 그 나라 평균소득의 1.5배~2배다. 그만큼 생산이 일어나는 거다. 세 번째는 세계의 성장도 자기 나라의 성장도 견인해 나가지 못하는 삼류도시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서울은 삼류도시에 속해있다. 집중의 이익 실현, 광역화의 이익 실현을 못하고 있다. 혼잡비용 때문에 서울 집중화를 막아왔고 광역화를 막아왔다. ‘서울이 발전하면 지방 발전을 막는다’는 말은 폐쇄 경제에서는 맞다. 시골에서의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여 발전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서울의 발전은 세계의 인력과 자본을 끌어들여서 발전하는 시대로 이미 그렇게 돼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시경쟁력 부분에 우리가 굉장히 문제가 많다. 그리고 교육, 이 두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투자허브가 될 수 없고, 투자 없이는 성장도 복지도 다 해결이 되지 않는다. 선진화가 기본이 되려면 할 일이 굉장히 많다. 복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트라이앵글을 만들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얘기할 게 많다. 그런데 핵심을 잡는다면 교육과 도시에서 문제를 풀고, 그게 뜬 다음에 복지문제로 들어가면 우리가 선진화사회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병천)박 교수 얘기는 특별한 이야기 아니라고 본다.

(박세일)특별한 얘기를 한 건 아니고.

(이병천)왜냐하면 한국은 지금 상당한 정도로 성장 중심주의를 추진을 해왔고, 개방을 엄청나게 한 경제다.

(박세일)그런데 왜 우리 성장률에 세계 성장률을 못따라 가냐? 그러면 왜 아시아의 다른 나라 성장률을 못따라가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사에서 60년대 후에 우리나라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에 못따라간 건 지난 4년간이다. 성장지상주의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불균형·양극화 속에서 혜택받은 집단, 이젠 양보해야

(이병천)그것은 평등주의 때문이 아니라, 그 지점이 투자도 아니고 복지도 제대로 안되는 97년 체제의 근본적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평면게임이 아니고,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지고 투자 부분에서도 양극화가 워낙 진행이 됐다. 선두에선 투자를 많이 한다. 삼성, 투자 많이 한다. 중견이나 중소 부분이 가라앉는 거다. 이게 양극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장에 대해서 충분히 자유를 주고 있다. 조금 남아있는 게 규제라고 보는 거다.

97년 체제가 묘하게 미국을 따라가려는 시스템이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의 기준을 단기주의 압박하고, 그러면서 그 틀에 못올라가는 중위, 하위층에서는 밑에서 투자가 부진하게 된다. 이런 틀이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박 교수 말씀처럼, 더 성장 우선으로 가고 더 도시집중으로 가면 투자는 더 된다. 왜냐하면 엄청난 지원을 해주니까. 자본에 대한 인센티브니까. 문제는 뭐 때문에 그렇게 하느냐다. 그 투자가 뭐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새로운 한국경제 모델이나 성장 모델 찾을 때 지난날의 불균형이나 양극화를 교정하면서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가 어떤 식으로 조화를 하면서 갈 수 있느냐가 우리의 고민이다. 그래서 박 교수의 선진화론은 이런 고민을 주변화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그러면 너무나 편안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날의 불균형, 양극화 속에서 혜택을 받은 집단이 있다. (이들이)전반적으로 밀어줘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한다. 희생의 교대. 그 기반 위에서 성장할 때 국민적으로 그걸 끌고 갈 집단이 있다. 그 집단들이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 한다. 이게 말하자면 희생의 교대다. 그 기반 위에서 성장을 하자고 할 때 성장이 확산되는 것이다. 기대를 줘야 노동자도 거기에 따라가는 거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고, 일단 키워야 된다. (이는) 너무나 오래된 담론이다. 그걸 우리가 신뢰하지 못한다. 근본적인 바탕이 신뢰를 새로 구성해야 하는 문제인데, 신뢰를 새로 구성을 못한다. 세계화, 지식기반사회라고 하면서도 오랜 성장제일주의, 불균형 성장담론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신뢰를 구성해서 새로운 생산 열망이나 에너지를 어떻게 일반 대중에게 투입을 하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승자독식을 더 심화시키지 않겠나 우려된다.

