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보~하쿠나 마타타~♩♬” 한때 유행어가 될 정도로 ‘다 잘될 거야’ 노래를 들려줬던 지라니 합창단이 케냐와 인연의 시작이었다. 수도 나이로비의 쓰레기마을 어린이들이 한국의 한 엔지오 도움으로 합창단을 꾸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어느 날 친한 후배가 지라니 합창단의 음악 지도를 맡아 훌쩍 케냐로 날아갔다는 소식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무렵 우연처럼, 컴패션의 일대일 어린이 양육 후원 권유를 받고 케냐 어린이를 선택했다. 이달 초순 8박9일 일정으로 한국컴패션의 후원자그룹(프렌즈오브컴패션) 20여명과 함께 세계 최대·최다로 꼽히는 나이로비 일대 빈민가를 엿보고 왔다.
나이로비의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 내리면 거대한 유리창에 홀로그램 기법으로 연출된 야생동물들이 사파리의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조모 케냐타는 영국 식민지를 벗어나 독립을 이끈 초대 대통령이자 현 우후루 케냐타의 아버지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남부에 자리한 세계 최대 빈민가 키베라의 전경. 해발 1700m 고원지대인 나이로비는 마사이족 언어로 ‘찬물이 솟는 곳’이고, 키베라는 누비아어로 ‘숲’(키비라)을 뜻한다는 지명이 무색하게도, 물도 나무도 귀한 불모지대가 돼 있다.
“반경 1㎞, 겨우 서울 여의도의 절반 정도 땅에서 어떻게 100만명도 넘게 살 수가 있죠?” “상상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고, 가보면 압니다.”
지난 2일 아침 7시 숙소를 나서기 직전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가 이날 방문할 키베라 지역과 어린이센터의 기본 현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한국컴패션을 설립한 이래 13년째 거의 매월 한두 차례, 전세계 빈민가를 속속들이 다니고 있는 서 대표는 “내가 아는 한 키베라가 지구촌에서 가장 열악한 슬럼가의 하나”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로비 면적의 1%도 안 되는 키베라에는 전체 도시 인구 400만명의 30%가 밀집해 산다. 나이로비 시내에는 마타레, 카왕과레 등 10여개의 빈민가에 250만~3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세계은행·도시연맹의 조사 자료는 2020년까지 케냐의 도시빈민이 전체 빈민의 절반 가까이(48.9%)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지 안내를 담당한
케냐컴패션
직원 수전 루피아는 한술 더 떠 “에이즈 환자와 마약 중독자도 많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주민들과 직접 접촉은 피하고,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개인 행동은 금물”이라고 주의를 줬다. 일행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돌았다.
키베라 지역 엠마누엘교회 어린이센터에서 한국 후원자 일행이 밤새 준비해간 색색 풍선으로 학교 수업을 막 끝내고 온 컴패션 후원 어린이들과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다.
중학생 딸·부인과 함께 참여한 정형외과 전문의 허달영씨가 지난 2일 키베라의 후원 가정을 방문해 통증을 호소하는 10살 여자아이의 다리를 살펴보고 있다.
‘나는 변기통’이란 오명
나이로비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40분 남짓, 출근길 극심한 체증과 매연 속을 달리던 중고 승합차는 돌연 비포장길로 접어들었다. 키베라 지역이다. 시커멓던 공기가 누런 흙먼지로 바뀌었다. 녹슨 함석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단층 건물만 즐비한 거리는 풀나무조차 드물어 대낮인데도 우중충하다. 차가 멈춘 곳은 비교적 새 건물의 엠마누엘교회였다. 바로 컴패션어린이센터(KE916 프로젝트)였다.
‘KE916’
센터장 퍼트리샤 무통고이(38)는 “구역 안 3개의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돌보는 768명의 후원 어린이 가운데 이곳 서부 센터에는 268명이 등록돼 있다”고 소개했다. 100만명이 넘는 절대 빈곤인구를 고려할 때 너무나 미미한 규모인 셈이다. 하지만 나이로비 동북쪽 쓰레기마을로 유명한 코로고초 출신으로 15년째 컴패션
활동을 하고 있는 퍼트리샤는 “한 집에서 1명만 제대로 키우면 희망이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그들이 리더로서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 변화를 이끄는 사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고 낙관했다.
어린이센터 안에 들어가니 20여명의 청소년들이 반갑게 환영을 했다. 센터가 문을 연 2005년부터 10여년간 후원을 받아 최근 당당히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이었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80 이상을 독점할 정도로, 극심한 케냐의 빈부 격차만큼이나 공사립 학교의 교육 환경과 학비 차이도 크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대부분 등록금 부담이 덜한 2년제 칼리지나 4년제 공립대학에 합격한 우등생들인 셈이었다.