다른 하나는 꼭 지적하고 싶은 게,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투기 문제다. 규제를 완화시키고 성장제일주의로 가자고하면, 성장이 제대로 될 것 같으냐고 질문을 하면, 그건 의문이다. 왜냐면, 제조업 부분은 중국하고 승부가 안 되니 서비스업 하자는 얘기가 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제조업 자체가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투자 불균형의 문제도 있지만, 부동산 투기나 고리대라든가, 금융의 투기화가 자산적 축적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게 앞으로 5년, 10년 가게 되면. 우리가 지금 미국화를 얘기하지만, 미국화가 아니다. 착각하고 있는 거다. 미국화를 하면, 나름대로 양극분열적 선진화로 가는 거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게도 못가는 거 아닌가.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과 아시아 국가, 중남미의 모습이다. 양극분열이 되면서 자산적 축적이 심화되는 이게 우리가 봐야하는 위험이 아닐까.

(이정우)6월항쟁 대담에 선진화론이 테이블에 올라오는 건 아니란 생각이다. 별도로 선진화론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다. 지난 4년간 평균 이하로 성장을 했는데, 이런 정부 없었다고 하는데, 이 교수 말대로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경제체질, 체제의 변화가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면 거품붕괴의 과정에서 보는 필연적인 결과니까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국민의 정부에서 아이엠에프 사태라는 초유의 국란을 맞아서 고생하고, 잘 극복해 낸 건 높이평가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꼭 경기부양을 그렇게까지 했어야하는 지는 항상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거품이 꺼지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본다.

선진화론으로 들어가겠다. 성장과 분배의 관계에서 방금 박 교수의 얘기 정도라면 충분히 동의한다. 그것은 아주 온건하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너무 분배는 무시하고 성장일변도로 가는 지난 수십년 간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 정도라도 조화를 시키면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성장이 된다고 해서 빈곤이 해소되고, 분배가 개선된다는 데 동의하지는 않는다. 성장 잘 될 때 분배가 좋았다는 얘기가 최근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분배가 너무 무시돼 왔고, 복지가 무시돼서 삶의 질이 형편없지만, 단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장 높이기 위해서도 분배와 복지가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점을 우리가 너무 등한시해왔다.

개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상대와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 이 교수가 선진통상국가에 대해서 이미 한미에프티에의 싹이 터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다. 선진통상국가는 개방을 강조했지만, 개방의 상대로 미국이라는 헤비급 선수와 통상을 맺어서 1:1로 경쟁이 된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과속이고 원래 프로그램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시장만능주의를 불러들일 것이고, 앞으로 우리 경제에 아주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허브 좋다. 투자가 왜 이리 안 되느냐는 것은 이 교수 말대로 아이엠에프 후에 경제 체질이 미국화하면서 월가 모델로 단기화했기 때문이다. 관계형 자본주의 대신 월가형 자본주의가 들어온 게 가장 크다. 모범투자를 기피하고 안주한 것이다. 체질을 바꿔야한다.

박 교수가 교육, 도시경쟁력 강조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공교육경쟁력 높여야 하는데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많은데 시장주의자들은 시장논리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하향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다. 고교까지는 상향평준화 잘 돼있다. 고교 교육은 책임이 없다. 희생자들이다. 교실이 붕괴되고 학생들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대학의 책임이다. 하향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대학입시를 바꿔야 한다. 한국 학생들 만큼 수학 성적이 높고 편차가 적은 나라 없다.

대학이 입시 이기주의에 따라서 자기 대학에 좀 더 똑똑한 애들 뽑으려고 세계 유래가 없는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입시 이기주의가 근본문제이다.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교육부도 반쪽의 책임이 있다. 박 교수의 처방은 현 상황에서의 공교육문제 해결의 본질이 아니다. 다양성과 수월성이 필요하지만, 풀어가는 과정에서 너무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신 것 아닌가.