키베라를 비롯한 빈민가의 집은 대부분 겨우 1평 남짓에 불과한 어른 서너 명이 서 있기에도 비좁았고 전기를 쓰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평균 7~8명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어진 간담회에서, 특히 또래의 자녀와 함께 온 후원자 가족들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부터 물었다. “발 뻗고 눕기에도 좁은 단칸방에서 7~10명씩 살고 돈이 없어 전깃불도 켜지 못한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답은 약속한 듯 간단했다. “센터가 집이고 학교이고 도서관인걸요.” 특히 주말마다 센터에서 제공해준 보충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국립나이로비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할 예정인 빈센트(18)는 “컴패션 후원을 받게 된 여동생과 같이 센터와 와서 놀며 공부한 덕분”이라고 했다.
특히 자매처럼 나란히 빨간색 카디건을 입은 두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컴패션의 후원 덕분에 우선 굶주림과 질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나이별로 다양한 상담과 멘토링을 통해 신앙과 자존감을 배워 마약·술·매춘·성폭행·범죄 등 온갖 위험과 유혹으로부터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당당히 설명해 후원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7살 때부터 후원을 받아 드물게도 사립대인 지테크대학에 진학하는 조지핀 와이리무(18)는 “어릴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 저널리즘을 선택했다”며 케냐에서는 아직 드문 여성 앵커를 꿈꾸고 있었다. 4살 때부터 컴패션과 인연을 맺어 국립나이로비대에 합격한 샐리 아티에노(18)는 여성 건축가의 포부를 밝혔다. 둘은 모두 컴패션 선배 출신인 여성 멘토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귀띔했다.
학생들과 센터에서 준비해준 소박한 일상식을 함께 나눈 뒤 후원자 일행은 4개 조로 나뉘어 후원 아동의 가정방문에 나섰다. 차는 일대에서 가장 높고 눈에 띄는 건물인 ‘키베라 타운센터’ 앞에서 다시 멈췄다. 키베라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우간다로 향하는 철길을 건너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말 그대로 미로였다. 널린 쓰레기 더미와 악취를 참으며 조심조심 걷다 보니 앞뒤로 건장한 체격의 총을 지닌 경호원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사설 경호업체에서 특별히 자원봉사로 센터를 도와주는 거래요.” 한때 살인·마약범죄 소문까지 돌았던 업체의 ‘두목’(대표)이 기독교신자로 회개한 덕분이라고, 길잡이로 따라나선 한 학생이 귀띔해줬다. 최근엔 ‘슬럼 투어’ 같은 국제적 여행 상품도 생겨나 사설 경호업체들이 성업 중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정부의 행정력이나 치안이 부재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내를 맡은 케냐
컴패션 직원 저스투스 비도로는 “최근 몇 년 사이 전기는 들어오게 됐지만 평균 하루 1달러의 수입으로는 끼니 때우기도 어려워 불을 켜지 못하는 집이 태반”이라고 했다. 또 정부에서 상수도를 보급하려 했으나, 물장사를 해온 지역 내 이권 조직에서 수도관을 막으며 반발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여전히 물을 사 먹어야 한단다. 실제로 골목 곳곳에 보이는 수도꼭지에는 노란색 물통을 든 주민들이 줄지어 있었다. 식수용 한 통에 50케냐 실링 정도. 해발 1700m 고원에 자리한 나이로비는 애초 화산지대여서 우물을 파도 물이 잘 솟지 않는데다, 폐하수 유입으로 지하수마저 오염된 곳이 많다니 설상가상이다. 공중화장실마저 변변치 않은데다 그나마 밤이면 여성들에겐 성폭행 위험지대로 돌변했다.
사실 키베라는 2007년 취임 첫 출장으로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한 뒤 실제로 이듬해 ‘포니정 혁신상’ 상금 10만달러를 유엔 해비타트를 통해 기부하면서 주목을 받은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참한 생활상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주민들이 비닐봉지에 용변을 본 뒤 집 밖으로 던져버리는 데서 이름 붙은 ‘나는 변기통’(flying toilet)이 대표적이었다. 그나마 지금이 겨울에 해당하는 건기여서 악취도 진창길도 견딜 만하다고들 했다.
나이로비 동북쪽의 빈민가 카왕과레 지역에서 지난 1일 컴패션 후원 아동의 집을 방문한 지제장애인 유요한씨와 가족들이 동네 아이들과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다.
모두 11개의 나이로비 빈민가 가운데 두번째 큰 규모인 카왕과레를 답사한 지난 3일 키베라에서처럼 무장한 사설 경호원이 동행했다. 컴패션의 에이즈 환자 후원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한 딸을 낳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의 집을 방문했다.
여의도 절반 면적에 100만명 살아
“지구촌에서 가장 열악한 슬럼가”
10년 넘게 후원 대학생 배출 시작
“후원 덕에 굶주림 벗어나 공부도”
5~80명 후원하는 컴패션마니아들
선천성 장애 딛고 매년 현지방문
‘유산’ 대신 후원 아이 물려주기도
“아이들과 함께 후원자도 성장”
마침내 정형외과 원장인 허달영씨의 세 가족과 함께 도착한 후원 가정에는 마침 다리가 아픈 10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비교적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골목 끝자락에 있는 집이었다. 전통 방식인 소똥을 섞은 흙으로 지은 집이 쉽게 달구어지는 양철집보다는 정겨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문을 열고 보니 방은 플라스틱 의자 5~6개만으로 꽉 찼다. 어른 서너 명이 들어가니 서로 얼굴이 맞닿을 지경이었다. “밤에는 의자를 밖으로 내놓거나 쌓아두고 바닥에 천이나 비닐을 깔고 겨우 누워 자는 거죠. 어떻게 방 한 칸에서 7~8명씩 살 수 있는지 이제 이해가 되죠?” 서 대표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어둡고 비좁은 방 대신 집 앞 골목에서 아이의 상태를 점검해본 허 원장은 “다행히 심각한 상태로 보이진 않지만 우선 전문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서 대표는 “
한국컴패션에서 병원을 주선해 필요하면 수술비 후원도 하겠다”고 제안했다. 수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5남매와 에이즈로 먼저 떠난 동생의 아이 등 조카 2명까지 7명을 키우고 있다는 엄마의 얼굴에 순간 함박꽃이 피었다.
그날 밤, 일행은 모두 숙소에 모여 저마다 후원하게 된 계기와 경험을 나누고 낮에 방문했던 가정을 도울 방법을 늦도록 의논했다.
컴패션 애드보킷팀 담당인 이경렬 목사는 “지금 이 자리가 ‘비전트립’의 백미”라며 경청을 권했다.
키베라를 비롯한 나이로비 빈민가 골목마다 분뇨와 쓰레기가 널려 있는 시궁창은 심각한 오염원이었다. 더구나 지역 내 사설 조직에서 식수 공급망을 장악해 끼니도 어려운 주민들은 물을 사 먹고 있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가족이 함께 온 일행들은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80명 가까운 아이들을 후원하며, 이미 여러 차례 후원국 빈민가를 답사해본 ‘컴패션 마니아’였다.
특히 유재만(변호사)씨네는 아들 요한(28)씨 덕분에 국내는 물론 세계 12개 컴패션
후원국 사이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선천성 지체장애 2급인 요한씨는 2005년 가족끼리 처음 해외여행이었던 필리핀의 무인도에서 독충에 물려 2년 가까이 거의 누워서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어머니 김현아씨가 후원하던 어린이의 편지를 열어본 그는 답장을 해주고 싶어 혼자 영어를 익히고, 컴패션 사무실에 가보고 싶어 혼자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등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다. 2009년부터 해마다 여름휴가 대신
컴패션 비전트립을 다니고 있다는 요한씨네 가족은 50명 넘게 후원을 하고 있다. 요한씨는 올 생일에도 선물 대신 2명의 후원을 더 해달라고 했다. 이날 방문한 가정의 후원 어린이의 어린
여동생이 그 한 명으로 선택됐다.
어머니 김씨는 “20년 넘게 온갖 특수교육과 치료를 시도했지만 거부하던 요한이가 비로소 장애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긍정적인 자신감을 얻었다”며 컴패션 후원을 한 덕분에 오히려 온 가족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키베라 지역에 있는 3개의 컴패션 어린이센터 가운데 가장 큰 엠마누엘교회에서 지난 2일 한국 후원자 일행과 후원 어린이 출신 예비 대학생 20명이 함께 토론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
키베라의 엠마누엘교회 어린이센터에서 만난 예비 대학생 조지핀과 샐리는 유아 때부터 컴패션 후원을 받으며 앵커와 건축가의 꿈을 키워온 과정을 당당하게 들려줘 일행을 감동시켰다.
“여러분은 왜 우리를 돕나요?”
이번 답사 중에 결혼 40돌을 맞은 노흥규·이미정씨 부부도 기념 선물로 이날 낮에 만나 3살 아이를 후원하기로 즉석에서 약정했다.
7년째 후원 중인 부부는 각각 기업체와 학교에서 은퇴한 상태여서, 훗날 ‘유산’ 대신 후원 아이들을 물려주기로 자녀들과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김치 등 식품유통업체 대표로 7년째 50여명을 후원 중인 박경애(62)씨는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가치 있게 써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후원자들의 이런 ‘고백’은 ‘일대일 양육 후원’의 진정한 의미로 이어졌다. “저마다 계기나 이유는 다르지만, 장기간 지속적인 결연과 소통을 통해 책임과 보람을 느끼며 아이들과 후원자가 함께 성장하게 되는 거죠.”
더불어 컴패션만의 독특한 대학생 장학제도인 ‘일대일 리더십 결연 프로그램’ 수료생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앞서 2일 숙소에서 일행과 만난 8명의 남녀 젊은이들은 저마나 전문직업이나 사업 능력을 갖추었고, 앞으로 컴패션을 통해서 또는 새로운 엔지오 조직을 만들어서 자신들과 같은 빈민가 후배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중에 나이로비대 건축과생 빌럽스 카마우는 이미 디자인 재능을 살려 온라인 팬시 사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언젠가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가 던진 마지막 질문이 과제처럼 내내 마음에 남았다. “여러분은 왜 우리를 돕나요?”
나이로비(케냐)/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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