도시발전에서 균형발전을 강도 높에 비판하셨다. 역대 정부가 지방발전을 말로만 했지 그걸 진정성을 가지고 하지 않았다. 그냥 립서비스를 죽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지방의 방치였고, 시장에 맡겨놓으니까 자석이 끌어당기듯이 수도권으로 몰린 것이다. 몰리니까 신도시 지어서 더 비대화시키고 더 팽창시킨다.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못된다. 신도시 정책 자체가 문제가 많다고 보고,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지방을 근본적으로 진정성을 갖고 살리는 정책을 한번이라도 해봤냐고 오히려 문제제기 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불균형 발전한 나라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인 서울집중, 서울에서 천안까지가 거의 다 서울일 정도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나라가 없다. 이것을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이유로 시장과 경쟁을 너무 강조하면 악순환의 꼬리가 끊기지 않고 오히려 더 악순환될 것이다.

최근에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거기에 300년된 시의 조례가 있더라. 모든 코펜하겐 시내의 건물은 시청의 첨탑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는 조례다. 도시전체가 낮고 인간친화적이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걷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이 도시는 앞으로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관광객만 받아들여도 잘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앞으로 어떤 관광객이 오겠는가. 서울은 과잉투자된 시멘트 덩어리이다. 시멘트 더미를 만들어서 지나치게 과잉투자하고, 자석처럼 사람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인다. 그래서 인간이 살 수 없는 도시로 만들어서 서울에 오면 탈출하고 싶어진다. 지방에 좀 더 아득한 살기 좋은 도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고, 앞으로 관광이 점차 중요한 산업이 될텐데 관광을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가 중국, 일본의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우리의 큰 소득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서울이라는 이 기형적인 거대한 시멘트 더미를 계속 키워야 되느냐.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김유배)박 교수의 선진화 내용은 성장우선주의로 이해했는데 이야기해 보니 꼭 그렇지 않다. 선진화라는 용어 썼는데 선진국가가 돼가는 건 어느 사회 국가나 공통적 목표이다. 경제성장만 잘 된다고 해서 선진국이 아니다. 선진국가의 공통요건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자연친화적이고, 거래 비용이나 교통 비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어느 정도 돼야한다.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영미계통에 가서 잘된 시스템이다, 사람들의 양식이 괜찮다는 게 선진국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것만으로 선진국은 아니다. 지금까지 논쟁들이 극단적이었다. 성장우선은 성장만 하고 다른 건 안 하고, 분배만 하면 성장 도외시하느냐. 이런 게 아니라, 결국 여기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적정하게 조화시키냐이다.

우선 순위와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다. 다만, 학교에서 보면 연구비가 어느 분야에 필요하면 100%달라고 한다. 다른 데가 중요하면 다른 데로 100% 가져가 버린다. 정책을 실시하고 비중을 두는 데 있어서 역대정권마다 극단적인 방향에서 성장우선했다가 그 다음에는 성장을 전혀 도외시하는 부분이 원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참여정부 와서는 균형발전을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기업이 투자해서 일자리가 창출하는 게 경제학을 하는 사람의 기본이다. 문제는 성장과 복지를 동반, 병행해서 발전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지만, 개념은 개발했지만, 참여정부에 반기업적 정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 기업투자 정책도 그렇고, 기업인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런 것이다.

(이병천)참여정부에 반기업 정서가 많다는 말씀인가?

(김유배)네. 그런 부분이 꽤 있지 않느냐.

(이병천)그렇게 보면….

(김유배)그런 측면에서 립서비스가 될 지 모르겠지만 필요없는 얘기를 정책담당자들이 많이 해서 기업이나 국민에게 오해를 준 부분이 많다. 두 가지를 진정으로 양립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얘기했지만,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나라는 없다. 정책을 서로 조화시켜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으로 수립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 게 지속가능한 발전이냐가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을 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이다. 획일적 정책이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

세계시장에 노출돼 있는데 똑같은 조건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해외에 가서 경쟁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차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깨달아야 할 것은 과거에는 대기업 위주 기업 친화적인 정책에서 이제는 중소기업 위주의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취해야 한다. 대기업은 세계시장 나가 경쟁하도록 하고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갖추는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동반해서 갈 수 있고, 그래야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은 중소기업을 끌고갈 시이오를 보면, 자수성가형 시이오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언어가 되는 젊은 친구들과 해외시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끌고 가면, 세계시장에는 틈새가 많다. 아프리카, 몽골, 러시아도 갈 수 있다. 얼마 전에 보니까 학생들이 러시아에 가서 한국식 택시회사를 차렸더라. 여행 갔다가 한국식으로 택시회사 운영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택시회사를 운영한다고. 이렇게 젊은이들이 갈 수 있는 데는 가야한다.

세계화는 방어적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 대기업은 세계화 할 준비가 돼있지만 일반 시민이나 중소기업은 대비가 안돼있다. 그런 면에서 교육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자율성을 부여해서 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정부가 평준화를 통해서 지원할 부분이 있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는 게 문제다. 대학도 정부 지배를 안 받는 곳이 없다. 한편으로는 풀어주고, 한 편으로는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

(박세일)선진화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담론 등장에 일조했다. 선진화론을 시대의 담론으로 만들려는 이유는 지난 몇 년간 과거에 대한 담론이 과도했다. 잘 잘못을 정리하고 가는 건 좋지만, 미래에 대한 시각 없이 과거에 대한 논쟁이 과도하다. 비생산적인 이분법적 담론이 많다고 느꼈다.

성장이냐, 분배냐 개방이냐, 비개방이냐와 마찬가지로 너무 이분법적인 비생산적인 담론이 많고 과거에 대한 논쟁이 많다. 지금은 두 가지 도전을 풀어나가야 한다. 외부에서 몰려오는 세계화 정보화 변화와 안에서 민주화, 지방화라는 새로운 욕구분출을 어떻게 정리하면서 어떻게 국가를 골고루 잘 사는 사회로 만드느냐이다.

이제는 미래 비전에 대한 담론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미래 비전의 담론 갖고, 이런 시대적 조건 속에서 하려면 구체적인 정책개발로 넘어가야 된다. 정책개발로 넘어가게 되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서로의 경험을 종합해서 같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구체적인 정책개발로 가면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간헐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나라나 성장 생각하지 않고 분배만 하는 나라가 있을 수 없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이런 변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국가를 발전시키고, 백성들을 좀 더 편안하고 공정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만들거냐는 쪽으로 논쟁을 끌고 나가야 한다. 거기서 비전과 새로운 구체적인 방안을 만드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합의하고, 국민들의 공감이 따르고 그러면 정치세력이 우리나라를 그 쪽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선진화론이)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 다음에 선진화라는 것, 선진국가라는 건 3만불만 의미 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법치가 제대로 서서 자유민주주의가 돼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따뜻한 공동체가 돼 사회신뢰가 높아져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이웃의 신뢰도 받고, 인류보편의 발전에 기여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이런 성숙한 선진국가를 모델로 해서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해서 정책적인 합의가 되면, 과거 세 번에 걸쳐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었지만 이걸 모아서 실패없이 성공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논의가 시작이 됐다.

(김유배)비전에 대한 것은 대동소이하고, 실은 정책수단을 뭘로 하느냐가 문제다.

(박세일)도시경쟁력 얘기하는 건, 수도권 규제를 풀고 서울이면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도록 놔두라는 것과 더불어 하고픈 말은 지역 발전에 대해서는 새로운 발전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의 중요한 특징은 대한민국의 지역과 다른 나라의 지역이 경쟁하는 시대다. 지금 지방 발전이 안 되는 중요한 문제는 서울에 과다투자하고 서울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지방이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첫째, 돈과 권력이 전부 서울에 있다. 중앙집권하면서 우리가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 지방에서 발전하려면 부상하는 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발전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없다. 철저한 분권화, 저는 준연방제적인 분권화를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지방이 발전할 수 있는 구상을 가질 수 없고, 구상이 있어도 발전할 수 없다. 두 번째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구조, 단위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그래서 저는 YS 때 지방자치를 처음 실시했지만 지금 후회하는 게 지방자치를 도입하기 전에 지방자치의 구조변화를, 지방자치의 단위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단위로 바꿔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시,군,구를 전반적으로 개편을 해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단위로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한의 서너개 구역으로 나눠서 경쟁력있는 단위로 만들어 준 뒤 권력을 확실하게 분권화시켜주면 자기 발전력을 가진다. 이렇듯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 전제로 서울에 대한 규제도 풀고, 수도는 수도의 발전논리대로 가야 한다. 그런 것에 대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나라의 비전에 대해 동감을 하면, 어떤 것이 효과적이냐, 외국의 경우는 어떠냐, 그리고 우리의 과거 경험을 가지고 얘기하면 모든 논의가 생산적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시작으로 우리가 선진화를 얘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병천)박 교수의 주장은 중요하고 상당히 토론할 게 많다고 생각한다. 쟁점은 형성이 되는 것 같다. 미래 비전을 공유하면 그 다음은 정책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미래 비전이 공유가 잘 안 된다. 예를 들어, 선진화라는 게 보편성이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후진국보다 선진국이 좋다는 일반적인 부분이 있다. 그 일반적인 얘기는 박 교수 뿐만 아니라 이전에 오이시디 가입할 때도 한 얘기다.

(박세일)그것에 대한 공과를 얘기하면, 논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니까….

(이병천)그것을 박 교수가 훨씬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첫번째 쟁점은 선진화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느냐는 거다.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공고화됐고, 아시아 수준을 봐도 잘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밥을 먹여주냐는 얘기로 번지고 있다.

(박세일)공감하는 얘기다.

(이병천)그 속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20년을 놓고 우리는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선진화라는 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보편적 복지는 어떻게 되나. 제가 박 교수의 책을 보면,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한 마디도 안 나온다.

(박세일)복지정책에 대한 얘기는 나온다.

(이병천)복지라는 말은 나오는데 보편적 복지의 망을 깐다는 말은 없다.

(박세일)사회안전망.

(이병천)사회안전망 가지고는 안 된다. 보편적 복지냐, 잔여적 복지냐. 이게 갈라지는 거다. 차이가 있는 거다.

(박세일)네.

(이병천)그래서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진보개혁 세력의 전망을 열 때 우선 나오는 얘긴데, 그 이야기가 박 교수께는 안 나온다.

(김유배)지금 참여적 복지라고 했는데 다음에는 또 다른 복지가 나올텐데?

(웃음)

(이병천)그렇긴 한데 보편적 복지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시장경제를 하자, 개방을 하자, 경쟁을 하게 되면 탈락자도 생기고 불평등도 심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바탕을 깔고 경쟁도 하고, 불평등도 사회전체가 동의를 하느냐에 대해 어떻게 합의하느냐가 최대의 쟁점이다. 그렇게 해서 그 활력을 가지고 투자도 하고 성장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복지를 좀 하긴 하되 못난 누구만 해주겠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부분에서 박 교수의 선진화 담론의 실체가 좋은 말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공동체와 자유주의를 합쳐놓은 엄청난 담론인데도….

(박세일) 웃음

(이병천) 엄청나지 않냐. 미국 뿐만 아니라 동남아까지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데….그런데 거기에 보편적 복지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엄청나게 큰 담론인데, 생각보다 분명한 말씀을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결국엔 성장중심으로 가고 나중에 남으면 복지 한번 해보자는 것 아니냐. 이게 선진국으로 가는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느꼈다.

(박세일)민주주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건 한번 얘기를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게 있다. 복지부분은 오늘 시간이 없어서 얘기 못하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 특별취재팀

[좌담회] 개방화·세계화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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